이사한 아파트 상가 미용실에서 커트를 했다. 아들 녀석 결혼을 앞두고 늘 자르던 부산의 미용실로 갈까 하다가 웬만큼만 하면 결혼까지 아직 몇 주가 남았으니 커트하고 나서 조금 기르다 보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가게를 들어서자마자 거창하게 늘어놓는 미용사의 사설에 비해 그는 내 머리를 딸랑한 학생 단발로 만들어 놓았다. 2주쯤 지나 동네의 다른 미용실에 가볼까 하다가 결혼식 때문에 더 이상 모험을 할 시간이 없어 하는 수없이 부산에 가서 자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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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난 양동이 같은 마음에 연신 줄줄 새는 그리움에 금방이라도 부산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꾹꾹 누르고 있었는데 이젠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커트 때문에 앞뒤 계산하지 않고 출발을 했다.
점점 살던 동네가 가까워지자 대놓고 설레는 마음이 참 어이없다. 눈에 익은 길, 눈에 익은 건물, 하늘, 가로수마저 눈에 익다. 아들 주려고 가져간 물건을 넣어 놓으려고 익숙한 비번을 누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아직도 정리 되지 않은 이삿짐 박스가 방과 거실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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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며느리는 친정에 다니러 간 지 일주일째라고 한다. 집에 있는 걸 심심해하는 것 같아서 주말에 친척 결혼식이 있어서 가는 김에 오래 있다 오라고 했다는 게 아들의 변이다. 아마 저도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것이 나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 방, 저 방을 둘러보니 내가 살림을 살던 그때와는 사뭇 다르다. 그러려니 하고 예상은 했지만 꼭꼭 여며 놓은 마음을 헤집고 그 사이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낯선 이질감이 파고든다. 문득 와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스스로 확인해서 갈무리하는 단계를 맞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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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만 자르고 돌아 오려다가 간 김에 아들을 보고 오려고 저녁을 해서 같이 먹기로 했다. 예전에 늘 하던 대로 아들은 퇴근길에 커피 두 잔을 사 들고 왔다. 늦은 커피로 잠을 잘 못 자더라도 오랜만에 식탁에 앉아 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커피를 마셨다.
"아들, 늙은 여자 보내고, 젊은 여자랑 살아보니까 어때?"
"하하하하! 살던 여자가 더 편하고 좋죠"
둘이는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소리를 내며 크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아직 제대로 적응한 사람이 없다. 그저 다들 그 과정에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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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뀐 잠자리에 밤새 뒤척이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그쪽을 향한 문을 조금 더 닫고 오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자꾸 뒤돌아 보지 말라고, 이젠 더 이상 이곳이 내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내가 내게 일러주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자동차의 페달을 지그시 더 세게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