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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펄미 Apr 29. 2024

넌 나한테 선택받았어.

세뇌의 비법 2. - 관계에 특별함 부여하기.

핀터레스트 이미지


 사이비 종교에서 사람을 끌어들일 때 쓰는 방법 중에 하나가 '당신은 선택받았다!' 전략이라고 한다. 상대방의 약점을 파고들며 네가 지금 이렇게 힘든 이유는 네가 큰 사람이기 때문이고 너 하나로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지금 널 도울 수 있는 건 우리뿐이라고 얘기한다.


 J선생도 마찬가지였다. 초장부터 '테스트'라는 명목으로 특별함을 부여하고, 중간에는 '스승과 제자'라는 타이틀을 부여해 우리의 관계가 남들과는 다르다는 걸 주입시킨다. 마지막으로는 '영적'으로도 가까워져야 한다며 종교까지 강요했다. 지금부터 J선생의 그 세 가지 방법을 설명해보려고 한다.


 1. 테스트

 J선생이 운영하는 화실에서 그림을 배우기 위해서는 '테스트'가 필요하다. J선생이 새로 들어오는 원생들, 특히 학부모들한테 하는 얘기가 있다.


 "여기는 돈을 목적으로 아무나 받아주는 학원이 아닙니다. 그림에 소질이 있는 애들만 선별해서 가르치는 게 제 원칙입니다. 그러니 이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다른 학원으로 가세요."


 원생들과 학부모들은 이 말에 홀라당 넘어간다. '돈만 벌기 위한 일반 미술 학원과는 차원이 다른 곳이구나.' 하는 특별한 인상을 받는다. 게다가 테스트에 통과하기라도 하면? 그때는 이제 선택받은 자가 되는 것이다. 나 역시도 테스트를 거쳤다. J선생이 주는 동화책 그림을 똑같이 그리면 되는 거였는데, 다 그리고 나니 J선생이 무표정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소질은 있네."


 이것만으로도 나는 인정받은 기분을 느꼈다. 나 자신에게는 자만심이, 그리고 J선생에게는 충성심이 생긴다. 이렇게 깐깐한 선생에게 인정을 받았으니 나에게 보통의 애들은 넘볼 수 없는 자격이 생겼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웃기게도 내가 그곳에 4년 동안 다니면서 이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어쩌면 단순히 J선생의 영업전략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불행하게도 나에게는 세뇌의 첫 단계가 되고 만 것이다.


 2. 스승과 제자

 J선생이 나를 포함한 세뇌의 피해자 4명에게 늘 하는 얘기가 있었다. 


"난 스승이고, 너희들은 내 제자다. 단순히 그림만 배우고 대학에 가면 끝나는 그런 관계가 아니야." 


 자신은 우리에게 그림뿐만 아니라 삶의 지혜와 인성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고, 오히려 부모 자식 간의 관계보다 더 끈끈한 사이라고 늘 강조했다. 자신이 모시는 스승과의 예전 일화를 들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소한 잘못을 하나 했는데 그 스승이 벼루를 던져서 머리가 깨졌다나? 머리에서 피가 철철 흘렀는데도 자기가 잘못했다고 무릎 꿇고 빌었단다. 게다가 스승이 손 하나 까딱 안 하게 새벽부터 온갖 집안일을 해놓고 벼루에 먹까지 갈아놨단다.


 그럼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J선생은 벼루를 맞고 머리까지 깨졌다는데, 그럼 지금 내가 힘든 건 아무것도 아니었네. 스승과 제자의 길은 이렇게 어려운 거였구나.' J선생에게 그림을 배우긴커녕 설거지에 청소에, J선생 아들의 과외와 숙제까지 해주고 있는 실정에서도 말이다. J선생이 실제로 그 스승에게 그렇게 헌신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걸 수도 없이 반복해서 들은 나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되는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3. 종교 강요

 내가 그곳에서 빠져나오길 결심했던 일화 중 하나이다. J선생은 항상 자신이 제일 예뻐하는 수제자 지연이와 나를 비교하곤 했다. 지연이는 자신과 마음이 100% 연결되었는데 나는 몇%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부족한 몇%를 채우기 위해 나에게 무언가를 제안했는데, 그 내용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마음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영적으로라도 연결해야겠다. 내가 네 대모가 될 테니 세례를 받고 내 대녀가 되거라."


 천주교였던 J선생은 그동안 한 번도 내게 종교를 강요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더욱 당황스러웠다. 난 무교였는데 그것만은 도저히 따를 수가 없더라. 그래서 난 처음으로 J선생에게 "싫어요."라고 말하게 되었다. 하지만 곧이어 J선생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귀를 의심하게 했다.


 "내 말 거역하지 마. 너에게 선택권은 없어. 이건 제안이 아니라 강요야."


 그때 난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동안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스승과 제자의 관계라는 이유로 그게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J선생은 나를 정신적으로 완전히 지배하는 수단으로 종교 강요라는 카드를 꺼냈겠지만, 불행하게도 그 카드는 자충수였다. 그 이후 내가 어떻게 빠져나오게 되었는지는 나중에 다시 설명하도록 하겠다.


 만약 내가 J선생의 종교 강요에 넘어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난 영영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다. 영적으로 연결된다는 그 말에 꽁꽁 묶여버렸을 테니까. 종교에 있어서만큼은 내 소신을 지켰던 그때의 내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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