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브런치 계정을 만들고 글을 쓰고 브런치 북을 엮었던 건 기억에서 자유롭고 싶어서였다. 필명에 숨어 모조리 쏟아 낼 요량이었다. 다만 일기처럼 쓰고 싶지는 않았다. 대부분 사실이나 어떤 장면은 소설 같기도 한. 정말 그런 일이 있었던가 스스로에게 반문하게 되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기억을 불러올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치유하고자 자판을 두드렸으나 글로써 매번 그때를 재경험했다. 다 쓴 글을 읽고 나면 한 번도 후련하지 않았고 지워 버리고 싶은 충동이 여러 번 일었다. 유년을 쓰기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과거는 없어요.
김 박사님은 내게 누차 말씀하셨다. 앞으로 어떤 액션을 취해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는 내 말에 단호하게 과거는 없다셨다. 이야기만 있을 뿐이라고. 이러이러했으니 저러저러할 거라 지레짐작하는 것이라고. 과거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나도, 내 아이도 지켜낼 수 없다고. 과거가 없다는 것을 알 때 비로소 온전히 풀려날 수 있다고.
과거가 없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과거는 공포. 과거는 트라우마. 과거는 극복되지 않는 그 무엇. 과거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지옥. 과거는 들여다보기 싫은 수치. 과거에 잠식당한 이는 아이를 통제해야 했다. 그 방법만이 아이를 지킬 수 있다 믿었으므로.
과거가 없다는 것은 과거의 사건이 이미 끝났으므로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이었다. 가슴이 아닌,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안다고 할 수 없었다. 무지했다. 참으로 무지했다. 매주 노트에 글쓰기를 하며 유년을 만나면서 때로는 극적으로, 때로는 아주 천천히 과거에서 놓여났다. 완전히 항복했고, 온전히 느껴줬다. 더 이상의 이야기가 쓰이지 않았다. 동시에 글을 쓸 이유가 사라졌다.
아이는 절규하듯 물었다. 이 힘든 세상에 왜 태어나게 했느냐고. 왜 낳았느냐고. 대답하지 못했다. 같은 절망을 느끼며 그 시간을 지나왔으나 태어난 이유를 아직도 알지 못했으므로. 가시 돋친 말을 하는 아이의 마음을 걱정하기보다 다친 내 마음이 더 아팠다. 네가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어. 그 말이 목에 걸려 넘어가질 않았다.
어젯밤 아이에게 말해 주었다. 세상을 경험하러 태어난 거라고. 세상이 궁금해서 온 것이라고. 세상은 놀이공원 같아서 어느 날은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스릴 있고 재밌다가도 또 어떤 날은 대관람차를 탄 것처럼 지루하기도 한 것이라고. 어느 날은 태풍이 와서 놀이기구가 운행을 안 하는 날도 있다고. 그때는 쉬어야 한다고. 그러니 내일도 즐겁게 하루를 지내 보자고. 아이가 잠들자 나는 조용히 말했다.
평생 너의 안전지대가 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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