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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르셔 꽤 Feb 03. 2021

엄마, 나 가끔 꼬추가 일어서


나는 식탁에 앉아서 책을 읽고, 아들은 그 옆에서 꼼지락거리며 놀던 중이었다.

그때 아들이 무심하게 던진 한마디.     


 

“엄마, 나 가끔 꼬추가 일어서.”

흡, 뭐라고?

이제 막 11살이 된 것뿐이니 조금 이른 거 아닌가 싶었다. 이성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던데 몸은 벌써 이만큼 자랐다는 건가? 아니야, 5살 아이도 엄마 등에 업혀서 놀다 보변, 마찰 때문에 소중이가 불쑥 깨어나는 경우도 있다고 했어. 그래서 엄마가 깜짝 놀랐다고 말하는 글을 본 적 있단 말이야. 그래, 단순 반응일 수도 있지. 내가 생각하는 그런  말고.         


  

“언제?”

나는 호들갑을 떠는 대신, 태연하게 물었다.        


   

“마음이 두근두근할 때.”

어랏, 아들 너 다 컸구나. 이제 애기애기 아니고 ‘오빠’인 거야? 정말 그런 거야? 벌써?     



“그게 언젠데?”

가벼운 어투로 물었다. 최대한 ‘별일 아니라는 느낌’으로.       





“블럭이 무너지거나 그럴 때.”      

 

풉! 으흐흐흐 흐흐. 엄마는 그런 신체 기관을 소유하고 있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 말씀하신 내용은 오작동 사례로 보여요.

오 마이 베이비. 당분간 우리 사이에 큰 변화는 없겠어요. 지금처럼 마음껏 안고 뽀뽀하고 뒹굴거리며 지내요.  


아들, 조금 천천히 커도 좋아. 엄마는 지금이 참 좋거든!


       




저는 몹시 귀여운 14살 형아를 알아요.       

앗, H야.... 꼬추와 고추는 이렇게 다른 거구나.  마음 아프게 아래도 틀렸네. 네가 체육 시간에 측정한 그거, '악력' 맞아요.

생활 속에서 맞춤법에 어긋난 표현을 찾아, 바르게 고치고, 그 이유를 설명하라고 했더니 저렇게 적었더군요. 덩치가 무척 크고, 게으르고 행복하며, 마음이 순수하고 너그럽고 깊은 우리 H. 미안하지만 저는 아직 H에게 피드백을 못해 줬어요. 줌 수업에서 저 내용을 언급하면 방송 사고 느낌이 날 것 같았고, 얼굴 보고 이야기 하자니 웃음이 터질 것 같고. 제가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어느 날 혼자 민망해하며 스스로 진실을 알게 될 것도 같아서요.




그리고 좀 우스운 16살 형아들을 알아요.

이 장면에서 형아들은 웃퍼했어요. 아니, 눈물이 맺혀야 할 부분에서 왜 웃음이 터진 거죠? 도대체 왜요?

  어머니는 조각마루 끝에 앉아 말이 없었다. 벽돌 공장의 높은 굴뚝 그림자가 시멘트담에서 꺾어지며 좁은 마당을 덮었다 동네 사람들이 골목으로 나와 뭐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통장은 그들 사이를 비집고 나와 방죽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머니는 식사를 끝내지 않은 밥상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두 무릎을 곧추세우고 앉았다. 그리고, 손을 들어 부엌 바닥을 한 번 치고 가슴을 한 번 쳤다. 나는 동사무소로 갔다. 행복동 주민들이 잔뜩 몰려들어 자기의 의견들을 큰 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들을 사람은 두셋밖에 안 되는데 수십 명이 거의 동시에 떠들어대고 있었다. 쓸데없는 짓이었다. 떠든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어머니는 두 무릎을 '곧추세우고' 앉았다. 글쎄, 이것 때문이었어요. 16세 남아들이 문학 작품을 이리 섬세하게 읽어내실 줄은 몰랐어요. 글자 두 개도 허투루 읽지 않더라구요. 감동이군요...)





“엄마, 가끔 꼬추가 일어서.”

“언제?”

“마음이 두근두근할 때.”

“그게 언젠데?”     

“블럭이 무너지거나 그럴 때.”          

( YN. 2021.0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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