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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변 Jan 27. 2024

굳이 교체할 필요 없어요

나도 그런 변호사입니다만

타고 다니는 차를 긁었다.


프론트 휀다가 다 긁혀 있는 모습. 차야 미안해.

과히 눈에 띄지는 않아서 그냥 타고 다닐까 했다. 이럴 때마다 느끼지만 차는 흰색이 좋다. 무엇이든지 깔끔하게 관리하는 것에는 젬병인 나에게는 더욱 그렇다.


하여간, 나는 괜찮은데, 정말 괜찮은데 주변 사람들이 하도 고쳐서 타고 다녀라 성화였다. 차는 잘 굴러가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쩝.


성화에 못 이겨 이곳 저곳 카센타를 돌아다녀 보기로 마음은 먹었지만, 일이 워낙 바빠서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남부지방법원에 재판이 있어 갔다가 시간이 남아서, 그 앞의 카센터에서 견적을 물어 봤다. '프론트 휀다'와 '사이드 미러'를 모두 교체해야 한다는 소견이었다. 비용을 물어 보니 150만원.


흥정이라고는 전혀 할 줄 모르고 잘 모르는 분야는 전문가를 믿어야 한다는 굳은 소신을 가지고 있는 나다. 백화점에서도 한번 입어본 옷을 내려놓고 나오면 뒷목이 땡긴다. 그냥 차키를 인도하고 150만원을 낼까 하는 불순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약간 고민했지만, 왠지 내키지 않아 다음에 올게요~ 하고 차를 돌렸다. 대견하다!



시간이 또 흐른다. 바쁘게 재판과 상담으로 지내던 차에, 카센터를 하나 소개받게 되었다. '과잉진료'를 하지 않는다는 소개에 마음이 움직였다. 바로 다음 날 전화를 해서 방문했다. 찾아가기 어려운 골목길에 숨어 있어 몇 바퀴를 돌았다.


'진찰'을 해보시더니, 대뜸 첫 마디가 이랬다.


아 이건 굳이 안 바꿔도 돼요


물론 사이드 미러는 약간 깨진 게 있어서 미관상 어쩔 수 없이 바꿔야 하지만, '프론트 휀다' 는 바꾸지 않고 도색만 하면 되는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비용은 합쳐서 50만원. 비용도 비용이지만, 바꾸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말씀하시는 게 정말 마음에 들어서 차를 맡기고 나왔다.


언제 긁혔냐는 듯!

며칠 후에 다시 방문해서 차를 확인하니, 긁힌 부분은 정말 깨끗하게 수리되어 있었다. 고개를 연신 숙이고 차를 타고 나왔다. 차량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고 내려와서 종알종알 잔소리를 하시는 아저씨의 모습이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간만에 따사로운 오후였다.




차를 몰아 사무실로 향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젖었다.


변호사싸움을 부추기고, 소송을 하자고 설득해서 착수금을 많이 받는 게 좋다. '이거 소송까지 할 필요 없어요', '소송해 봤자 실익이 별로 없습니다' 하는 말은 선뜻 입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공포와 스트레스, 불안감을 먹고 사는 직업이 슬프지만 바로 변호사다.  


그래서 변호사가 많아지고, 변호사시장이 안 좋아지면 쓸데없는 분쟁과 소송이 늘어난다. 고통과 스트레스가 배가된다.


그러나 항상, 나는 그러지는 말자고 다짐한다.  '소송할 필요 없어요, 상담료만 주세요' 하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 '에이, 굳이 갈아낄 필요 없다' 며 웃던 아저씨처럼.


물론, 갈아낀 거나 다름없게끔 수리하는 실력이 먼저여야겠다!


차 이야기 쓴 김에 차에서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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