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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찬 Apr 26. 2021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나쁜 취향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 (Photo credit : Vogue)

 

 무절제한 색감과 패턴들, 연관성 없는 이미지들의 조합, 아무렇게나 매치한 것 같은 괴짜스러운 스타일링. 예민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구찌 컬렉션을 본다면 그의 취향에 대해서 한 번쯤은 생각해보지 않을까? 팬츠 위에 조크 스트랩을 덧입거나 니트와 브리프를 매치한 모델들이 걸어 나오는 구찌의 쇼장엔 확실히 샤넬의 우아함이나 피비의 셀린이 잘 보여주었던 극강의 세련됨은 없다. 그가 제시하는 스타일은 굳이 구분 짓자면 나쁜 취향 쪽에 가깝다. 미키마우스가 덧대어진 부르주아적인 드레스, 소녀스러운 원피스에 섹시함을 넘어 야하게 느껴지는 레이스 스타킹을 신고 나오는 구찌 모델들 앞에서 미에 대한 엄격한 기준과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무의미해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촌스럽다고 여기는 스타일을 그는 오히려 대담하게 앞세우고, 패션씬에서 암묵적으로 금기시하는 이미지와 색의 조합들을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하지만 그저 조악스럽고 난잡하다고 평가하기엔 구찌가 패션계에서 차지하는 위치과 영향력은 굉장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꾸찌로 휘감은 미디어 속 랩스타들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대체 왜 사람들은 그 어떤 정확성이나 완성도도 논하기 힘든 미켈레의 ‘나쁜 취향’에 매료되었을까?


구찌 2019 봄 컬렉션 (Photo credit : Vogue Runway)

대체 ‘나쁜 취향’이란 무엇이며 나쁜 취향과 좋은 취향을 구분하는 기준은 어디서 탄생한 것일까?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주 아감벤은 ≪내용 없는 인간≫에서 나쁜 취향에 대해 이야기한다. 16세기에만 해도 취향을 구분하는 기준은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의 시대감각은 종교예술 작품과 꼭두각시 인형, 오락용 기계장치 사이에 커다란 차이를 두지 않았고 우리가 감탄하는 아름다운 프레스코화와 건축 예술을 창조해낸 예술가들은 하찮은 장식 작업과 다양한 기계장치의 설계도 마다하지 않았다. ‘훌륭한 취향’에 대한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유럽 상류사회였다. 엘리트층을 중심으로 사람들은 예술 작품에서 완성도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추한 것에서 아름다운 것을 식별하고 예술이 아닌 것에서 예술을 식별할 줄 아는, 즉 ’취향의 인간’이 탄생했다. 이 ‘훌륭한 취향’이라는 표현은 취향에 좋고 나쁨의 구분이 있어 훌륭한 예술을 골라낼 수 있다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과연 예술에 있어서도 훌륭함과 저속함이 존재하는가? 그리고 훌륭한 예술을 식별해낼 수 있도록 해주는 이 ‘훌륭한 취향’은 과연 표현 그대로 훌륭하기만 할까? 

예술 작품을 식별하고 평가하려는 태도가 예술의 발전적인 측면에 있어 도움을 주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취향이라는 것은 더욱 예리하게 다듬어질수록 취향 자체를 없애버린다. ‘훌륭한 취향’을 지닌 비평가 앞에 선 예술가는 자유로움을 박탈당한다. ‘훌륭한 취향’만을 쫓는 예술을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다.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가 이야기했듯, 취향은 수많은 악취향으로 만들어져 있음을. 즉, 훌륭한 취향이란 본질적으로 악취향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훌륭한 취향으로 선택되지 못한 악취향들은 과연 아름다움을 해치기만 하는 것이며 예술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인가? 아니다. 저속한 취향을 지닌 인간들은 단순히 예술을 이해하는 능력은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은 예술에 문외한이 아니라, 오히려 작품의 아름다운 구석구석을 사랑하기 때문에 참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하고 예술 작품의 완성도를 포착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저속한 취향은 정직할 뿐만 아니라 아름다움에 더 민감하고 예술에 대한 열린 자세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즉 예술은 훌륭한 취향 안에서 가치를 발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조잡한 취향의 무분별하고 형태 없는 틀 속에 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훌륭한 취향이 예술 작품의 완성도를 감지하도록 할 수는 있지만 예술 자체를 완벽함이라는 메커니즘 안에 집어넣어 완벽하진 않지만 매력적인 것들을 거부하도록 만든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술 고유의 생명력을 없애버리는 것은 아닐까?


구찌 2019 봄 컬렉션 백스테이지 (Photo credit : Gucci)


다시 미켈레의 구찌로 되돌아오자. 그가 그려낸 구찌는 패션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끔 한다. 미켈레의 지휘 아래 운영되는 구찌는 분명 톰 포드 시절의 구찌와는 확연히 다르다. 쾌락주의와 하이퍼 섹슈얼리티로 대변되는 포드의 구찌 월드에는 미에 대한 확실한 기준과 질서가 있었다. 완성도가 있는 ‘좋은 취향’의 것이다. 실키한 소재의 섹시한 블랙 셔츠를 입은 금발의 모델들은 마치 아름다움은 이런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듯했다. 그가 이야기하는 아름다움 속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성도와 세련미가 있었고 우리는 그것만이 정답인 양 따랐다. 우리는 서로에게 미에 대한 엄격한 기준과 잣대를 들이댔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패션을 즐기는 자유로운 태도와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순수한 마음을 잃어버렸을지 모른다. 반면 미켈레의 구찌는 이와 정반대의 취향을 가졌다. 그곳엔 어떤 질서도 규칙도 없다. 그는 완벽함을 불신하며 오히려 완벽함을 망가뜨릴 수 있는 요소를 섞기 위해 노력한다. 무질서에서 오는 아름다움. 그것이 미켈레가 이야기하는 아름다움이다. 플로랄 패턴의 드레스와 할머니의 옷장에서 꺼내 입은듯한 조끼를 마구잡이로 매치하고 걸어 나오는 남자 모델이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금빛 머리카락과 섹시한 드레스가 아닌 고유한 ‘나’의 취향에서 오는 아름다움이니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훌륭한 취향’을 가진 자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은 가장 자유로운 상태로서의 아름다움이다. 

2018년 032c 매거진과 진행했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는 파괴가 완벽한 아름다움보다 더 많은 영감을 준다고 생각해요. 지금 저의 옷차림을 보면 두꺼울 울 니삭스에 샌들을 신고 있죠. 저는 마치 몇 년은 입은 것처럼 낡아 보이는 옷이 좋아요. 그래서 새 옷도 빈티지처럼 보이도록 몇 번이고 세탁하죠. 항상 옷을 다릴 때면 수트케이스에 며칠 구겨 넣어진 것처럼 보이도록 다림질을 해요. 다른 사람들 옷도 예외는 없어요.” 또 그는 덧붙였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불균형을 바탕으로 해요. 하지만 세상은 우리에게 균형적인 것이 더 아름답다고 믿도록 하기 때문에 우리는 불규칙적인 것을 거부하고 지우려고 하죠. 하지만 규칙적이라는 말은 지루함과 동일한 말이에요. 저는 매력적이지 못한 모델들을 기용한다고 비난받아 왔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은 여전히 90년대에 머물러있어요. 모델 캐스팅에서 저의 기준은 모델의 얼굴과 몸이 전달하는 이야기예요. 이 이야기는 그 사람을 유일 무의한 존재로 만들고 이것이야말로 오늘날의 시대상을 잘 반영하는 것이죠. 톰 포드가 기용했던 모델들은 금발 미녀들이었죠. 하지만 우리는 인스타그램으로 대표되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요즘에는 소속사 대신 인스타그램 계정만 있으면 사진 어플을 이용해 누구나 할리우드 스타처럼 될 수 있어요. 독보적인 아름다움은 더 이상 소수의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에요.”


톰 포드 시절의 구찌 광고 캠페인 (Photo credit : Vogue)

    우리는 과연 패션 앞에서 ‘취향의 인간’이었나 아니면 저속한 취향을 지닌 인간이었나? 나는 ‘취향의 인간’이 되려는 욕망에 가득 찬 사람 중 하나였다. 다양한 개성과 취향 앞에 엄격한 잣대를 대며 이분법적 사고로 패션을 이해하려 했다. 그러다 나도 모르는 사이 패션에 대해 초연한 자세를 취하게 되고, 더 이상 예전처럼 아름다움에 대해 순수한 마음으로 열광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어쩌면 그가 이전에 이야기했던 임종을 앞둔 늙은 여자와 같았을지 모른다. 미켈레는 현재의 패션을 이 늙은 여자에 비유하며 그것의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늙은 여자(패션)가 다시 부활할 수 있어요. 패션은 두꺼운 벽의 교도소처럼 되어가고 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그 안에서 창조성과 자유로움을 부활시키고 있는 중이죠. 훌륭한 패션은 이미 90년대에 다 나왔어요. 광고 캠페인조차도 걸작들이었죠. 2000년대 이후에 패션이 창조한 것은 소비자를 위한 최고의 만족감 정도였어요. 마케팅 디렉팅이 디자인보다 앞에 서서 디자이너에게 이번 컬렉션은 이래야 한다느니 하는 것은 정말 질색이에요. 패션이 우선이고 그 후에 어떻게 판매할지 생각해야 해요. 그리고 그 반대가 되는 순간 패션은 사망해요.” 디자이너는 말했다. 심드렁한 태도 대신 죽어가고 있는 패션 스피릿을 부활시키고자 하는 그의 패션 안에서는 진정한 예술의 가치가 발하는듯하다. 취향을 뛰어 너머 개성과 가치에 대한 존중을 말하는 이 별난 디자이너에게 우리 모두가 열광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참고 자료

https://032c.com/the-book-of-gucci-according-to-alessandro-michele

https://charliecharlie.tistory.com/82

https://www.vogue.com/article/gucci-alessandro-michele-interview-may-2019-issue

https://www.interviewmagazine.com/culture/alessandro-michele-gucci-on-authenticity-in-the-age-of-artifice

https://www.nytimes.com/2018/10/15/t-magazine/alessandro-michele-gucci-interview.html

https://www.vogue.com/fashion-shows/spring-2019-ready-to-wear/gucci

조르주 아감벤, 내용 없는 인간, 자음과 모음(2017), 44-56p


이미지 출처

vogue.com

gucc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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