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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무 심했나

by 어슴푸레

-내가 너무 심했나?

-어?

-어머니~ 요즘 음식, 과하게 하시는 거 같지 않아?

-좀?

-그때 내가 한 말. 혹시 마음에 두고 계시나?


여느 주말처럼 어머니 댁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노릇하고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삼겹살이 하얀 키친타월이 깔린 접시에서 바닥을 보이자 남편이 말했다.


-고기 더 없어요?

-응. 그게 다다.

-아이. 사람이 몇인데.

-아니. 마트에서 양이 많다고 해서. 안 모자를 줄 알았지.

-딱 봐도 적은데요 뭐.


삼겹살은 한 근이 조금 넘어 보였다. 이것저것 내오느라 어머니는 한 점도 못 드셨던 것 같다. 손주, 자식들의 젓가락질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지자 얼굴에 민망한 빛이 역력했다. 이후 고기 적냐? 하셨고, 많이 먹었어요. 큰애가 말하자, 할미가 미안해. 그제야 조용히 밥을 뜨셨다. 당신은 참. 반찬 많은데 딴 거랑 먹으면 되지. 곁눈질을 하며 남편에게 눈치를 주었다.


그 다음 주부터였을까. 원래도 거한 밥상이었는데 주가 더할수록 점점 더 화려해졌다. 그때마다 삼겹살이나 목살 구이는 접시에 수북했고. 아쉬울세라 살 오른 대하가 소금구이로 밥상 한쪽을 차지했다. 동글동글 초록 애호박전과 길쭉길쭉 노란 배추전은 흰 도자 접시에 정갈히 담겼고, 정중앙에 빨간 꽃게탕이 커다란 놋대접에서 김을 펄펄 피워 올렸다. 할머니, 오늘 무슨 날이에요?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 큰애가 물었고. 잔칫상이네! 입이 떡 벌어진 남편이 또 눈치 없이 한마디 했다.


몇 주 그렇게 어머니 댁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집에 오는데 남편이 엘리베이터에서 앞뒤 생략하고 다시 물었다.


-그때 내가 너무 심했나?

-어어! 좀 그랬어. 어머니 무안하시게. 으이그! 철이 없어요, 철이.

-먹다가 중간에 고기 떨어지면 서운하단 말이야.

-애야? 으이그.

-어머니 너무 힘 주시는 거 같은데. 이제라도 죄송하다고 말씀드려야 하나.

-뭘 그렇게까지. 담엔 그러지 마!


사실 나라도 먼저 말씀드려야 하나 싶을 정도로 저녁상에 신경을 쓰시는 게 느껴졌다. 같이 먹을 고기 정도는 아들네가 사 오는 게 예의기도 하거늘. 며느리로서 낯이 뜨거운 면도 없지 않았다. 시장에서 장을 보다가 세일을 많이 하면 등심이나 삼겹살을 사서 어머니 댁 냉장고에 넣어 뒀다가 저녁에 구워 먹기도 했지만 늘 그렇진 않았다. 상 좀 보고, 물린 상 좀 치우고, 설거지 좀 하고, 과일 좀 깎고. 내가 하는 일은 그게 다였다.


저녁상이 차려지면 어머니께선 에미 많이 먹어라 하셨다. 좋아하는 음식이 멀면 안 먹는 건 합쳐서 접시를 줄이고 내 쪽으로 옮겨 주셨다. 둘째 문제로 일주일 내내 속이 썩던 그 주엔 내가 거실로 들어서자마자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속 너무 끓이고 살지 마라. 하셨다. 말수가 많지도, 말투가 다정한 편도 아니지만 어머니가 우리 네 식구를 얼마나 아끼시는지 해가 갈수록 절감하고 있다.


-내가 너무 심했나?


남편이 한 번 더 물으면 이렇게 말해 주려 한다.


당신이 해 주실 수 있을 때 해 주시려고 그러시는 거 아닐까.

우리는 그저 감사한 맘으로 냠냠! 꼭꼭!

중간에 고기 떨어졌다고 불평하지 말고.

(미간에 힘 빡 주고) 알았어,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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