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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Jan 03. 2023

새벽 일기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새벽.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차마 눈을 뜨지 못한 채 손을 이리저리 움직여 핸드폰을 찾는다. 푹신푹신한 이불 사이에 딱딱한 이물감이 느껴진다. 핸드폰이다. 누워 있는 채로 눈앞에 가져와 화면을 톡톡 두드린다. 깜깜했던 방 안에서 갑자기 네모난 빛이 터져 나온다. 푸르스름한 네모 빛에 눈이 찌푸려진다. 시간은 4시 30분. 핸드폰을 다시 베개 옆에 툭 던져두고 억지로 밀어내던 잠이 아까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당겨 다시 눈을 감아 본다. 얼마나 이불속에 숨어 있었을까. 문득 소변이 마렵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일어나 앉았다. 아직 눈은 뜨지 못했다. 눈꺼풀은 뻑뻑해 모래가 한 스푼 들어가 있는 듯 까슬거린다. 손으로 눈을 벅벅 비벼본다. 겨우 눈을 떠 고개를 돌려보니 안방 한쪽에는 아직 아내와 아이가 세상모르게 자고 있다.


‘그래! 일어나자’


이불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혹여나 아내와 아이가 깰까 봐 조심스레 움직인다. 바닥에서 자는 아내와 아이를 혹시나 밟지 않도록 조심하며 침대 끝으로 가 걸터앉는다. 안방 바닥에 조심스레 발을 내려놓는데 느낌이 싸하다. 뾰족함이 발바닥을 찌른다. 아이가 잠들기 직전까지 보던 책들이다. 다시 발을 옮겨 비좁은 방바닥을 발바닥의 촉감으로 찾아본다. 여기다. 여기 발을 디딜만한 자리가 있다. 침대 머리맡 모서리를 잡고 가만히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문손잡이를 잡고 나니 문 앞에 누워 있는 아내의 베개가 살짝 걸린다. 최대한 천천히 문을 열어 베개가 흔들리지 않게 문을 열고 거실로 나선다.


서늘한 한기가 돈다. 뜨뜻미지근한 안방과 다르다. 차갑지만 그 덕에 잠이 조금 깬다. 화장실을 가며 거실의 노란 등을 켠다. 해가 갈수록 몸에 시동 켜는데 해야 할 일이 늘어난다. 물을 한잔 마시고 인공눈물을 한 방울씩 눈에 넣어주며 거실에 자리 잡은 커다란 테이블에 앉아 본다. 빼놓지 않고 하나씩 해나가면 어느새 노트북 앞에 앉아 일기를 쓸 수 있게 된다.


날짜를 정하고 그날의 일을 떠올려 본다. 시간, 장면, 인물 차근차근 머릿속에서 정리해 본다. 그러다 보면 그 순간순간이 더 명확히 그려지며 그때의 감정이 온전히 느껴진다. 처음엔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세줄 일기로 시작하였지만, 이제는 그때의 감정을 충분히 느껴보고 생각하여 정리한 후 기록하는 일로 바뀌었다. 다만 1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서툰 글솜씨는 아쉬움이 남는다. 서툰 솜씨로 시간을 들여 나의 시간을 농축하여 기록한다. 그 과정에서 두 번째 삶이 펼쳐진다. 안개로 뿌옇게 가려진 기억을 더듬더듬 찾아 나선 느린 달팽이처럼 천천히 나아간다. 느린 속도에 답답함이 가슴을 온전히 덮을 때쯤 뒤돌아보면 보석처럼 빛나고 있는 글들이 용기를 북돋아 준다. 나만의 세계를 만드는 희열에 서서히 중독되어 간다. 그 기분에 오늘도 나는 일기를 쓰러 새벽에 일어나본다.




Photo by yu we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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