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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Dec 09. 2022

부모의 복잡한 속내

워킹맘 다이어리

팀원들과 점심을 먹고 산책하다가 한 팀원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엄마는 나 키울 때 아무것도 안 한 거 같은데?"

A의 어머니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었지만 발끈한 나는 A에게 꼰대처럼 말해버렸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그 말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웃음이 터져 버렸다.


엄마가 되어서 자식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건 애초에 성립되지 않는 말이다. 열 달 동안 뱃속에 품는 일부터 아무 일이 아니다. 통제되지 않는 내 몸뚱이를 열 달 동안 잘 건사하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아무 일이 아니다. 회사 동료들과 가끔 육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동료들은 내가 참 자유분방하게 아이를 키운다고 말한다. 나는 아이에게 tv나 핸드폰 시청에 대해 아예 보여주지 않기보다 아이에게 "그럼 딱 3편 보고 양치하러 갈까?"라고 말한다.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아이에게 선택지를 주는 편이고, 아이가 최대한 자신의 감정표현을 할 수 있도록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첫째 아이는 승부욕이 강한 편이다. 어느 날은 어린이집에서 양쪽 손등에 도장을 받아와서 물으니 달리기를 했는데 1등을 했고 그냥 1등이 아니라 두 바퀴나 앞서 1등 해서 도장을 두 개나 받아왔다고 한다. 1등 하라고 부추긴 것도 아닌데 이기는 걸 좋아하고 지는 걸 싫어하는 첫째. 나는 사실 그런 아이의 성미가 늘 걱정이다. 1등 못 해도 괜찮다고 말해주거나 일부러 아이와 게임을 해서 아이에게 져주기도, 일부러 아이를 이겨서 실패의 쓴맛을 알려주기도 한다. 아이가 시키지도 않은 공부에 열을 올리면 '우리 이제 공부 그만 하자' 오히려 내가 아이 앞에서 생떼를 부리기도 한다.   


어떤 이에게는 무심한 듯 보일 수도 있겠고, 어떤 이에게는 우려의 마음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어찌 됐건 나는 엄마 된 입장으로 이런 복잡한 속내를 품고 있다. 그리고 이런 복잡한 속내로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게 남들 눈에 어찌 보이건 간에 나는 여러 방면으로 아이에게 좋은 편을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아이에게 어떤 엄마가 되고 싶어?라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말할 것이다. 친구는 나의 마음을 보듬어 주고 내가 솔직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나를 존중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편하게 아이가 언제든지 엄마인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런 아이에게 나는 훈수를 두거나 혼을 내기보다 위로가 되는 존재이고 싶다.


이런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의 저변에는 내가 이런 부모의 손에서 자란 이유가 큰 것 같다. 나의 부모님도 나를 이렇게 키우셨다. 아이 앞에서 걸리적거리는 일 없이, 부모의 눈치나 부모의 딴지에 걸려 주춤하는 일 없기를 바라는 마음. 나의 부모님도 딱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려 부단히 도 노력하신 듯하다.  


어제는 부모님과 통화하다가 아버지에게 혼이 났다.

"서영이 네가 굉장히 잘못하고 있는 거야!"


부모님에게 귀여운 손녀 보시라고 찍은 영상에 찍힌 나와 첫째 아이의 대화가 아버지 눈에 굉장히 거슬렸나 보다. "나는 그냥 장난친 건데"라고 변명을 해보았지만 아버지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처음에 들었을 때는 아버지가 대수롭지 않은 일에 괜한 오해를 하고 있다고 여겼는데, 곱씹어볼수록 아버지의 말이 너무나 일리가 있어서 고개를 끄덕여졌다.


아버지가 나를 대충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대충 키우는 게 열심히 키우는 것보다 훨씬 고난도 육아법이라는 걸 또 새삼 깨달았다. 아버지도 이런 복잡한 속내로 나를 키웠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또 뭉클해졌다. 역정을 내는 아버지의 얼굴이 자기 전에 몽글몽글 떠올랐다. 그 역정 내는 모습이 무섭다거나 서운하다기보다 오히려 감사하다고 여겨졌다. 앞서 가는 손녀딸 뒤에서 뒷짐 지고 걷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부모들의 이 복잡한 속내를 자식들은 모른다. 부모가 되어보아야 반의 반 정도는 가늠할 수 있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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