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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무 Nov 23. 2024

북쪽으로 가는 길, 노르웨이 VIII

에필로그

 노르웨이를 다녀온 지 50여 일이 지나갔다. 사진을 보면 생생해지지만 덮으면 벌써 꿈만 같다. 로포텐제도의 자칫 을씨년스러울 수도 있고 고독하게 여겨질 수 있는 북극권의 그 거대한 자연풍광이 아름답고 인상 깊게 나의 뇌리에 자리 잡게 된 것은 레이네 숙소에서 함께 묵으며 생활하였던 일행들과의 따스한 생활 때문이었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우리가 빌린 숙소는 일층에 거실과  식당이 있고 이층에는 세 개의 방과 하나의 샤워부스가 딸린 화장실 하나, 그리고 다락방이 삼층에 있었으며 지하에는 샤워부스가 하나 딸린 화장실 겸용 세탁실  하나가 있었다. 화장실 바닥만 난방이 들어오는 시스템이었고 다른 방들은 전기로 온풍기나 라디에이터로 난방을 하였는데 집 구조가 단열 시공을 잘해서 그런지 허술해 보이는 창문에도 외풍이 없었고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자니 그리 추운지 모르게 잘 잤는데 무엇보다 공기가 신선한 탓인지 아침에 일어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 앞에 김형제님 부부가 서 계신다. 우측의 밴이 우릴 위해 수고했던 밴이다.
숙소 창밖으로 바다가 내다 보인다.
어느 아침 식사, 세 부부가 함께 하였다.

 시차의 순기능이었는지 거의 매일 새벽 다섯 시 전후로 일어나게 되었는데, 잠이 깨면 부리나케 샤워실로 가 하루 준비를 마치고 머리까지 말리고 일층에 내려오면 식당은 전날 이미 깔끔하게 치워져 있었고 식기 세척기엔 뽀송뽀송 마른 식기들이 꺼내줄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형제님이 거실에 딸린 식탁에 앉아 성경을 읽고 계시고 나는 토마토를 씻어 반씩 자르고 버섯이나 감자를 함께 오븐기에 넣어 돌려놓고 일행들이 내려올 때쯤 되면 통밀 빵을 굽는다. 김형제님과 함께 식기를 식탁에 진열할 무렵이면 셰프이자 가이드인 S형제가 내려와 주된 요리가 있으면 그것을 내어 놓고 자매님들은 이것저것 거드신다. 이렇게 아침식사는 매우 유기적으로 물 흐르듯 준비되어 감사의 기도소리와 함께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도란도란 서로 화답하는 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세 가정 여덟 명이 함께 칠 박 팔일을 지냈지만 불편함은 없고 달콤하고 풍성하고 사랑스러움만 기억 속에 가득하였다. 이것이 소위 공동체 생활의 단면일까? 우린 수십 년 개인적인 생활에 익숙해져 왔지만 성경은 믿는 이를 교회가 되도록 인도하신다. 단체적인 생활 안으로 들어가도록 권면한다. 그것이 불편하고 힘들면 어찌할 수 있으랴? 그러나 그 안에 사랑과 풍성이 넘친다면 누가 마다하랴? 여행을 시작하기 전 여행에 대한 의미의 내 마음의 비중은 생소한 나라 그리고 자연풍경이 수려하다고 귀로만 들은 가보지 못했던 땅에 간다는 기대감이 80% 정도 차지 하였고 20% 정도는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S형제 가정과의 재회를 기다리는 마음이었는데, 모든 여정을 끝낸 후 이 비중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세 가정 여덟 명이 함께 생활하고 함께 여행하고 함께 이야기하며 지낸 것이 80%로 마음에 남았고 북유럽의 선 굵은 풍광은 이 섞임의 여행을 지지해 주고 의미 있게 해주는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이런 일행과의 생활이 없었다면 우린 다소 쓸쓸하고 고독하고 차가운 느낌을 갖고 귀국하였을 것만 같았다.  


  보라, 형제들이 연합하여 거하는 것이 / 얼마나 좋고 얼마나 즐거운가!

  머리 위의 좋은 기름이 / 수염을 타고 / 아론의 수염을 타고 흘러서 / 그의 옷단에 흘러내림 같고,

  헤르몬의 이슬이 /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아라. /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으니 / 영원한 생명이라. 

    시편 133:1-3


  아침마다 일어나 숙소에서 바라다 보이는 레이네 주변의 산봉우리의 모습은 매일 색달랐고 비에 젖은 우중충한 모습에서 흰 눈을 뒤집어써 세련된 모습으로 변환되기도 하여 어떤 모습일지 날마다 궁금하였다. 아침식사 전 혹은 후로 머무는 동안 항상 레이네 마을 어귀까지 걸어가 그 모습을 감상하고 사진에 담곤 하였는데 하루도 같은 풍경이 없었다. 참으로 다양한 날씨에 다양한 옷으로 갈아입는 레이네 마을은 늘 아름다웠다.


아침마다 레이네는 새로운 모습으로 반겨주었다.


 낮에는 이곳저곳을 돌아보는데 멀리 가도 한 시간 안짝으로 주로 다닌 탓에 그리 피곤치 않았다. 우리가 빌린 밴은 8명이 타도 넉넉했는데 최근엔 만나기도 힘든 수동기어 차량이어서 S형제가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특히 후진 시 기어가 잘 먹히지 않아 당황케 하는 상황이 연출되곤 했다. 우측 슬라이딩 도어 외부 손잡이가 처음부터 파손되어 여닫을 때마다 불편했는데 그로 인해 양자매님이 손가락 끝을 짓찧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이런 몇 가지 문제를 제외하곤 충실하게 우리 모두를 태우고 충실히 역할을 잘 수행하여 주었고 특히 첫날과 마지막날 우리의 많은 짐을 완벽히 날라주는데 문제가 없었다.


 차가 커서 맨 앞 조수석엔 두 사람이 타고 갈 수 있었는데 특히 맨 우측에 앉은 사람에게는 창문을 때론 열고 창밖에 펼쳐지는 풍경을 아낌없이 찍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매분 매초 바뀌는 창밖의 풍경은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하여 '그리운 금강산'의 한 소절 "누구의 주재(主宰)가"를 흥얼거리게 하였다.  평소 사진을 별로 찍는 것 같지 않았던 김형제님도 이번 여행에서는 적극적으로 사진을 찍으시며 우측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시고 자리에 앉을 기회가 올 때마다 열심히 창밖의 풍경을 찍으시며 아마추어 사진작가의 반열에 진입을 시도하시는 듯한 열정적인 모습이 보기 좋았다.



차창밖의 아름다운 풍경
주행 중 창밖의 풍경은 동영상 액자이다.
길가에 세워져 있는 붉은색 폴대는 폭설이 내렸을 때 제설차의 길을 안내해주기 위한 탐색자 역할을 해준다.


 행동반경이 길지 않았기에 우린 점심식사를 트레일 가기 위해 도시락을 싸갔던 하루를 제외하곤 거의 숙소에서 해 먹곤 하였다. 점심은 비교적 간단히 라면이나 전날 먹고 남은 요리, 누룽지 같은 것으로 먹었고 저녁은  S형제의 요리솜씨가 발휘되는 시간이 되곤 하였다. 주로 석식에 새로 밥을 하게 되는데 밥을 할 때면 항상 건다시마를 넣고 했는데 그렇게 하면 잡내를 잡아주고 밥이 윤기가 나고 감칠맛이 난다고 한다. 그래서 그랬는지 식사 시간에 밥맛은 항상 좋았다. 석식에는 한 가지 정도의 주 요리를 내었는데 현지에서 파는 대구를 사용한 탕요리, 스테이크, 연어 스테이크 등과 같이 현지 식재료를 활용한 것이었다.


 저녁식사 때는 여유가 있는 편이었으므로 식사하며 이야기 꽃이 피었다. S형제 부부가 노르웨이에 이민 와서 낯선 환경에서 살아온 이야기도 다들 열린 마음으로 말하고 듣고 하였고 특히 두 자녀 Y와 J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부모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생각들도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 흘러나오게 되니 Y와 J도 가족들끼리만 있을 때 듣고 보지 못한 부모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고 우리가 Y와 J에게도 부모에게 하고 싶은 말을 솔직히 해보라고 하니 평소 하지 못했던 말을 하게 되었고 이 모든 솔직한 이야기들은 힐링의 시간이 되어 서로의 마음을 적셔 주었다. 김형제님 부부와 우리 부부가 마치 푹신푹신한 쿠션과도 같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어떤 이야기를 해도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분위기를 제공해 준 배경이 된 것 같았다.


 또 인생을 살며 만나는 모든 어려움과 크고 작은 환경들을 어떻게 통과해 나갔는지 각자가 그 비결은 무엇이었는지 이야기하였다. 김형제님은 삼성그룹의 상무이사까지 지낸 분으로 세상의 조직 문화에서도 믿는 이로서 살며 많은 과정을 통과하며 축적된 인생 산물이 가득하였고 양자매님도 두 아들을 키우면서 많은 과정을 통과하시고 많은 관점을 갖게 되셨고 이자매님은 보건소 소장으로 정년퇴임하기까지 공직에서의 숱한 경험 가운데 하나님과 함께 그 길을 걸으며 얻은 것이 있었고 나 또한 많은 인생의 굴곡을 거치며 나름대로 하나님께 배운 것들을 조금씩 내어 놓으며 이야기하였는데 J와 특히 고등학생이 된 Y는 묵묵히 그러면서도 집중하면서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다 듣고 때론 질문도하곤 하였다. 청소년들이 듣기에는 그리 쉬운 말들이 아니었으나 자리를 뜨지 않고 끝까지 듣곤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날 가장 아름다웠던 곳과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무엇인지 말하는 시간에 Y는 주저함 없이 저녁식사 시간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이 제일 좋았다고 이야기하였다.


 인생에 반복되는 것은 없다. 반복되더라도 처음 그 감동이 그대로 재현되는 경우는 없다. 이런 값지고 아름다운 여정을 또다시 가질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수년 후 Y와 J는 어른이 되어 사회 일원이 될 터이고 우리도 또 다른 모습으로 더 성장하여 있을 것이다. 혹 기회가 되어 다시 만난다면 우린 어떤 모습으로 서로를 감상하게 될까? 여행은 우릴 넓혀주고 우리가 제한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고 창조주의 아름다우신 손길을 감상하게 해 준다.  매년 일정 시간을 떼어 놓고 여행을 계획하여 보라.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그 길을 가보도록 해 보라. 그리고 무엇이 우리 마음에 쓰이고 자라게 되는지 보도록 해 보자.  


 당신은 대서양의 매서운 바람과 우박을  맞닥뜨릴지 모르고 느닷없이 떠오르는 굵직한 무지개를 만날지 모르고 오를수록  흰 눈이 덮인 산봉우리 행렬들을 맞이할지도 모르고 밤하늘을 순식간에 가로지르며 빛나는 초록색 물감으로 빛의 베일을 칠하시는 하나님의 손 끝을 볼지 모른다. 거기 함께 걷고 함께 이야기하며 함께 깔깔거릴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아듀 북유럽.

노르웨이사람들은 운동하기 좋지 않은 날은 없다고 한다. 다만 운동하기 좋지 않은 옷이 있을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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