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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Aug 14. 2024

진정성이란 거짓말

진정성 / authenticity / eigentlichkeit

진정성은 하나의 픽션이자 신화, 혹은 허위의식이자 담론적 구성물에 불과할 수 있다.

저 역시 차미령(<진정성의 아포리아>. 상허학보 69. 2023.10.)의 지적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도대체 진정성이 무어냐고 되물어 보면, 제대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는 진정성이란 용어가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개념을 다잡아가다 보면, 진정성이란 개념이 얼마나 의미 없는 말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Authenticity Hoax』를 쓴 앤드류 포터 Andrew Potter의 견해, 그러니까 "진정성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호언과, "적어도 삶의 의미 찾기에 필요한 대대적인 방편으로서의 진정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선언 역시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성의 정확한 실체는 모르지만, 진정성 없는 것이 무엇인지는 직관적으로 알고 있으며, 진정성이 뭐든 간에 사람들은 그것을 원한다는 표지의 인용만큼, 진정성의 허위성을 잘 드러내는 문장도 없다고 보입니다.

지난 250년간 근대인을 사로잡았던 진정성 문제는 허구다. 그것이 약속한 바는 이제껏 구현된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러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노력이 부족했거나 방식이 잘못돼서가 아니다. 자꾸 거짓된 것들을 조달하는 자본가나 정치가, 혹은 다른 어떤 자들의 방해 탓도 아니다. 우리가 옛날엔 진정한 삶-진정한 공동체 속에 살면서 진정한 음악을 듣고 진정한 음식을 먹고 진정한 문화에 참여하는 삶을 살다가 지금은 그 진정성을 잃었다는 식의 동화 같은 전제 자체를 나는 부인한다.
- 앤드류 포터. 『진정성이라는 거짓말』. 마티. 2016.



1. 진정성이란 용어


테오도르 아도르노 Theodor Adorno의 책, 『Jargon der Eigentlichkeit: Zur deutschen Ideologie』은 마르틴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의 본래성 eigentlichkeit 개념에 대한 비판으로 유명한 책입니다. 이 본래성을 영어로 번역하면 authenticity가 됩니다. 이 책으로 인해 '진정성이란 용어'라는 표현은 꽤나 사랑받고 있습니다. 진정성을 다룬 거의 대부분의 책에서 소제목으로 인용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저 역시 이 표현으로 시작해 볼까 합니다. 도대체 진정성이란 용어는 무슨 의미인지 찬찬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 하이데거의 본래성

하이데거는 『Sein und Zeit』에서 현존재(Sein)의 존재방식을 본래성(本來性, Eigentlichkeit)과 비본래성(非本來性, Uneigentlichkeit)이라는 두 가지 나누었습니다. 비본래적 삶이란 타인과의 평범한 관계 속에서 일상적으로 살아감을 의미하며, 그 일상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 본래적인 삶의 모습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때 본래적인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양심(良心, Gewissen)의 소리를 들을 때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에, 현존재는 자신의 내면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죠.(신교남.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나타난 ‘본래성’의 의미와 그 교육적 함의>. 교육사상연구. 2015, vol.29, no.3)


나. 트릴링의 성실성과 진정성

라이오넬 트릴링 Lionel Trilling은 그의 저서 『Sincerity and Authenticity』에서 성실성과 진정성의 두 개념을 구분한다고 설명합니다. 성실성은 공적 성격을 가진 것으로 ‘타인에 대한 진실함(true to others)’을, 진정성은 사적 미덕으로서 ‘그 자신에 대한 진실함(true to oneself)’을 의미한다고도 봤습니다.(이창준. 『진정성의 여정』. 플랜비. 2020.)

또한 진정성이라는 용어가 미술사와 박물관학에서 유래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분야에서 진정성을 따지는 것은 작품의 역사와 기원을 묻는 것으로, 진품으로 확인되면 그 작품이 감탄과 숭배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거나 지불한 값에 해당하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는 겁니다.(앤드류 포터. 『진정성이라는 거짓말』. 마티. 2016.)


다. 테일러의 진정성

찰스 테일러는 『불안한 현대사회 The Malaise of Modernity』( 이학사. 2019.) 라이오넬 트릴링의 논의를 이어받아, '현대적 삶의 형식을 과거의 것들과 구별함으로써 현대사회에서의 자기실현의 개념을 가장 탁월하게 정의했다'라고 평가하며, "당대의 도덕적 이상"으로 기술한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도덕적 이상이란 "우리가 무엇을 마땅히 욕구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객관성을 기준을 마련해 주는 그런 맥락에서 정의 내릴 수 있을 때, 그런 의미의 보다 더 좋은 삶"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다만, "논박당할 수 없는 절대적 원리라기보다는 자신에게만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자명한 공리 axiom 정도로 수준이 낮아진 것"이라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이는 "비교적 새로운 것으로 현대의 문화에만 고유한 것"으로 18세기말 개인주의의 초기 형태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봤습니다.


라. 포터의 진정성

앤드류 포터는 앞에 인용한 책에서 "진정성은 세상을 논하는 하나의 방식이며, 우리가 타인·세계·사물과 맺는 관계에 대해 판단하고 주장하고 선호를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런 판단, 주장, 선호는 어떤 실체적 속성을 가려내지 않는다'라고 덧붙이고 있어서, 어떤 기준이 되는 가치 체계를 이룰 수는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저 "자기실현, 자기 발견을 최우선에 놓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상"일 뿐이라 일축하고 있습니다.



2. 진정성의 어원


‘진정성’이라는 단어는 일단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없고, 웬만한 사전에도 없으며, ‘진정’이라는 단어만 있다. 그런데 한자로도 참 헷갈린다. 眞正일 수도 있고, 眞情일 수도 있다.
- 하병학. <감정(Pathos)의 수사학 : 진정성과 공감을 중심으로>. 중앙철학연구소. 철학탐구 37. 2015.02

일단 우리말로 진정성이란 단어가 어떻게 생겼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에 인용한 논문에서처럼, 국립국어원에서 편찬하는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진정성이 등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말인즉슨, 우리에겐 진정성이란 말 따윈 존재한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저 박래품舶來品에 불과하다는 것이겠지요.

따라서 authentic이란 형용사의 파생명사에 대한 역어가 어떻게 형성되었냐를 따져봐야 할 듯합니다.

짐작하셨다시피, 19세기말 일본에서 사전 번역 작업을 하면서 이에 대한 역어가 탄생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영일사전의 뜻풀이를 참고하면 될 듯하여 찾아보았습니다. 眞正의 승리였습니다. 진정성은 '真正なこと'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신뢰할 수 있는 것, 확실성"을 의미한다고도 봅니다.

그렇다면 이번엔 영어 authentic의 어원을 살펴보겠습니다. αὐτο- (self)와‎ ἕντης가 결합된 형태의 단어 αὐτοέντης(직접 행동하는 자를 의미)의 형용사형 고대 그리스어 αὐθεντικός에서 시작해, 라틴어 authenticus를 지나 성립한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영어사전의 뜻풀이로는 'genuine'과 'real'이 일반적입니다. 더 확장된 의미라고 해봐야, '신뢰성이나 확실성' 정도에 그칩니다. 개념에서 찾아본 그 완결성을 갖춘 추상적 의미를 도출해려면 꽤나 무리를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3. 진정성의 의미가 진정성을 잃는 이유


자기 진실성 authenticity의 윤리는 비교적 새로운 것으로 현대의 문화에만 고유한 것이다. 그것은 18세기말에 생겨났으며, 개인의 초기 형태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런 초기 형태들 중의 하나가 바로 데카르트가 개척한, [목적론적 사유에서] 해당된 합리성의 개인주의 individualism of disengaged rationality이다. 이에 따르면 각자가 자신의 책임하에서 자립적으로 사유할 것이 요구된다. 또한 자기 진실성의 윤리는 사회에 대한 의무보다는 개인과 그 의지에 보다 더 높은 지위를 부여하고자 했던 로크의 정치적 개인주의에 근거를 두고 있다.
- 찰스 테일러. 『불안한 현대사회 The Malaise of Modernity』. 이학사. 2019.

찰스 테일러의 지적에서처럼, 진정성이란 개념은 근대성 modernity에 근거해 확립된 제도 instituion이기 때문에 그 기원이 은폐되고 자명한 것으로 간주되면서 지금의 혼란을 낳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근대성에 근거한 제도들이 같은 공통점은 '보편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입니다. 이 과정은 그 기원을 은폐하고 자명한 것으로 드러내면서 강화됩니다. 진정성이란 18세기에 만들어진 개념이 아니라, 원래 인류가 존재 스스로를 확인하는 순간부터 확립되어 온 것이란 허위에 근거합니다. 특히나 '자아'나 '내면'과 같은 근대적 기획 역시도 원래부터 존재해 왔던 자명한 것으로 둔갑시킵니다. 가라타니 고진 柄谷行人의 표현을 빌리자면, '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선험적인 것'이라고 포장한다는 겁니다.

자명한 것으로 둔갑한 진정성은 그 부실한 토대를 기점으로 무럭무럭 자라나 감당하기 힘든 담론의 확장을 가져왔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서 미셀 푸코의 방식으로 탈구축 deconstruction이라도 해볼라치면, 상당히 깝깝해지는 거죠.

앤드류 포터가 자신의 책에서 인용한 존 조그비의 지적처럼, "우리 미국인들은 ‘진정성’의 정확한 실체는 모르는 듯하나 ‘진정성이 없는 것’이 무엇인지는 대강 알고 있으며, ‘진정성’이 뭐든 간에 그것을 우리가 원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는 현실 인식이 가능해집니다. 따라서 "진정성은 그게 아닌 것이 무어냐를 짚어내 그 반대로 이해하는 것이 최적인 용어"이며, "진정성이 뭐든 간에 사람들은 그것을 확실하게 원한다"는 괴상한 정리만이 가능해집니다.


이는 진정성이 소환되는 방식에서도 쉽게 드러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예컨대 거짓말을 한다고 비판하면 거짓말이 아니라고 사실증명을 하면 되고, 해결책이 잘못되었다고 하면 해결책의 적절함을 보여주거나 함께 논의하여 수정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진정성이 없다고 지적하면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 하병학. <감정(Pathos)의 수사학 : 진정성과 공감을 중심으로>. 중앙철학연구소. 철학탐구 37. 2015.02
‘진정성(Authenticity)’이라는 단어는 평온의 시기보다는 보통 무엇인가 위기의 시기를 맞이할 때 ‘진정성으로 돌아가자’라는 구호로 주 등장한다. 계획한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을 때나 좌절을 경험하고 다시 본래의 마음가짐으로 돌아가고자 할 때도 우리는 ‘진정성’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 김화경. <자기 성찰적 글쓰기 교육의 필요성과 의의-진정성 개념을 중심으로>. 인문학연구소 시민인문학(43). 2022.08

진정성이 부재함으로, 진정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식의 정치적 선동에 기반합니다. 이는 숱한 CRS와 관련된 경영학 논문에서 언급하는 진정성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대체로 '진정성을 상실한 현대사회'에서는 '진정성의 회복'이 필요하다는 밑도 끝도 없는 선동말입니다. 여기서 진정성의 개념은 해당 논문이 요구하는 개념으로 새롭게 '발명 invention'됩니다. 위에서 살펴본 역사성 내에서의 개념은 사라지고, 기원이 은폐되고 그리하여 선험적으로 보편성을 갖춘 개념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그러니 개념이 산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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