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얼굴에 잔뜩 뿔이 난 청소 여사님이 문 앞에 서 계셨다.
“아니~ 선생님! 복도 쓰레기통에 음식 배달 용기를 버리면 어떻게 해! 이거 냄새나요! 밖에 분리수거장에다 버리셔야지!”
교무실에 앉아 있던 선생님들에게 여사님이 던진 말이었다. 그녀의 오른손에는 누군가가 버린 음식 배달 용기가 하늘로 치솟을 듯 매달려 있었다. 북적거렸던 교무실에 정적이 찾아왔다. 뜨끔한 선생님들은 눈이 마주칠세라 재빨리 업무에 열중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5초쯤 흘렀을까. 상황을 눈치챈 부장 선생님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여사님 손에 매달린 음식 배달 용기를 넘겨받았다.
“네네. 죄송해요. 잘 몰랐어요. 저희가 얼른 치울께요~”
뒷정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못마땅한 얼굴을 한 여사님은 다시 할 일을 하러 떠나셨다. 경직되어 있던 선생님들 얼굴이 조금 누그러졌다. 우리 학교 청소 여사님 중 가장 무서운 청소 여사님 B님의 방문은 늘 그랬다. 선생님이나 학생의 잘못을 가져와 거침없이 지적하셨다. 카리스마에 압도된 우리는 항상 그분 앞에 서면 무서운 청소 담당 선생님 앞에 선 듯 작아졌다. 그래서 그런지 B님이 청소 중인 곳을 지나칠 때면 더 조심스레 행동하게 되었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선 교무실 청소를 교무실을 사용하신 선생님들이 한다. 교무실은 청소 여사님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었고 학생들에게 불필요한 청소를 시키지 않기 위해 교무실 청소를 맡기지 않았다. 그러던 중 청소 여사님이 교장실을 청소해 주신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선생님들은 교무실 청소에 대한 지원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교직원 전체 회의 시간.
교실과 특별실 청소 담당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는 중 교무실 청소에 대한 의견이 올라왔다.
“교무실 청소도 지원 방법을 마련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청소 구역 담당 부장님과 이야기가 오갔지만,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빙빙 맴돌았다. 가만히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행정실장님의 침착한 답변이 이어졌다.
“선생님들의 어려움과 요구는 충분히 이해하나 예산 문제도 있고 그리고 청소 계약 시 교실과 교무실은 포함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올해는 지원이 어려울 듯합니다.”
그렇게 교무실 청소 안건에 대한 회의는 마무리되었으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교감 선생님도 교감실 청소를 부탁했고 이를 거절하기 어려웠던 행정실은 용역 업체를 통해 청소 여사님 두 분에게 추가로 교감실과 교무실까지 청소를 요구했다고 했다. 그렇게 복도, 계단, 화장실만 청소하시던 여사님들은 학교와 용역 업체의 협상 끝에 교감실과 10개의 교무실 청소까지 담당하게 되었다. 대신 여사님들은 자신들의 노동강도를 고려해 1주일에 한 번씩 번갈아 가며 교무실을 청소해 주시기로 하셨다. 많은 선생님은 더 나아진 복지에 만족했다.
대다수 선생님이 더 나아진 복지에 만족할 때 나는 협상이라는 이름의 강제된 요구를 상상했다. 내가 청소 여사님이었다면 용역 업체나 학교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었을까. 상상은 불편한 진실이 되어 나의 마음을 꼬집었다.
학교에서 강요된 추가 노동에 대해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선생은 학생을 위한다는 핑계로 주어지는 강요된 노동을 거부할 수 없었고, 학생은 미래를 위한다는 핑계에 주어지는 강요된 노동(공부)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러다 강요된 노동에 익숙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노동을 강제하는 게 불편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강제된 노동의 대가가 무엇인지 모르거나 줄 수 없을지라도 말이다. 여사님들이 원래 청소하시던 구역의 일이 줄었을 리 없으니 대가도 받지 못하는 일의 양이 늘었을 테다. 계약서는 수정하고 부족한 예산은 보충하여 다시 계약하면 좋으련만 안된다는 소리만 메아리처럼 돌아온다. 예산과 계약의 세계는 그렇게 삭막하고 무서운 곳인가. 상상은 생각의 꼬리를 물고 고민과 부끄러움을 데려왔다.
카리스마 넘치는 B님은 내가 근무하는 교무실 청소를 담당하게 되었다. 교무실에 처음 청소하러 오신 날. 교무실 문 앞에서 당당하게 혼을 내시던 B님은 없었다. 문을 열고 아무 말 없이 들어오셔서 대걸레로 교무실 여기저기를 누비며 청소해 주시는 B님만 계셨다. 조용히 청소하며 내 자리로 다가오는 B님을 본 나는 괜한 긴장감에 사로잡혔다. 어버버 하는 나를 두고 내 옆자리 선생님은 B님에게 청소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시원한 음료수를 하나 건넸다. 옆자리 선생님의 인정에 묵묵히 무표정으로 청소하고 계셨던 B님 얼굴에 미소가 맺혔다. 그녀의 미소를 보니 1주 뒤 내가 해야 할 일이 분명해졌다. 음료수를 사러 매점에 다녀와야겠다.
이 일은 육아휴직 전에 일어난 일이었는데 복직하고 나니 다행스럽게도 불합리한 청소는 사라졌었다. 대신 교무실 청소는 다시 사용자의 몫이 되었고 청소 여사님 B님은 다른 분으로 바뀌어 있었다.
Photo by 사진: Jan Kopřiva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