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제 삶을 한 걸음 뒤에서 바라봅니다.
그러면 기억의 저편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젊고 날이 서 있던 시절, 어디로든 달릴 수 있을 것만 같던 야생마 같던 나이에
길을 터주고 자리를 내어주며 제 곁을 지켜주던 고마운 인연들.
그들이 지나가고 나면 반대로
가던 길마다 벽이 되어, 넘치던 자신감을 한순간에 움츠러들게 만들었던 사람도
어딘가에서 조용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 시절의 저는 부끄럽고 어두운 자화상을 품고 살았습니다.
만약 지울 수만 있다면 지워버리고 싶던 기억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또 흐르고 난 뒤 문득 깨닫게 됩니다.
그 모든 흔적들이 결국은 지금의 나를 만든,
어쩌면 가장 값진 유산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기 어려운 상사와 부하로의 인연.
상사가 주재하는 매주 회의 시 직접 하는 보고 속에서 그는 저에게 언제나 새로운 사실,
다른 각도, 달라진 모습과 개선된 실적을 요구하곤 했습니다.
제게는 그것들이 압박이었고, 팀원들에게도 작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지난주에 했던 소리 또 하지 말고.”
그 말은 늘 제 귓가를 맴돌아 우리가 만든 보고서 한 장 한 장에 새로운 근거와
시각을 담아내도록 몰아붙였습니다.
덕분에 머리는 더 깊게 고민하는 법을 배웠고 숫자를 통해 원인을 찾아내는 실력도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그렇게 힘겹고도 치열한 시간을 이겨낸 끝에 우리는 그 해 놀라울 만큼 성과 있게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해의 끝자락에 그는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제 자리에 앉히고 저에게는 리더의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말했습니다.
팀 분위기와 문화의 악화를 이유로 들었지만, 그 말 뒤에 숨겨진 이유들을 굳이 들춰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냥 웃었습니다.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은 척, 쿨한 척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서 있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 순간부터 저의 긴, 그리고 험한 행군이 시작되었습니다.
부서를 전전하고, 여러 Task Force를 전담하며 때로는 협력사들을 방문하고
때로는 해외 법인을 떠돌며 지원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공장 안 사무실에서 숫자로만 바라보던 세상이 얼마나 좁고 얼마나 왜곡되어 있었는지를.
현장을 마주하자 제가 쌓아 올렸던 가설과 논리들이 얼마나 손쉽게, 그리고 비참할 만큼
어긋나고 현실과 멀리 떨어져 있었는지 날것 그대로의 현실이 보여주었습니다.
협력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열악한 환경에서 우리 팀이 세운 생산계획을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그들 역시 더 작은 협력사들을 관리하느라 수작업과 반복된 혼란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말했던 “가내수공업 수준”이라는 표현이 그제야 가슴에 명확하게 꽂혀 들어왔습니다.
열악한 환경, 낮은 임금, 잦은 입퇴사…
그 속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작은 손들의 노력이 낯설고도 가슴 시리게 느껴졌습니다.
이 모든 경험은 제가 잃었던 시야와 시각을 다시 열어 주었습니다.
책상 위 숫자놀음이 아니라 현장의 숨결과 사람들의 손길이 기업을 움직이는 진짜 힘이라는 것을.
우리 회사와 협력사 사이의 거대한 간극이 왜 생산계획을 그렇게 어렵게 만들었는지를
몸으로 깨닫게 된 것도 이때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참 아이러니합니다.
저를 리더 자리에서 끌어내린 상사에게 그 순간만큼은 미움만 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마음 한편에서 작은 고마움이 피어오르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저는 세상을 훨씬 좁은 틀 안에서 바라봤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판단이 제 삶을 흔들어 놓았지만 그 흔들림이야말로
여러 각도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큰 깨우침을 얻게 된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어려움은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전사에 불어닥친 혁신의 바람에 그 상사는 저에게 성과를 내기 어려운 Task 제안을
하였습니다. 여러 방면으로 알아본 결과 기대하는 성과를 내기가 어려운 Task여서
조심스럽게 다른 사람으로 리더를 바꿔 달라고 우회적으로 중간에 계신 또 다른 상사에게
신신당부를 하였습니다만 결국 상사와 저의 틈은 더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기존에 진행하고 있던 Task의 경과보고를 하던 중 저에게
'너와 나 둘 중의 하나는 이 회사를 관두자!'라고 이야기를 했었고.
국내에서는 그 상사와 직장생활을 이어가기가 버거워 여러 차례 해외 주재원을 신청했으나
다른 사람들은 적임자라고 추천을 하였지만 그 상사의 반대로 매번 무산되었고.
변경된 직속상사는 인사평가에서 최고점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하고 최고점을 올렸지만 최종결정권자인
그 상사의 지시로 몇 년간 최하점을 받곤 했습니다.
결국 저는 저에게 길을 터주고 곁을 내주셨던 고마운 분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