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동욱 the orchard Aug 10. 2020

생색

당신께 보내는 비겁하고 은근한 마음  <2020.02.27> 

생색 


진동욱


그래도 이건 조금 알아줬으면 

아무리 둔해도 알아챌 수 있을 만큼 

티 내고 보여도 넌 알지 못하고 

너무 많이 아는 나는 못마땅해 입이 삐죽 


혹시나 알면서 그러는 거라면 

비참한 내가 더 비참해 보이지 않게 

당신이 일부러 바보가 된 거면 

오 이런 어쩌지 미안해요 나 면목없어요 


너무 과한 바람일까요? 

아니다, 그런 것 같아 애초에 이런 마음 따위 먹지 말아야 했는데 

자랑할 수 없는 나는  차마 당당할 수가 없으니 


행여나 알 생각이 없다고 해도 

비참한 내가 더 비참해 보일 수 있게 

당신이 일부러 모른 척했대도 

나는 괜찮아요  마음 아픈 건 별 수가 없어도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종종 그런 밤이 있습니다

그런 밤이 오게 되면은 

사람 참 비겁해지네요

눈을 감으면 그대를 보내곤 하던 날들이었습니다


눈두덩이 밑으로 빛이 고이면

건조 아래 사라지는 그대를

장하게 나는 울지 않고 고개 숙여 인사했습니다

하늘에 닿은 뒷덜미

땅만 뵈는 그 순간에

그대는 과연 웃도 있을까

차디차고 고까운 미소를 짓지 않을까

궁금해하지 않을 거예요


계절 여럿이 부정당하는 기분은 지울 수 없으나

그마저도 소중한 것을 나는 압니다

이걸 제게 주셔서 고마워요

평생 꽁꽁 잘 간직할게요

들을 리 없고, 볼 리 없을

너무 모르는 것이 많은 당신께

부치지 못할 이 마음과

견고하고 꿋꿋한 몸짓을 보냅니다

나는 괜찮습니다

마음 아픈 것은 별 수 없어도 

슬프고 끔찍한 것은 너무 먼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 그리 믿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https://www.youtube.com/watch?v=0gmpCIbvB_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