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에세이. 좋아하는 것을 사랑하는 일에 관하여 [7월]
“어느 누가 내려와도 이상하지 않은 하늘”
덥다. 오전 10시. 밖을 나선 나는 두 발로 내딛고 서 있는 세상의 온도를 믿을 수 없었다. 물 한 컵 끌어안고 오븐으로 전진한 무모한 모험가가 된 기분. 팔과 다리를 잘 접어서 옷자락 뒤로 숨겨 넣고 싶은 지경이었다. 마스크 때문에 얼굴이 초코 바닐라 반반 아이스크림이 되면 어쩌나 싶은 고민이 일어서 고개를 차츰 숙이고 걷는다. 나는 구워지고 있다- 출처 모를 헛소리가 먹은 더위를 헛구역질하듯이 새어 나왔다.
그런 날이었다. 풍성하게 피어오른 구름 사이를 잘도 피해서 내리쬐는 햇빛을 맞으며 "나는 운도 없다"고 이상한 소리만 떠올리던 날. 푹푹 익은 거리를 피해 자그마한 공간에 들어섰다. 무어라 손글씨로 눌러 쓴 이야기가 곳곳에 붙어 있어 아늑한 공간이었다. 그중 자그마한 쪽지 사이를 커다랗게 차지하고 있는 옅은 살구빛의 종이, 손글씨가 아닌 타자기로 쓰인 글씨가 있었다. 시라 불러야 할까, 일기라 불러야 할까, 그냥 쪽지라 불러야 할까. 많은 쪽지들 중에서도 그 짧은 글을 읽기 시작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오늘 하루는 진짜. 진짜 더웠는데”라는 첫 문장. 오늘도 진짜 덥다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공감 하나로 문장들을 쭉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너무 더운데, 하늘이 예쁘더라. 만약에 천사나 신이란 게 진짜 존재한다면 이런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밝은 곳에서 천사만 내려오는 게 아닐 수도 있으니까, 어느 누가 내려와도 이상하지 않은 하늘이었어”라는 이야기였다. 마지막 문장을 읽기도 전에 무어라 답하고 싶은 말들이 떠올랐다. 그 문장들에 이미 마음이 동했다는 의미였다. “있잖아. 오늘도 진짜 더웠는데, 오늘 내가 본 하늘도 그런 하늘이었을지도 모르겠네.”
내가 앉은 자리엔 남기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남기라는 듯이 포스트잇 한 뭉치가 펜과 함께 놓여있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글자를 꾹꾹 눌러 무어라고 적어본다. “오늘도 진짜 더웠어, 진짜 실없는 소리만 늘어뜨리다가 하늘 볼 생각을 못 했는데, 네 말을 보니 오늘도 그런 하늘이었던 것 같고, 그래서 갑자기 하늘을 다시 올려다보고 싶어지네. 내가 맞았던 햇빛도 어느 누구의 쏟아진 손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라는 말을 조금 정성을 담아서, 나대로의 문장으로 끄적였다. 그리고 그 살구색 종이 오른쪽 아래 귀퉁이가 기대고 있던 벽에 붙였다. 여기는 그런 곳인 것 같았다. 썼다면 남겨도 되는 곳. 떨어지지 말라고 접착된 부분을 손가락으로 문대다가 결국 늘 들고 다니던 마스킹 테이프를 작게 쭉 찢어서 붙여놨다. 모르겠다. 그냥 그런 마음이 들었다. 계속 여기에 붙어 있었으면 좋겠다. 구태여 의미를 따지진 않았다.
애석하게도 다시 밖으로 나와 만난 저녁 하늘은 엄청난 먹구름뿐이었다. 해가 뜨다가도 비가 갑작스레 쏟아지곤 하던 나날이었기 때문에 별로 놀랍진 않았지만, 이번엔 좀 아쉬웠다. 덕분에 제멋대로 믿어볼 수는 있었다. 어찌 되었든, 오늘 낮에 본 하늘은 어느 누가 내려와도 이상하지 않은 하늘이었다고.
“기본에 충실한 삶”
“난 기본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나” 요즘 대충 때워먹는 초라한 식사들을 생각하며 “역시, 절대 아니지”라고 대답했다.
삶에서 ‘기본’이란 무엇일까? 인간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최소한의 조건들 같은 걸까. 매일 아침 눈을 뜨고 밤엔 잠에 드는 일. 식사를 챙기는 일. 살아가는 공간을 갖추는 일, 노력하다가도 충분히 쉬어가며 에너지를 유지하는 일. 그런 것들이 떠오른다.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고, 하지 않으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일들. 이런 것들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나는 유쾌하지 않은 마음으로 눈썹을 들썩이며 내가 나열한 것들을 다시 확인한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
여유가 없어지면 기본적인 것들을 가장 먼저 놓는다. 당장 해결할 수도 없는 문제지만, 그런 문제여서 밀려오는 벅찬 고민들을 마주하면 기본에 충실한 삶이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여겨지기 시작한다. 의자엔 대충 벗어 놓은 옷이 쌓여가고, 책상에는 제 자리에 놓지 못한 물건들이 뒤섞이고, 이불은 가지런히 한 번 개어지지 못한 채 긴 시간을 구겨진 채 머문다. 널브러진 방에 걸맞게 나도 널브러진다. 잔뜩 쪼그라든 머릿속도 그 순간에 함께 널브러진다. 천장을 보며 스스로 한심하다고 말하기가 두려워 “나 대체 뭐지”라는 질문으로 독백을 대체한다. 눈을 두 어번 깜빡인다.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모든 게 순식간이다. 다른 게 급하다고 기본을 놓치는 일이, 새로운 방향을 고민하며 뚜벅뚜벅 걸어온 발걸음이 정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 취업 준비에 남들이 쌓아온 것들을 보며, 그간 진심으로 마음 담아 해오던 것이 무용지물처럼 느껴지는 것이 말이다. 뿌듯한 마음이 의심스러운 마음이 되는 것도 순식간이고 기쁨이 원망이 되는 것도 순식간이다.
내가 약한 탓일까 싶지만, 사람이 지닌 마음의 속성이 본디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처음 만난 벽은 처음 마주한 것이기에 그 순간의 나에겐 매번 벅차기 마련이다. 반복되는 일상 사이에서 그 처음들이 단단한 벽처럼 끼어들어 우리 앞에 버티고 서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벽에 부딪쳐 쓰러지는 것은 분명 단지 우리가 약한 탓뿐만이 아니다. 다만 쓰러진 순간에 무엇인가를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면 그 벽을 마주한 나의 태도에 관한 것을 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래서 무작정 제 몸을 해하면서까지 벽을 온몸으로 깨부수려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잠시 물러나 그 벽을 관조하며 유연하게 벽을 돌파해나가기를 꿈꿀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일단, 우리는 계속 그렇게 부딪치며 살아가야 하니까. 그리고 벽 앞에서 불현듯 다가온 경직된 순간을 조금씩 유연하게 풀어내는 시작이 이 ‘기본’들에 있는 것 같다.
어느 날 투정 부리듯 “부정적인 생각을 멈추는 법을 알려주세요”라고 올린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일단 몸을 움직여보자”라는 답을 받았다. 맞다,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삶이 생동하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기본적인 행위이리라. 일단 움직이는 것. 무심코 ‘그럼 책상부터 정리해봐야겠다’라고 답장을 보냈는데, 정말 정리해야겠다는 부담이 일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 친구에게 거짓말을 하게 되는 거니까. 그래서 앉은 자리에서 손에 잡히는 것들을 제자리에 가져다 두어 본다. 쌓인 책 중 읽지 않을 것을 책꽂이에 꽂아두고, 자잘한 물건들은 서랍에 넣어둔다. 휴지로 먼지 한 번 그러 모아 닦아주고, 노트북을 제 위치에 돌려 놓는다. 그럼 마음이 정리되는 게 아니라, 비워진다. 쓰레기는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잘 모아서 버려야 하는 것처럼. 정리될 수 없는 거대한 문제들이 제자리로, 허공으로 사라지고 비워진다. 가장 기본적인 여유는 그렇게 생겨난다.
다음 날은 널브러진 옷을 잘 개어 옷장에 넣어 둔다. 그러다 바닥을 깨끗이 쓸고 닦고, 어느 다음 날엔 밀린 빨래들을 깨끗이 돌린다. 여백이 생기니 욕심이 다시 들어찬다. 아침에 조금 더 일찍 일어났으면 좋겠다. 다음날, 9시를 목표로 맞춘 알람을 그냥 꺼버리고 10시에 일어난다. 조바심 대신 그렇다면 조금씩 시간을 일찍 당겨보자고 한다. 내게 주는 여유는 그런 모습인 것 같다. 지금의 내 상태를 충분히 살피며 유연하게 벽을 넘어서는 것. 그러니까 여전히 벽을 넘어서고자 하는 나를 조금 더 너그럽게 이해해 주는 것. 오래간만에 일찍 잔 어느 날, 아침 9시에 딱 눈이 떠졌다. 거기까지 열흘이 걸렸다. 괜찮았다. 어찌 되었든 이제 9시에 일어나니까.
언젠가부터 정말 정말 맛있는 게 먹고 싶다는 마음이 인다. 그냥 때우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 어떤 음식을 대접할까를 며칠씩 고민한다. 그러다 먹고 싶은 게 생기면, 그것만 바라보며 하루를 버텨본다. 사소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빈틈을 채우는 것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오밀조밀 내게 알맞은 일상을 찾아 가장 익숙한 것부터 찾아 그러 모은다. 그렇게 모은 것을 그저 끌어안고 있기를 반복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살아가는 동시에 여백을 품어내는 방식이다. 그제서야 더 나아가고 싶은 넓은 세상을 다시 응시할 힘이 생기기 시작한다. 기본에 충실한 삶. 참 별거 아닌 것 같은데, 별거 아니어서 모든 것이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이러다가도 언젠가 또 마구 쪼그라드는 기분에 휩싸이고 말 것이다. 덮인 곳은 숨이 막히고 모나게 접힌 곳은 쿡쿡 시려서 차라리 이렇게 끼여있는 게 최선의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기분 말이다. 그래도 손가락부터 꼼지락거리는 귀여운 몸부림부터 실천해보자고, 앞으로도 이마를 벽에 콩콩 박을 나에게 말하고 싶어 이런 글을 남긴다. 그냥 “한번 좀 펼쳐볼까?”하는 가볍고 또 가벼운 말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일상, 펼쳐져 있는 것만으로도 충실히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을 찾아가자고 말이다. 언제든지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도 괜찮다고 나를 도닥여주고 싶다.
“여름밤은 화이트 와인일지도.”
술을 잘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나름대로 마시는 규칙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레드 와인이나 위스키에는 초콜릿으로 만들어진 디저트 그 무엇인가를 먹어야 한다는 공식 같은 것. 최근 내가 애정하고 실천하는 공식이기도 하다.
공식을 정해둔다는 건 심리적으로 매우 편한 일이다. 매번 고민할 필요 없이 그대로 실천하면 되니까. 동시에 공식이 깨질 수밖에 없는 순간을 맞닥뜨릴 때 혼란을 겪어야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껏 기대를 품고 찾아간 편의점에는 애꿏은 화이트 와인만 왕창 나열되어 있었다. 설마, 하며 진열장의 뒤쪽 구석을 뒤적거려 본다.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아니, 그럴 리가 있었다. 세상에. 머릿속이 삽시간에 ‘화이트’가 된다.
속으론 온갖 떼를 쓰며 차분하게 화이트 와인 한 병을 사들고 나왔다. 냉장고에서 대기하고 있는 포레누아 한 조각이 안쓰러워졌다. 난 지갑이 아니지만, 하여간 지갑이 억울해 하기 시작했다. 오늘밤이 조금 막연해진다. 왠지 아쉬운 기분이 그렇게 일었다.
여전히 아쉬운 마음으로 밤 10시 즈음 코르크를 딴다. 무엇인가를 더 하기도, 그렇다고 바로 자기도 애매한 시간과 날에 그것을 실천한다. 23도, 약풍, 머물기 딱 좋은 설정으로 맞춘 에어컨 바람이 피부에 닿고, 읽다 말아 쌓아둔 책 한 권을 골라 책갈피를 따라 아무렇게 펼쳐 놓고, 늘 듣던 플레이리스트 하나를 틀어 놓고, 중요한 건 혼자 남은 밤이어야 하는 건데 이는 어렵지 않다. 사소한 것들이 본래 그러했던 피자 조각을 둥그렇게 맞추듯이 잘 맞물렸다.
기분이 나른해져선지, 오늘은 유독 그런 날인 건지, 사실 꽤 괜찮은 공식이었던 건지, 변수였던 화이트 와인도 거리낌 없이 잘 맞물렸다.
아무 이유 없었다. 여름밤에는 잔잔한 노래를 틀어 놓고, 규칙 어기듯 얼음을 동동 띄운 화이트 와인 한 잔을 들고 감각에 온전히 저를 맡기는 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물 흘러가듯 지금 이 순간에 놓여있는 것들을 연결해 몇 개의 문장으로 안착시켰다. 가만 보면 숱한 공식들이 불행이라 여기던 우연에서 떠오르지 않았나,하는 구름 같은 비평을 떠올린다. 사실 불행이 아니라 내가 믿어온 것에서 한 발짝 조금 나간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거라고.
일단 모르겠지만, 여름밤은 화이트 와인일지도 모른다. 사실 제멋대로 공식을 정립하는 편이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왠지 숨기고 싶은 모습이기도 한데, 겉과 속이라는 경계가 이토록 속수무책이다. 와인 하나를 두고 왜 이리 심각하냐고 묻는다면, 내가 그만큼 혼자서 술과 함께 보내는 밤을 진지하게 여기고 있다고 답해본다. 새삼스럽지만 여기서 조금 더 진지해지자면, 나는 나의 고독이라 불릴만한 것을 이런 방식으로 영위하는 편이다. 가끔은 그것으로 살아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