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비안 광 Jan 08. 2022

걷는 속도로 보아야 보이는 것들

책은 도끼다


인간에게는 공유의 본능이 있다. 울림을 공유하고 싶다.




얼어붙은 감성을 깨뜨리고 잠자던 세포를 깨뜨려 촉수를 예민하게 만든다. 그 예민해진 촉수가 그의 생업을 도왔고 남들의 행동에 좀 더 관대해지고 늘어나는 주름살이 편안해졌다. 그가 우리에게 깨우쳐 주려고 했던 울림이 저런 것일까?

박웅현은 책을 한 문장 한 문장 꾹꾹 눌러 깊이 있게 읽는다. 좋은 부분들, 감동받은 부분들을 줄 치고 책 읽기가 끝나면 옮겨놓는 작업을 한다. 이런 방식의 책 읽기를 통해 얻은 '울림'을 우리에게 전달하는 것이 목표이고, 본인에게 '울림'을 준 책을 독자들이 사고 싶게 만드는 것이 또 다른 목표이다.

'그럼 뭐야, 책이 책을 판다고.' 인문학적인 감수성이 떨어지는 나는 그런 얄팍한 생각을 했었다. 그가 말하는 울림은 1강을 읽고서야 알았다.

1강에서는 주로 판화가 이철수와 김훈의 글을 소개한다. 김훈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둘에 한 명은 그의 글솜씨를 잘 알 것이다. 나 역시도 뭐라고 딱히 말은 못 하겠지만 익히 들어왔던 인물이다. 2강에서는 김훈의 이야기만을 제대로 들여다본다. 특히 자전거 여행은 26일 만에 3쇄를 찍어낼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자전거 여행을 읽었을까? 읽지 못했다. 그가 소개해 주는 자전거 여행은 한 마디가, 한 문장이 어찌나 공감이 가던지 오히려 읽지 않아서 대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더 큰 울림을 받았으니 말이다.

판화가 이철수의 책은 평소에 못 보던 걸 보게 만들어 주었단다. 뜻밖의 시선에 놀라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단다.

그가 소개해 주는 그들의 짤막한 글에 갈증이 생겨 나는 당장 책을 구매했다. 지금은 비록 책 탑에 쌓여 있지만 곧 갈증을 해결할 생각이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책을 사고 싶게 하는 것, 그것으로 인한 울림이 어떤 것인지.

순간순간 발견하는 데서 오는 행복. 말을 걸어오면 들을 수 있는 여유. 일상을 뒤집어 보는 능력에서 오는 기발함들이 풍요로운 삶을 느낄 수 있는 울림을 주는 것이다.

행복 또한 순간에서 오는 것이라 했다. 찬란한 햇살의 철학을 잘게 부숴 넣은 듯한 지중해성 문학은 '현재에 집중하고 순간을 살아라'가 핵심이다.

어제의 비도 내일의 햇살도 필요 없다. 오늘 하루의 햇살을 소중히 즐기는 것이다. 지중해로 떠나 오늘만 존재하는 곳에서 오늘을 즐기고 싶다.

기억하라. 카 르 페 디 엠



솔로가 아닌 이상 지중해로 떠날 생각을 하면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떠오를 것이다. 행복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니까.

알랭 드 보통의 사랑 이야기를 읽으면서 연애 포함 21년째 함께하고 있는 남편과의 시간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참 징글징글하게도 많이 싸우고 죽지 못해 산다면서 옆에 있으면 귀찮고 없으면 허전하고 이런 아이러니한 관계가 또 있을까? 그런데 막상 이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그럼 못 견딜 것 같다.

보통을 통해 우리는 삶을 낭비하지 말고 감사해하며 현재의 순간순간을 모두 사랑하라는 이야기를 박웅현의 입으로 전해 듣는다.

그리고 결국 읽어내지 못한 밀란 쿤데타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의 사랑 이야기도 마저 듣고 싶다.


우리는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똑같은 시간을 살고 있다. 하지만 각자의 삶은 다르다. 나는 박웅현으로 인해 일상을 뒤집어 보고 말을 걸어오는 것들에게 들을 준비가 되었다. 박웅현이 그들의 안내를 받아 생겨난 삶의 태도가 나 또한 그의 안내를 받아 일상을 달리 보는 계기가 되었다. 조금은 더딜지라도 걷는 속도로 보아야 보이는 것들이 분명 있다. 단 한 권을 읽어도 나의 촉수를 예민하게 만들어 주었다면 그것은 풍요로운 울림이다.

2016 그때의 감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