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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펄미 Apr 29. 2024

강렬한 첫인상에 압도되어 버렸다.

세뇌의 비법 1. - 사람을 속이려면 첫인상이 중요해.

 인간관계에 있어서 첫인상이 얼마나 중요할까? 난 적어도 상대방과 나의 우위를 정하는 데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몇몇 썰만 봐도 그렇다. 운전을 개떡같이 하며 시비를 걸던 사람도 막상 마동석 같은 덩치의 사람이 차에서 내리면 깨갱한다지 않나. 일명 '환불 메이크업'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순해 보이면 얕보이기 십상인데, 메이크업을 통해 일부러 세 보이는 인상을 만들어 환불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4년 동안 나를 세뇌했던 그 사람(앞으로는 'J선생'이라고 하겠다.)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그 화실에 데려간 친구를 통해 J선생이 무섭다는 얘기를 듣긴 했다. 처음 화실에 들어가 J선생을 마주쳤을 때 난 '무섭다'라는 단어를 두 눈으로 느꼈다. 그 강렬하고 독특한 첫인상에 압도되어 버렸으니까.


 지금 생각해 봐도 J선생의 겉모습은 꽤나 특이했다. 애가 둘이나 있는 30대 후반 여자인데도 비슷한 또래의 동네 아줌마들과는 상당히 달랐다. 마르고 군살 없는 몸매, 눈처럼 하얀 피부, 뾰족한 턱과 하나로 질끈 묶은 새까만 파마머리. 하지만 무엇보다도 특이한 건 바로 J선생의 패션이었다. 어떻게든 그 비주얼을 설명해보고 싶어서 최대한 비슷한 느낌의 사진을 가져와봤다.


 1. 큐빅이 박힌 야구모자

쿠팡에서 검색한 사진


 J선생은 항상 큐빅이 박힌 야구모자를 쓰고 다녔다. 이 사진처럼 큐빅이 다닥다닥 붙어있던 건 아니었는데, 그나마 이게 제일 비슷해 보여서 가져온 사진이다. 이런 모자 때문에 멀리 있어도 눈에 항상 띄였던 것 같다.


 2. 큐빅 박힌 색안경


쿠팡에서 검색한 사진


 사진은 선글라스지만 실제로 J선생이 쓰고 다니던 건 컬러렌즈가 들어간 안경이다(일명 '색안경'). 안경테 부분이 항상 저렇게 두껍고 큐빅이 박힌 화려한 디자인이었다. 그런데 쓰다 보니 드는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색안경을 쓰면 색이 왜곡되어 보이지 않나? 당시 작품활동도 하던 '화가'였는데 미묘한 색 변화에 둔했던 걸까? 아니면 눈앞의 색 필터를 빼고 볼 수 있는 색감 천재인 건가?


 사실 나 같은 경우에도 예전에 잠깐 프랑스자수 강사로 활동할 때, 노란 조명 아래에 있으면 색이 왜곡되어 보여서 무조건 하얀 조명 아래에서만 작업하곤 했었다. 영상과 디자인 쪽에서 일하는 내 남편도 블루라이트 차단 기능이 있는 안경을 쓰면 미묘하게 색감이 노랗게 보이는 것 때문에 작업할 때 불편하다고 한다. 그런데 미묘한 차이도 아니고 저렇게 진한 색안경을 그림 그릴 때 쓴다? 글쎄, 내가 화가가 아니라서 모르는 걸까?


 아무튼 중요한 점은 저 색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매가 매우 강렬했다는 점이다. 눈에 힘을 주고 나를 쳐다볼 때면 나도 모르게 온몸이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색안경이 없었다면 그렇게까지 강한 인상을 줄 수 있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어쩌면 고도로 계획된 전략이었을지도?


 3. 몸매를 드러내는 쫄티와 츄리닝 바지


네이버쇼핑에서 검색한 사진


 저 사진의 상의와는 조금 다르지만 J선생은 몸에 착 붙는 티셔츠를 항상 입었다. 거기에 저런 핏의 트레이닝팬츠는 필수다. 여름엔 반바지도 입었는데 내 기억엔 항상 상의를 하의 안에 넣어 입었던 것 같다. 당시 J선생은 우리 엄마 또래였지만 우리 엄마랑도, 동네 아줌마들이랑도 전혀 다른 패션과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자기 관리를 잘한다는 이미지 때문에 신뢰감이 더 들었던 것 같다.


 4. 큐빅 박힌 키높이 운동화


쿠팡에서 검색한 사진


 생각해 보면 큐빅을 참 좋아하는 인간이었다. 실제 키는 나랑 몇 차이 안 났지만, 외출할 때면 항상 키높이 운동화를 신었기 때문에 내가 살짝 올려다봐야 했다. 물론 처음 봤을 땐 실내였기 때문에 저런 운동화를 신고 있지 않았지만 저것도 J선생의 트레이드 마크였기 때문에 한 번 넣어봤다.


 21년이 지난 지금, 저것들을 다 조합하면 촌스럽기도 하고 저게 뭐가 강렬해? 이럴 수도 있지만, 그때 당시에는 상당히 인상 깊었다. 게다가 위로 치켜 올라간 사선형 눈썹과 정색하는 표정 때문에 더 그래 보였다. 게다가 목소리는 어찌나 내리깔고 매섭게 얘기하는지. 그야말로 난 첫인상에 잡아먹히고 만 것이다.


 만약 첫인상이 순하고 상냥했다면 난 '이 선생님의 말을 거역하면 안 돼.'라는 생각을 안 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J선생 개인의 패션 취향이었겠지만, 그 첫인상 하나로 살면서 많은 우위를 점했을 것이다. 실제로 저 인상에 지랄 맞은 성격까지 더하니 아무도 건드리질 못하더라(이 내용은 나중에 다시 설명하겠다.) 여기서 궁금한 거 하나. J선생, 지금도 특이하게 하고 다니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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