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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 있는 Oct 20. 2021

국제도서전이 뭐라고 6

도도에게


 도도는 얼굴은 찹쌀떡처럼 뽀얗고 하얗다. 도도는 독립출판사 사장이자 동네서점 주인이다. 그녀는 금토일 오후에만 서점을 연다. 우리는 순댓국, 칼국수를 먹었고 다음에는 즉석떡볶이를 먹을 예정이다. 비싼 음식은 별로 안 좋아하는 눈치다. 그런 면에서 나랑 취향이 같다. 특히 반주로 청하를 좋아한다. 깔끔한 맛이 그녀가 좋아할 만하다. 그녀는 얼굴도 동그랗고 눈도 동그랗다. 나보다 나이가 두 살 많지만 동안이다. 나는 사람을 한번 좋아하면 꽤 충성스러운 편인데(개띠라서 그런가) 도도에게 그렇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도서관에 글쓰기 프로그램이었다. 그녀는 출석부를 품에 안고 서 있는 글쓰기 지도 선생님이었다. 첫 시간이라 그런지 학인들의 여러 요청이 쇄도했다. 도도의 동그란 눈이 커져서 땡그랗게 보였다. 도도는 침착하게 의견을 하나하나 귀에 담고 문제를 풀어갔다. 난 속으로 선생님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이 끝나고 강의실을 나가면서 나도 모르게 ‘도도가 울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녹록지 않은 수업이었지만 그녀는 사람마다 이야기를 품고 산다는 걸 아는 사람이었다. 학인들에게 책을 저마다 다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손에 잡히는 나만의 책이 생기다니. 그 말이 너무 좋아서 거짓부렁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난 정말로 열심히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쓴다는 것과 책이 나온다는 것은 다른 의미였기 때문이다. 학인들 모두 열심히 썼다. 도도는 사람의 열정을 꺼내는 힘이 있었다. 칭찬과 격려, 계속되는 다음 주제로 숨겨진 열정을 불태우게 했다.

 

 도도는 모락모락 피어나는 나의 오랜 열망을 꺼내어 진짜 책으로 만들어주었다. 책을 만져보고 싶었던 내 마음을 읽어주는 편집자였다. 도도는 밀당을 잘하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책이 나온 사실에 들떠 있으면 “책은 원래 잘 안 팔려요”라고 가라앉혔고 내가 시무룩하게 자신 없어하면 “꼭 잘되었으면 좋겠어요”라고 힘을 주었다. 어떤 마음으로 나를 지켜봤는지 알 수 없지만 첫 출간을 앞둔 초짜의 감정을 누구보다도 이해해주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이미 몇 권의 책을 출간했는데 특히 『도봉산 힙스터』 만큼 사랑스러운 책은 보지 못했다.


 난 도도에게 자주 글을 수정해서 보내다 보니 어느새 또또가 되었다. 또또 계속 보냈기 때문이다. 도도와 또또. 도도처럼 도도해지려고 또또는 매일 또또거렸다. 책이 나온 것도 기쁘지만 도도를 알게 된 게 가장 좋았다. 도도는 사랑스럽고 상냥하고 따뜻하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욕도 무지 잘한다. 텔레비전에서 비리를 저지른 정치인을 보고 갑자기 씩씩거리며 욕을 해댔다. 빨갛고 작은 입으로.  고양이를 엄청 사랑해서 집에서 고양이를 세 마리를 키우고, 서점 앞에도 길고양이들이 쉬어가는 쉼터와 사료를 두었다.


 도도를 떠올리면 그녀가 처음 곁을 내주었을 때 보여주었던 연극 포스터가 생각난다. 도도가 입봉했을 때의 모습을 보진 못했지만 화려한 여자들이 춤추는 무대에 극작가로 있었던 도도가 왠지 그곳에서 같이 춤추고 있었던 것처럼 연상된다. 도도는 무대를 끝까지 보지도 못하고 도망쳤다고 했지만 왠지 도도가 느꼈을 희열이 아직도 여운으로 남아 있다.


 도도는 매일 바쁘다. 바삐 돌아가는 일정에 비집고 들어가 도도에게 까닭 없이 연락하고 싶지만 왠지 미안하다. 그녀는 선생, 나는 학생이여서 그런가. 왠지 그녀 앞에서는 술에 취해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상상도 한다. 술에 취할 정도로 마시지도 못하지만 흐트러진 모습도 시트콤이 될 거 같아서 그런 거 같다. 하지만 그렇게는 하지 않을 것이다. 도도는 유쾌하지만 진중한 사람이니까. 그녀가 난처해지는 것보다는 홀가분하게 실컷 웃고 울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라니까. 이 글은 도도에 대한 찬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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