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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변 Jul 18. 2023

내 것이 하고 싶다는 친구

대학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 A가 있다. 개업 소식을 전하니까 생각보다 더 축하해 주면서 소고기를 사 주겠댄다. A는 변호사가 아니라 개업이라는 것의 의미가 잘 와닿지 않을텐데, 오랜만에 전한 소식에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는 것이 고맙우면서도 약간 얼떨떨했다.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실마리가 금방 풀렸다. A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어서 더 반가워했던 거였다. 이 친구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서 소규모(라 해도 몇백억씩을 굴리는)의 투자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직장 생활은 여러모로 매우 만족스럽지만 최근 들어서 '결국 내 것이 없다면 안되겠다' 라는 마음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그냥 흘러온대로 살아왔던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A를 보면서 동갑내기 친구이지만 마음 속에서 왠지 뿌듯함이 올라와 속으로 발칙하다고 생각했다.


개업 축하를 위해 모인 우리 둘이지만 이내 '내 것'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토론의 장이 되었다.




나는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옛날부터, 내 것이 하고 싶었다. 그냥 맹목적으로 내 것이 하고 싶었다. 남의 지시를 받는 것이 싫었다. 나에게 지시를 할 정도로 똑똑하면서 존경할 만한 사람은 이 세상에 몇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생각들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내 무의식을 강하게 지배했다. 이런 생각은 결국 개업이라는 선택지로 나를 밀어내고 만 것이다.


요컨대 나는 '내 것을 하는 것' 자체가 너무너무 중요한 사람이다. 역설적으로 그 '내 것' 이 무엇인지는 나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결정하고 내가 일하고 그 결과를 내가 받아들일 수 있다면 편의점이건 식당이건 중요하지 않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A에게 카페나 식당 같은 F&B부터 시작하는 게 어떤지 얘기했다.


그런데 A는 조금 생각이 달랐다. '내 것'을 하는 것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내 것'의 컨텐츠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A는 회사에 찾아와 투자를 해달라고 이야기하는 스타트업 사장들을 많이 만난다고 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A 역시 자기 것을 해 보고 싶다는 꿈을 키웠으리라. A에게 '내 것'은 멋까지 있어야 하는 것처럼 보였다. F&B는 초기 자금이 많이 들고, 무엇보다 자신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학벌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분야라는 점이 그를 두렵게 하는 듯 했다.




성경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라는 말이 있다. 지금 세상은 온통 레드오션 투성이다. 경쟁이 심하지 않은 섹터는 전혀 없어 보인다. 멀찍이서 기회를 노리는 사람들에게 불그죽죽하지 않은 바다는 앞으로도 계속 없을 것이다. 아무리 빨간 바다라도, 그냥 냅다 뛰어들어 보면 그 붉은 파도 밑에는 파아란 블루오션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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