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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Dec 03. 2022

산후우울증 치료 두 달 후기

워킹맘 다이어리

남편의 도움으로 4년 동안 하던 단축근무를 이제 하지 않게 되었다. 일본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업무가 밀려있었지만 정상 퇴근을 하니 한결 마음은 가벼웠다. 남편은 내가 하던 아이들 이유식 먹이기 청소 저녁 준비 다 하고 있었다.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는 없어도 덜 불행하다고 느끼게 해 줬다. 최근 몇 주 동안은 출장이 많았다. 평소에는 없던 출장이 발표할 일, 설명회 듣는 일로 잦았다. 어제는 판교 출장이 있었다. 차가 없어 왕복 세 시간가량을 지하철에 있었다. 함께 가는 동료와 여행 갔다 온 이야기, 업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우울증 약을 먹은 지 두 달쯤 되었다. 어떤 날은 바쁜 나머지 거르는 날도 있고 내가 우울증이 있었다는 걸 믿기 어렵게 괜찮은 하루를 보내는 날도 있었다. 어제는 정말 우울증이 무색한 하루였다. 아침부터 출장 간다고 기진맥진했지만 새로 맞춘 안경이 나와서 퇴근길에 안경 피팅을 하고 새 안경을 쓰고 퇴근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유리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또 봤다. 안경이 익숙한 편은 아니라 어색했지만 계속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새로운 스타일에 적응하려 했다. 우울증 치료를 하면서 내 외형적인 스타일도 많이 바뀐 터라 나를 오랜만에 보는 지인들은 내 외모에 다들 깜짝 놀라는 편이다. 우울증은 확실히 괜찮아지고 있는 것 같은데 내 외모는 괜찮아지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어제는 새벽에 축구를 본다고 남편이 나를 많이 거들어줬다. 나 대신 아이 둘을 전부 재우고 맥주를 마시며 새벽까지 월드컵 경기를 보았다. 종료 4분 전에 넣은 득점골에 아파트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고 남편을 끌어안으며 박수를 치기도 했다. 축구가 끝나고도 새벽 세 시가 다 되어가는데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침대에 누워 축구 하이라이트를 돌려보고 또 돌려봤다. 우울증을 이렇게 종료하겠습니다 말한 뒤 종료 파티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우울증 약은 두 달 복용 후부터 보통 그 효과가 나온다고 한다. 나는 지금 그 효과를 몸소 체험하고 있을 뿐이다. 우울증 치료를 받았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남편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의사의 진단 없이 중단하지는 않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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