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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 Jul 19. 2024

나이아가라 폭포에 풍덩!

나의 북미 여행 이야기 4 : 비현실과 현실의 일치




버스 창 밖으로 탐스러울 만큼 싱싱한 녹색이 깔린, 넓고 길게 펼쳐진 잔디밭을 보느라 정신없다. 그 경은 내가 기억하고 동경해 온 이미지다. 아마 따뜻한 영화를 보며 감동을 진하게 받은 영향이지 싶다.


이곳 워싱턴 D.C. 는 내일 캐나다 동부로 이동 전, ‘들른 곳’ 정도였다. 하지만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풀밭 위 나무 그늘 아래에 한가하게 주말을 즐기는 저들의 옆자리에 끼어 있는 나를 상상해 다. 언젠가 이런 광경을 직접 보고 싶었다. 소원을 이룬 셈이다.


그들이 피한 땡볕에 서서 둘러보며, 사진보다는 마음에 가득 담았다. 살이 타 들어갈 듯 뜨거운 햇살이 내리꽂는 잔디밭에 털썩 주저앉았다. 뒹굴고 싶다. 맺히는 땀을 상쾌한 바람이 바로 쓸어간다. 풀은 축축하지 않고 뽀송뽀송하다. 어릴 때의 그 잔디다. 모든 게 만족스럽다.

땡볕마저 환상, 이곳


대망의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려고 캐나다를 향해 넓은 평원을 옆에 두고 달린다. 북미 동부 여행은 바로 이곳을 보고 싶다고 몇 해전 말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말발굽 모양의 나이아가라의 영상과 이미지를 보고 그 웅장함에 반했더랬다. 국경에 가까울수록 두근거린다. 아마 보자마자 감동받아 소리를 지를 모른다.


캐나다 측 입국절차는 간단했다. 버스는 국경을 넘었고, 왼쪽 저 멀리 나이아가라가 아주 작게 보인다. 거대한 폭포를 제대로 마주하고 싶어서, ‘지금 안 보련다.’ 라며 고개를 돌렸다.


여행 4일 차를 맞이한다. 이번 여행은 아이처럼 놀고 감동을 받기 위해 떠나왔다. 낯선 여행지에 적응하기 위해 인내하며 겪는 경험은 하고 싶지 않았다.  


장담은  못한다. 특별히 오늘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떤 사람이 될지, 어떤 나를 발견할지 전혀 예측이 안된다. 이 여정 리듬에 올라타 시공간을 온전히 누릴 뿐이다.





젯보트는 물을 무서워해 전혀 탈 생각을 안 했다. 그러나 도전해 보자! ‘이곳에서는 내가 물에 빠져도 얼른 구해 줄 거야.’ 타국이지만 이런 믿음이 우러나온다. 온통 젖을 수 있으니 갈아입을 옷을 준비했다. 샌들과 속옷까지 야무지게 챙겼다.


나눠준 우비와 구명조끼를 입었다. “우비 후드를 꼭 쓰세요.” 안내요원이 말한다. 이어 “끈을 묶어야 해요.”라고 하는데, 한쪽 끈이 쏙 들어가 안 보여 마음이 급해진다. 남편은 걱정이 되었는지 투박한 손가락으로 끈의 끄트머리를 빼려고 애썼지만 실패해서 서로 낙담하고 있는데, 기념사진을 찍으라고 부른다. 우리는 그새 잊고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었다.


나는 겁이 심하게 많다. 심지어 애들이 어릴 적 함께 놀이기구를 탈 때, 아이들 가운데 앉아 타던 ‘창피한’ 엄마였다. 곧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것도 모른 채로, 그 옷차림으로 40분이나 탈 예정이다. 마음이 다시 불안하다.


보트를 조종할 젊은 요원이 어찌나 쾌활하게 파이팅을 하던지 걱정을 잊었다. 흔히 들어본 구호지만 에너지가 치솟는다. 다른 탑승자들도 같은 마음인 것 같다. ‘좋아. 각오하자!’ 용기가 생겼다. 재밌을 거라는 기대가 더 커진다. 그때 까지도 우비 후드의 중요성을 몰랐다.


출발 후, 보트를 급회전을 시키며 워밍업을 하고 있다. 점차 나이아가라 하류 물살의 중심을 향한다. 강물의 급류에 맞춰 춤을 추듯 출렁댄다. 보트 바닥은 이미 물이 찰랑거리다 빠지곤 한다. 머리카락은 오롯이 젖은 지 오래다.


본격적으로 보트의 액션이 시작되었다. 급 물살에 좌우로 휘청거리다 회전하더니, 이내 높은 파도와 같은 높이 치솟은 대형 물살 중심을 향해 깊숙이 들어갔다. 강물에 파묻히는 모양새로 우리는 하얗온전히 뒤집어썼다. 


세상에! 재미에 겨워 웃음만 나왔다. “우리 타길 잘했어!” 큰 소리로 말했다. 남편도 소리 내어 웃는다. 나만큼 흠뻑 은 사람은 없어 보인다. 마음을 먹었다. ‘까짓 거, 온통 젖으라고 해! 이걸 즐기자.’, ‘급 물살을 온몸으로 맞이하자.’ 두 번째, 세 번째 시도가 기다려진다.


뜻밖에 희열을 느꼈다. 보트가 급류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전원 고개를 숙였지만, 나만 얼굴을 들고 우리를 향해 떨어지는 ‘물폭탄’을 올려보며 즐겼다. 어디서도 경험하기 힘든 통쾌함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누리고 있다. 지금의 내가 마음에 든다. ‘내려놓는 용기’를 가지니 더 즐겁다. ‘회피하지 않는 오기’로 변신하니 거인이 된 느낌이다.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이게 바로 원하는 나다!


강물 속으로


문제는 떨어지는 체온으로 온몸이 덜덜 떨렸다. 내 일생을 되돌아보면 이런 경우, 열이 나고 심한 감기로 며칠은 반드시 앓게 된다. 내린 후에 타월로 젖은 몸을 재빨리 닦고 준비해 간 옷으로 갈아입었다.  '몸살 안 걸릴 거야 걱정 마.'라고 되뇌며 비상 감기약을 먹고 휴식을 취했더니, 다음 날 멀쩡했다. 되레 건강해진 것 같다. '진정으로 즐기고 즐거우면 감기도 이기는구나.'




다음 날, 나이아가라 혼블로크루즈 탑승을 위해 대기 중이다. 어제의 경험을 살려 여유로운 감상을 위해 준비물을 더 꼼꼼하게 살폈다.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하려면 단단한 준비물과 마음을 내려놓는 여유로움의 조화가 필요함을 알았다.


크루즈는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는 폭포를 향해 서서히 다가가 바로 앞에 섰다. 쿵쿵쿵! 거대한 군중이 북을 쳐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저 안으로 빨려 들어갈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손잡이를 더 세게 붙잡았다. 이곳에 오기 전만 해도 큰 소리로 “야호!” 하며 소리를 질러 보려고 했었다.  


기세에 눌려 소리는커녕 숨도 겨우 쉬고 있다. 시간이 멈춘 거 같다. 그 웅대하고 장엄함에 눈물이 나올 것 같다. 대자연 앞에서 일시정지 된 상태, 아무 생각이 없다. 아주 작은 미물이 되어 감히 감탄도 잊었다. 생각이 아예 끊긴 것인가. 멍하니 바라보았다. 지금 이곳은 현실 세계가 아니다. 두렵지만 떠나기 싫다.


어떤 아기의 악 쓰며 우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정신이 좀 들었다. 얼마나 놀랐을까. 자지러지는 듯한 울음은 폭포 소리에 곧바로 묻히고 퍼진다. 그 아기는 이 거대한 자연의 울음 앞에서 자신의 울음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된다는 걸 결국 알게 됐을까?


되돌아갈 때 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마주했던 그 장면을 죽을 때까지 간직하고 . “속이 후련하네.” 남편이 말한다. 이런 표현을 처음 듣는다. “내 가슴속 쓰레기가 다 쓸려간 것 같아. 후련해.”


난 그 ‘쓰레기’가 어떤 것인지  알 것 같다. 인내심이 강한 만큼, 감정은 화석처럼 굳어갔던 것이리라. 사업의 위기로 인한 여파를 감내하며 아래로 쓸어내린 것들은 쓰레기가 되었다. 가장이라는 이유로 애써 강한 모습만 보이며 자신의 상처는 방치해 온 사람. ‘속이 후련하다’는 그 말은 오래도록 마음을 울린다.


말없이 함께 걷던 나는 겨우 입을 뗐다. “정말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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