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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에 뜨는 별 Daystar Sep 30. 2021

미국판 빈털터리 이야기 1

출발

2009 10.


스물여덟 가을 어느 날. 미국행 비행기 몸을 실었다. 고향에 있던 친구들이 서울로 올라와  성대한(?) 배웅을 해주었고, 우리는 마치 다시 오지 못할 길을 떠나듯이, 눈물 섞인 이별주를 나누었다. 빠르면 1 안에 마치고 돌아올  있는 유학이지만, 그때 마음은 그러했더랬다.






‘Houston, Texas, USA(미 합중국 텍사스 주, 휴스턴 시).’


미국은 처음이었다. 이미그레이션 관문에 도달했다. 평생 갈고닦은 영어 실력을 뽐내야 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나의 혀는 이미 뇌의 지배를 벗어났고 한 마리 뱀처럼 똬리를 틀고 휘청였다.




“What is the purpose of your visit to the United States?(당신이 미국에 온 목적은 무엇입니까?)”


“Ah… Uh… I… Eh… Huh…”


감탄사만 연발하다 본능적으로 꿈틀거린 나의 혀는 드디어 소리라는 것을 형성했다. 나에겐 뇌를 거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I am a pilot(나는 조종사입니다).”


‘뭐라고? 내가 조종사라고? 비행기 꼬리도 못 만져봤으면서 자기가 조종사라니. ㅋㅋㅋ 이 한심한 자여..’




이미 각종 서류를 잔뜩 제출했으므로, 입국 심사관은 내가 비행을 배우러 미국에 온 것임을 알고 있다. ‘비행 배우러 왔습니다.’ 이 간단한 대답만 했으면 될 일인데 갑자기 자기가 조종사라니. 영어도 못하는 이 아다다가 비행을 하겠다니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You are a student pilot, right?(당신은 비행을 배우러 온 거예요. 맞죠?)”


“Oh, Yes!(맞아요!)”


아메라카 땅에서 처음 만난 미국인은 나의 신분을 정확히 일러주었다. 그래 나는 학생 조종사였다. 지금부터 나의 신분은 학생 조종사다.




‘쾅!’


경쾌한 소리. 내 여권에 도장이 찍혔다.


“Good luck!(행운을 빕니다!)”






‘굿럭’. 한국의 조종사라면 모두가 알고 있을 그 이름 ‘굿럭’. 일본의 대배우 ‘기무라 타쿠야’가 ANA항공의 부기장으로 열연한 항공 드라마 ‘굿럭’. 그래.. 제목처럼 나에게 행운이 깃들길 바란다. 비행을 하는 사람에게 운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땐 잘 몰랐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을 만든 사람도 아마 조종사였을 거다. 조종사만큼 운이 중요한 직업이 또 있을까 싶다.


2003년에 방영된 일본 TBS 드라마 ‘굿럭’. 일본의 대배우 ‘기무라 타쿠야’가 ANA 항공의 부기장으로 열연했다.






입국 심사관. 그에게   크게 외쳐달라   그랬나. 이후 미국에서 닥쳤던 시련들은 꽤나 힘들었다. 부끄럽지만 얼마나 눈물을 훔쳤는지 모른다. 대한민국 품을 떠나 세상으로 처음 나온 스물여덟 어른이에게 닥친 시련은 시리고 날카롭고 버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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