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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자 May 09. 2024

죽음 앞에서

 

죽음을 생각해 보셨나요? 며칠 전 친구들을 만났다. 몇 시간을 떠들고 헤어지면서 누군가가 "우리는 언젠가는 죽는데 왜? 이리 허둥대며 살까?"라는 질문인지 혼자 말인지를 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러게"라는 짧은 대답인지 혼자 말인지를 하고 헤어졌다. 헤어져 오는 내내 죽음에 대해 생각해 봤다.     

'그러게'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모두 죽는다. 결과는 분명하다.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결론이다. 그런데 왜? 허둥대며 살까?     

친구의 허둥대며 산다는 의미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거기에 나의 '그러게'라는 공감 표현은 어떤 의미에서 나온 것일까?     

나의 추측으로 해석해 보면 아마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상황이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표현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내가 살고 싶은 삶과 지금 살고 있는 삶의 방향이 엇나가고 있다는 표현은 아닐까? 즉 나는 지금 친구들과 더 많이 놀고 싶은데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 있어서 허둥대며 헤어져야 하는 것을 표현한 것일까?     

죽음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본 경험이 거의 없다. 막연하게 어차피 죽을 것 대충 살아야 하나? 어차피 죽을 것인데 살아 있는 동안 내가 하고 싶은 거 원 없이 하고 죽어야 하나?     

그 정도로 생각한 것이 전부인 듯하다. 언제 날 잡아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이제 나이도 어느 정도 들었으니 죽음에 대한 생각은 필수적이라는 생각이다.     

누구나 죽음은 피해 갈 수는 없다. 어차피 죽을 거 내가 살고 싶은 대로 흥청망청 살든지 아니면 삶다운 삶을 사는 것이다.   

  

요즘 중독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 게임 중독 등 중독될 만한 것이 많다. 이런 중독은 순간의 행복감을 느끼기 위한 것이다. 이런 중독에 의한 행복감을 느끼며 살기에는 우리네 인생이 너무 길다.     

100세 시대 노후 대책 없이 노후를 보내고 있는 노인들은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죽지 못해서 살아가는 삶 또한 인생이 너무 지루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 살아야 허둥대지 않고 자신의 삶다운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 하루하루가 생동감 넘치고, 삶의 희열을 느끼며 살 수 있을까?     

지금의 나의 생각으로는 죽을 때 조금이라도 후회가 덜 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후회를 덜 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평소 소신껏  생각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는 것과 내일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은 일치한다고 볼 수 있겠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는 것은 내일 죽는다는 것이 기정사실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내일 죽는다는 확률은 종말보다는 낫다. 내일 죽을 확률이 더 높은 지구 멸망이 온다고 해도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일 죽을 확률이 낫은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도 10년 정도 기다려야 사과가 달릴 사과나무를. 나는 10년 안에 안 죽을 수도 있다. 만약 죽는다고 해도 그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린다면 누군가가 나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따서 먹을 것이다.     

앞으로 더 죽음에 대해 생각해 봐야겠지만 지금의 결론은 죽는 그날까지 나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나다운 삶이란 하루하루 싱그럽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행복하게 하면서 살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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