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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능성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믿어주고 기다려준다는 것은......

  인간에게는 누구나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그 욕구를 달성하기 위해 힘든 순간에도 꾹 참고 견디며 어려움들을 헤쳐나가곤 한다. 그래서 때로는 자기의 능력을 뛰어넘는 일까지 해내는 놀라운 순간들을 접하게 돼 곤 한다.

  나 또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매우 강하다. 특히 함께 사는 가족들로부터의 인정을 갈구하다시피 하던 때가 있었다. 아마도 어릴 때 막내로 자라면서 '이것도 잘 못하는' 아이, '저것도 도와줘야 하는' 아이, '혼자서 무얼 하도록 내버려 두기에는 못 미더운 구석이 많은' 아이로 자라서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초등학생 때 방학이 끝나갈 무렵 큰 오빠의 주도 하에 일기를 비롯한 여러 가지 방학숙제를 차근차근 해나가던 기억이, 또 중학생이 되어서도 목욕탕엘 가면 10살 차이가 나는 언니가 온몸 구석구석을 씻어주던 기억과 같은 일들을 겪으면서 나도 모르게 내 무의식 속에는 나 자신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또는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지만 제대로 존재할 수 있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결혼을 하고 나서도 시댁으로부터 착한 며느리, 유능한 며느리, 듬직한 맏며느리로 칭찬받으면서 살고자 애를 썼는지도 모르겠다.  남편에게서 애교 많은 아내, 살림 잘 사는 아내, 친구처럼 말이 잘 통하는 아내이면서도 아이 잘 키우는 좋은 엄마, 아이들 똑똑하게 예의 바르게 교육하는 훌륭한 엄마 등등으로 인정을 받아서 안달에 가깝게 노력하고 또 노력하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나의 한계를 알게 되었고, 어떤 노력을 해도 시댁이나 남편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참 서글프게도 무엇을 하든 부족한 것투성이인 아내이자 며느리로 각인되어서 더 이상의 노력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에는 꽤나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렇게 그렇게 나 자신의 무능력함에 절망하며 스스로를 비난하며 우울의 나락으로 빠져들 무렵 우연찮게 미술치료를 접하게 되었고 이후 심리와 상담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몇 년 동안 고민하며 갈등하다가 드디어 대학원에 갔을 때, 그때 '나'라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봐주며 '나의 능력'을 믿어주며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고 지지해 주는 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무엇을 하든 비난하지 않고 '네가 그렇게 행동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였을 거야.'라고 믿어주며, 아무 말 없이 기다려주는 이들을 만났을 때 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으며 강철처럼 굳은 내 마음이 말랑말랑 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 또한 그런 것 같다. 그림 그리는 것에 관해 공포에 가까울만큼 자신 없는 베티를 보고도 선생님은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았다. 할 수 있다고 믿어주고 기다려주었으며, 베티가 점 하나를 찍어서 그것도 반항하듯이 연필을 내리찍어서 만든 자국으로 생긴 점 찍힌 도화지를 내밀었을 때에도 선생님은 말없이 그 종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다음날 금빛 테두리 액자에 그 도화지를 넣어서 벽에 걸어주셨다. 학습된 무기력에 빠져 우울과 절망에 빠져있을 때, 못한다고 스스로를 비난하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었을 때 만난 선생님의 믿음과 배려가 베티에게는 아주 커다란 일생일대의 사건이 되었을 것이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전환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포기에서 도전으로 돌아서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을 것이다.책을 읽으면서 용기를 내어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일들을 하나씩 시도해보는 주인공 베티의 모습도 아름답고, 또 자기가 선생님에게 배려받은 것처럼 무의식 중에 보고 배운 것을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돌려주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세상은 아직 살만한 곳이라고, 그렇게 내가 받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며 사는 삶 또한 참 잘 살아가는 삶이라고, 그리고 누군가의 잠재 능력을 믿어주며 말없이 기다려주는 그러면서도 그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작은 씨앗을 하나 심어줄 수 있는 그런 멋진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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