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 상무님께서 잠시 뵙자고 하시는데요?” 김 부장은 현기증과 함께 가족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올랐다. 특히, 고3인 첫째와 고1인 둘째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대기업에 근무한 지 20년. 동기들에 비해 승진도 빨랐고, 회사에서도 인정을 받으며 보낸 세월이었다. 근래 회사에서는 구조조정과 함께 희망퇴직자 신청을 받고 있었다. 일주일 전 김 부장과 비슷한 승진코스를 밟은 입사 동기가 희망퇴직을 신청했다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전화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복잡한 마음으로, 박상무의 집무실 앞에 섰다. “어서 들어오게.” “네. 상무님! 그런데 어쩐 일로 찾으셨는지요?” 짐짓 모른 척 용건을 물었다. “김 부장! 우리가 같이 있었던 시간이 벌써 15년이나 되었군.” 김 부장은 상상하고 싶지 않았던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죠. 그동안 제가 상무님을 잘 보필하지 못한 것 같아 많이 죄송스럽습니다.” “아니네!! 자네만큼 훌륭히 맡은 일을 해내는 친구도 없었어! 오히려 내가 자네를 많이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지.” 박상무는 어색한 미소로 대답했다. 어려운 얘기를 하려는 듯 표정도 밝지 않았다. “그동안 고마웠네.” 김 부장은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슬픔과 허탈함으로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박상무는 말을 계속했다. “이번 달 말 일자로 새로 오시는 이상무를 잘 부탁하네!! 나한테 하듯이 이상무도 잘 보필해서 회사가 좀 더 발전하는데 많은 기여를 해주길 바라네!”
“네?”
놀랬는가? 40대 중반이면 이런 시나리오의 경험을 누구랄 것도 없이 상상해 볼 수 있다.
이때쯤이면 다음과 같은 재정적 특징들이 생긴다.
1) 교육비가 사상 최대치로 지출된다.
2) 가계 수입도 사상 최대치가 된다.
3) 저축률은 조금씩 떨어지고 절대적인 생활비 지출이 늘어난다.
4) 은퇴를 곧 앞두고 있다.
이러한 재정적 특징들은 또 다음과 같은 두려움을 낳는다.
1) 직장 생활이 불안하거나 언제 명퇴를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커지게 된다.
2) 현재 모아 놓은 재산으로 노후를 과연 문제없이 살 수 있을까 걱정이 커지게 된다.
3) 최소한 정년까지는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진다.
4) 조금만 머리가 아프거나 배가 아파도 ‘이거 암 아냐?’라는 걱정이 앞선다.
5) 잘 나가는 친구들을 보면 괴롭고 자신의 삶에 후회가 생긴다.
아마도 40대에 해당되는 대부분의 가장들은 크고 작게 위와 같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사실 두려움의 실체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함이다. 우리는 흔히 ‘1년 후, 10년 후에 어떻게 될까?’를 고민한다.
재정상담을 하다 보면 많은 분들이 자신의 소득, 나이, 자녀수, 자산현황, 부채현황, 지출현황 등으로 나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혹시 재테크를 잘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알려 달라고 한다. 전문가에게 문의하는 것도 아주 훌륭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그것은 앞으로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이고, 남은 생에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현재의 재정 상황에서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40대를 인생을 정리하고 은퇴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통계자료에 따르면 공식적인 은퇴 후에도 8년 이상 일을 더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놀라운 사실은 우리의 라이프-사이클(생명주기)도 바뀌었다는 것이다. 100세 시대를 기준으로 산 세월보다 앞으로 살아야 할 날들이 더 많다. 그럼 인생의 40% 남짓 산 사람들이 인생을 정리하고 노후에 뭘 할까 고민하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일까?
40대는 아직 젊다. 40대야 말로 본격적으로 도전해야 할 것들을 찾아 강력하게 실천해야 할 때이다. 얼마나 좋은가? 자녀들도 자기 앞가림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자립할 수 있는 육체적 연령이 되었으니…
40대여 우리 현실을 직시하자. 여러분들이 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일은 무엇에 도전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지, 어떻게 노후를 편안하게 보낼 것인가를 걱정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