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섬주섬 화구를 챙겨 버스를 타러 나갔다. 이사 온 지 한 달 만에 작심하고 걸으러 나섰다. 가다가 좋은 곳이 있으면 그림도 그리고 쉬엄쉬엄 걷기도 할 생각이었다. 동네에 있는 식당 사장님이 알려주신 걷기 코스인데 이런저런 일로 미루다 이제야 길을 나서게 되었다.
큰 도로를 벗어나 사잇길로 접어들자 아담한 주택들이 줄을 지어 있다. 대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소박한 풍경이다. 길을 걸으면서 설레어 본 게 언제였나 싶다. 크로아티아 라스토케의 한적한 마을처럼, 조지아 카즈베기의 순박한 동네처럼 혹은 정갈하게 차려진 소반 밥상 같은 일본의 작은 마을을 걷는 것 같았다.
이곳으로 오고 나서 처음으로 홀가분함을 느꼈다. 혼자 떠난 여행에서 짜릿하게 전율했던 기꺼움 같은 것이었다. 그동안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누르고 있던 가 보지 않은 길의 선택에 대한 두려움이 웅크리고 있었는데 그 자리를 조금 내어 주고 비켜서는 것 같았다.
힐링을 위해 멀리 여행을 떠난다지만, 어디를 가든 어디에 있든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며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내 안에서 데워지는 온기야말로 온전한 힐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어 시간을 걷다 보니 목덜미에 땀방울이 맺히고 출출했다. 꽈배기 하나를 사서 베어 물고 다시 걸었다. 딱히 목적지나 루트를 정하고 걷는 게 아니라서 눈이 가는 대로 걸었다. 담장 밖으로 살짝 삐져나와 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는 나뭇잎에 이끌리기도 하고, 오래된 건물의 운치에 넋을 잃고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 있기도 했다.
큰 도로를 벗어나 이면 도로에 접어드니 모든 창문이 굳게 닫힌 요양원이 보였다. 재가 방문 서비스, 목욕 서비스 등... 각종 서비스를 하는 곳이라는 문구가 창문마다 커다랗게 적혀 있었지만 전혀 그것이 서비스로 느껴지지 않았다. 절대 받고 싶지 않은 서비스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내 발로 걸어서 그 앞을 지나갈 수 있는 지금이 몸서리치도록 감사했다.
무작정 걷다 보니 시장이 나왔다. 할 일 없이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우리 집 고양이 머리통만 한 조선호박 하나를 사서 가방에 넣고 그 옆 가게에서 국수 한 그릇을 시켰다. 아내는 음식을 만들고 편 마비가 있는 남자 사장님은 가게 홀을 맡고 있었다. 몇 년 전에 뇌졸중으로 왼쪽 수족을 쓰지 못하는 친정 오빠 생각이 나서 맛있게 먹었다는 소리를 더 크게 하고 나왔다.
버스 정류장을 찾아 한동안 헤매고, 배차 간격이 길어 제법 기다려야 했지만 청명한 가을 하늘을 보며 지루한 줄 모르고 기다렸다. 집으로 가는 버스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산 길과 바닷가를 지나갔다. 이런 곳에도 버스가 가는 것이 신기하여 연신 좌우로 고개를 돌려 구경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뒷자리에 앉아 있던 승객이 대뜸 버스 기사에게 다가가더니 무언가를 건네주고 돌아가 앉았다. 기사는 잘 먹겠다는 인사말을 그 승객에게 건넸다. 시골 촌년이 서울에 가서 눈이 뒤집히는 것이 아니라, 도시 살던 사람은 상상도 못 할 광경이었다. 아무도 준 사람은 없는데 공짜로 선물을 받은 것 같아서 가슴 언저리가 미지근하게 데워지는 것 같았다.
꼬불꼬불 돌던 버스를 집 앞에서 내렸다. 오랜만에 많이 걸었지만 왠지 모를 기운에 쌩쌩했다. 찬란한 가을 어느 날, 백수의 하루도 빛나고 있었다. 다시 나도 찬란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슬쩍 챙겨서는 수영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