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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 Feb 17. 2024

사랑스러운 그녀에겐 순간이 전부야

2020.08 <대연애~나를 잊을 너와>

    


<대연애~나를 잊을 너와>(2018)

출연 : 토다 에리카, 무로츠요시, 마츠오카 마사히로 등


    여기 순간을 살아가는 그녀가 있다. 추억을 집어삼키고 기억을 지우는 무서운 병에 걸린 그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일생을 건 '대연애'를 시작한다. 



    키타자와 나오는 엄마의 개인병원에서 일하는 산부인과 의사다. 아버지가 없이 자랐지만 부족함 없이 자랐고, 명석한 두뇌로 의대를 졸업해 의사가 되었다. 그런 그녀가 연애에만은 유독 연이 없었는데, 그건 그녀가 너무나도 합리적인 탓이었다. 결혼 또한 합리적인 이유를 거쳐 결심한 나오는 자신과 비슷한 성격에다, 같은 의사인 유이치와 약혼한다. 


    그러나 얄궂게도 그녀의 눈앞에 이제껏 없다 생각했던 운명이 들이닥친다. 그녀가 사랑하는 책인 <모래투성이의 안젤리카>의 작가, 마미야 신지와 만나게 된 것이다. 결혼식을 한 달 남기고, 나오는 돌이킬 수 없는 연애에 빠진다. 워싱턴에 있는 유이치에게도 파혼을 선언한다. 하지만, 도쿄로 돌아와 유이치가 진단하게 된 것은 나오와의 연애가 아니라 그녀의 MCI(경도 인지 장애)였다. 


    굴하지 않고 나오와 신지는 연애한다. 고속열차에서 내려, 사막을 함께 걷기로 한다. 가진 게 없는 신지와, 잃어가게 될 나오는 서로에게 소설 속 운명 같은 존재가 된다. 둘의 대연애(大戀愛)는 신지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때까지, 나오가 신지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할 때까지 계속된다. 





    기억과 사랑이라는 키워드는 참 닮았다. 기억이란 무엇일까? 기억은 현상이기도 하고, 감각이기도 하다. 쓰고자 하면 쓸 수 있고, 그리고자 하면 그릴 수 있다. 감각을 통해 입력되는 기억은 그 장소에 가면 새로운 감각으로 되살아나기도 한다. 그러니 기억은 그리움을 남긴다. 지나간 겨울의 냄새를 맡으면 어느 버스 안이 떠오른다. 라일락이 만발하는 봄이면 중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사랑도 그렇다. 일상 속 아무렇지 않은 것에서 우리는 사랑을 되새기게 된다. 특별한 장소와 특별한 물건이 생긴다. 그리하여 기억과 사랑은 연결된다. 


    그렇다면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이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내 의문에 나오는 그렇노라고 답한다. 결국 신지와의 기억도, 사랑의 증거인 아들 케이치의 존재도 잊어버리고 말지만, 그녀는 분명히 일생에 남을 사랑을 했다. 그것은 신지와 케이치, 그리고 다른 이들의 기억에 아로새겨졌다. <대연애>는 이렇듯 아득하고 안타까운 사랑을 그리지만, 꽤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것을 만드는 것은 연출력의 힘이기도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배우들의 연기력이라 말하고 싶다. 토다 에리카는 물론이고, 비교적 코믹한 이미지였던 무로츠요시의 연기 또한 빛을 발한다. 정말 실제로 있을 법한 커플의 모습으로, 둘은 이야기 속에 존재한다. 알츠하이머로 발전하기 전 당당하게 대시하는 여성의 모습부터, 기억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을 마주한 이의 모습까지 토다 에리카는 극 중에서 아주 선명하게 키타자와 나오로서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그를 옆에서 지켜보며 사랑하는 소설가의 역할을 무로츠요시가 마미야 신지로서 수행한다. 두 사람의 연기력 덕에 드라마가 설득력을 부여받은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10년 간의 이야기를 10화 안에 담아내는 빠른 진행 속도나, 나오의 엄마와 전 약혼남이 결혼한다는 조금 당황스러운 전개 같은 것 말이다. 


    로맨스를 잘 보지 못하는 나에게도, 이런 순애물은 참 아름다웠다. 펜을 놓았던 신지가 나오를 만나며 다시 펜을 잡게 되고, 삶의 의지를 잃었던 나오는 신지를 만나고 살아가게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한 관계란 건 위태롭지만 그 가치로 인해 반짝인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따뜻함과 사랑스러움을 느꼈다. 화면 너머지만, 나오와 만나서 다행이다. 새삼 토다 에리카라는 배우가 너무 좋아졌다. 천천히 작품들을 훑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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