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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Mar 31. 2023

성과급 흉내는 이제 제발 그만

【화면에 보이시는 다면평가(성과급) 기준에 대해 의견을 제시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의견을 주시면 전체 교직원 회의에서 검토 거친 후 다면평가 위원들의 협의를 거쳐 다면평가 기준을 수정 보완하도록 하겠습니다.】


올해 성과급 기준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다는 메신저가 날아왔다. 느릿하게 화면 스크롤을 내리며 나의 일이 정당한 값어치(점수)를 받고 있는지 확인한다. 담당하는 과목 수, 주당 수업 시수, 동아리 지도 개수, 담임 여부, 부장 여부, 직무 연수 이수 시간, 담당 업무의 종류 등 학교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에 빼곡하게 점수가 매겨져 있다. 이 모든 점수는 연말에 합산되어 다음 연도에 지급되는 성과급의 금액을 결정한다.

월급 말고 추가로 주는 돈이면 좋으련만 그마저도 월급에서 주어야 할 돈을 덜 주고 모아 두었다가 성과 등급별로 다시 나누어 주니 치사함이 이를 데 없었다. 돈의 힘은 강했다. 원하지 않는 사람도 메신저 내용을 검토하게 했다. 점수로 환산되지 못한 일은 외면당했기에 모두가 자신이 담당한 일의 가치를 부지런히 점수로 환산하게 했다. 제로섬 게임의 시작이다.


며칠 뒤 예고했던 대로 다면평가 기준에 대한 전체 교직원 회의가 열렸다. 제출한 의견을 검토한다고 했지만 결국 내가 담당한 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다른 누군가가 담당한 일의 가치를 낮춰야 하는 불합리한 회의의 시작이다. 회의가 열리자 눈치 게임이 시작된다. 누가 먼저 포문을 열 것인가. 적막함이 스산하게 감돈다. 고민의 시간이 깊어질 듯한 찰나 누군가 손을 든다.


“△△△부서 ▢▢▢입니다. 제가 생각했을 때 ◯▢△항목이 너무 많은 점수를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필 그 항목은 나와 관련이 있는 항목이었다. 나는 이 말이 이렇게 들렸다.  


“저는 ◯▢△ 항목을 담당하시는 분들 일의 가치가 너무 높게 평가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기의 목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들리리라 상상했을까. 순간 우울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의 가치가 이것밖에 되지 않냐는 생각이 머리를 뒤덮었다. 그러는 찰나 눈치를 보고 있었던 선생님들의 의견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저는 ☆☆ 항목이 점수가 너무 낮다고 생각합니다.”


이기적인 마음은 또 다른 이기적인 마음을 불러왔다. 너도나도 다른 사람의 일의 가치를 낮추고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를 높이기 시작했다. 샘이 많은 나도 그 무리 속에서 속물 같은 마음을 드러내본다. 그렇게 한 시간이 약간 넘는 시간 동안 모두가 자신의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 보였다. 회의가 끝날 때까지 입안에는 꺼끌꺼끌한 마른침이 맴돌았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이 회의가 끝나면 다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기적인 욕망을 감춘다.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회의에 참여해서 고생했다고 인사하며 퇴근한다. 인간은 그래야 한다는 듯이 말이다. 제 일의 가치를 위해 다른 사람의 일의 가치를 낮추려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서글펐다. 잘못된 경쟁이란 이런 걸까. 올해도 내 일의 가치만 지키려는 노력은 실패했다. 인정받지 못해 생긴 헛헛한 마음에 입이 멋대로 샐쭉거린다. 마음이 파르스름하게 멍들기 전 학교를 벗어나기 위해 재빨리 차에 올라탄다.


다음 날 새벽. 내 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기억을 포장해 본다. 부끄러움은 생각으로 이어지고 생각은 질문으로 이어가 본다. 성과급을 주기로 했다면 적어도 월급에서 미리 가져간 돈으로 하지 않으면 안되는 걸까. 고생한 만큼 돈을 주면 안 될까. 이럴 땐 차라리 업무별 수당을 기대하고 싶다.

학교의 딱한 사정을 토로해보면 어떤 누구는 교사는 그래도 편한 직업이라고 속 편한 소리 하지 마라고 한다. 조금 괜찮은 직업으로 보인다면 마음에 상처 입는 일이 있어도 아무렇지 않다는 이야기인가. 가시에 찔리기 싫어 이야기를 숨겨보지만 그럴수록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어 간다. 흉내낸 성과급이 만들어낸 게임은 모두의 창의성은 떨어뜨리고 성과급이 기대하는 행동만 하게 하는 이상한 학교를 만들고 있었다. 안타까운 현실은 풀릴 기미 없이 꽉 막혀있는 퇴근길을 보는 듯 하다.


철학자 야마구치 슈가 쓴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이란 책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람이 창조성을 발휘하여 리스크를 무릅쓰고 나아가는 데는 당근도 채찍도 효과가 없다. 다만 자유로운 도전이 허용되는 풍토가 필요하다. 그러한 풍토 속에서 사람이 주저 없이 리스크를 무릅쓰는 것은 당근을 원해서도 채찍이 두려워서도 아니다. 그저 단순히 자신이 그렇게 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야마구치 슈(2019),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다산북스, p69>

  

우리는 야마구치 슈의 말처럼 성과급이 아니라 마음껏 도전할 수 있는 문화와 위험이 없는 안전지대 그리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위로를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제발 되지도 않는 성과급 흉내는 그만두고 미리 가져간 내 월급이나 돌려줬으면 좋겠다.

 



Photo by John McArthur on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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