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학준 Jun 16. 2024

무슨 마약하시길래 이런생각을 했어요?

김경수,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

#

북펀드 한 책이 어제 밤에 도착했다. 김경수의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 사실 제목만 보고 바로 북펀딩 결제를 눌렀다. 어떻게 안 누를 수 있겠나? 물론 저자는 이 책이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책은 아니라고 강하게 손사래를 트위터에 피력했지만, 사실 그것 때문에 샀다. 한국 인터넷 밈의 도록으로서가 아니라, 비평서이기 때문에 샀다. 그리고 책을 펴 보니 사길 잘 했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두 세 문장 당 하나 꼴로 '밈화'된 문장들이 튀어나오는데, 인터넷 게시판에 오래 서식했던지라 알아채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나는 왜 이 밈들의 출처를 다 알고 있는가, 이것이 밈 중독자의 고통인가. 그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던 것인가.


#

영원할 것 같다가, 하루아침에도 사라지는 게 인터넷 밈이다. 이유도 기간도 종잡을 수 없다. 어떤 밈은 만든 사람의 정체가 드러나서 인기가 식어버리고, 어떤 밈은 인터넷에 올린 지 수년 후에 갑자기 빛을 발한다. 왜 그 밈이 내 눈에 띄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왜 나의 유튜브 타임라인엔 sake L의 노동요가 들어와 있고, 왜 요일바의 음악을 듣고 있는지. 대체 처음 그들이 내가 다가와 밈이 된 건 언제였지? 어떻게였지? 왜 그것들이 나에게 왔고, 나는 그것들을 왜 다시 사람들의 타임라인으로 떠밀었을까? 그게 대체 무슨 행위일까, 이 행위엔 이유가 있는 걸까? 그런 궁금증이 항시 있었더랬다. 첫인상은 그 궁금증을 해소하기에 적절한 책이라는 생각이다.


#

'인터넷 밈'이라는 게 뭘까? 흔히들 리처드 도킨스의 개념인 '밈'을 그대로 가져다 써서, 인터넷이란 공간에서 반복적으로 활용되고 복제되는 무언가라고 설명하고 끝낸다. 대중적인 수준의 설명을 한다면 이 정도도 큰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념의 범위가 너무 넓고, 무엇보다 '인터넷' 공간에 대한 고려가 없다. "이전의 것을 재생산한 것에 대해서는 복제라고, 이전에 없던 것을 생산한 발명이나 창조적인 예술에 대해서는 문화적인 돌연변이라고 설명하면 된다."(19) 저자는 조금 더 엄밀하게 '인터넷 밈'을 정의하기 위해서 리모르 시프만의 것을 가지고 온다. 그는 인터넷 밈을 서로가 서로를 향해 있는 인터넷 공간에서 다수에게 퍼트리고, 모방과 변형이 가능한, 디지털 아이템들로 (거칠게 요약하면) 정의한다. 


그러니까 어딘가 인터넷 공간에 올라올 디지털 소스들이 있다. 영화, 만화, 예능 등 다양한 소스들이 디지털의 형태로 변형되어 인터넷 공간에 올라오면, 누군가는 그 소스의 일부분을 자르고 이어 붙여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전달할 콘텐츠를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가고, 커뮤니티에 속해 있는 사람들 중 누군가가 그것에 관심을 보이고 그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보내거나 써먹는다. 재미있으니까. 재미있기 때문에 만들고, 재미있기 때문에 퍼진다. 인터넷이라는 매체에 적합한 디지털 파일의 형태로. 저자는 이 과정을 한 문장으로 이렇게 줄인다. "인터넷 밈을 '합성 소스를 기반으로 하는 불특정 다수의 대중이 참여하는 대안적인 놀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44)


놀이, 그러니까 여럿이 이를 반복적으로 활용하고, 때로는 변형하면서 (모든 놀이는 지역, 시간, 장소에 따라 조금씩 그 룰과 형태가 달라지기 마련이다) 함께하는 사람들에게는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의미가 통하는 무언가가 된다. (그... 몬말인지 알지?) 이것은 일종의 언어로 특정한 의미나 느낌이 담겨 있인 매체가 된다. 인터넷 밈에 익숙한 사람들끼리는 이모티콘이나 긴 줄글보다 더 정확하게 그 의미와 기분을 전달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 '맥락'을 공유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보기엔 '그게 뭔데 씹덕아'가 되는 것이겠지만. 그리고 이미 오래되어 밈으로서의 생명력이 소진된 밈을 들고 오면 '아재요...' 소리와 함께 아련한 눈빛의 대상이 되는 것일테고.


그런 점에서 밈은 매우 제한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자, 수명이 짧은 놀이다. 게다가 언제 끝날지, 언제 새롭게 시작될 지 예측하기 매우 어려운 놀이다. 사람들의 창의성에 기대기도 하고, 무엇이 재미있고 없고를 남이 정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심지어 어떤 인터넷 밈은 정치적 감각들의 표현이기도 하다. 편견과 혐오를 손쉽게 전달하고 공유하는 수단이 되지만, 정작 그 맥락이 거세된 채 그저 표현이 웃겨서, 센스가 있어서 사용하다가 놀이 참가자가 큰 위험에 처하는 경우들도 많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우리가 서로 같은 맥락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은밀하게 주고 받을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게 누군가에겐 인터넷 밈을 활용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

여기 담긴 주옥같은 문장들은 직접 읽기를 권한다. 요약해서 내용만 정리하는 건 알맹이를 다 빼놓고 수확하는 것과 같다. 벤야민, 키틀러를 논하는 고상한 문장들에 뒤 이은 심영 '폭★8' 같은 문장이 거부감 없이 병치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읽은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다. 맥락맹이 되어가는 인터넷 공간과, 끊임없이 새로 타임라인을 갱신하는 데 몰두하도록 만드는 SNS와, '박제'된 이미지(혹은 텍스트)로 모든 것을 끝내려는 '인터넷 밈'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들은 요약보단 직접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인터넷 밈에 중독되어 짤방들 수백개를 스마트폰에 저장해두고 다니면서 시시때때로 사람들의 타임라인으로 흘려보내는 나같은 사람이 자기 자신의 행위를 설득력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책이다. 그리고 내가 밈을 활용하는 것만큼, 밈도 나를 남에게 드러낸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섬찟해질 수 있다. 그저 웃기기 위해서 인터넷 밈을 활용하기 전에, 우리는 밈의 이면을 한 번 잘 들여다봐야 한다는 당연하지만 간과하는 사실들도. 그리고 무엇보다 의미 다 떠나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읽으면서, 당신의 밈 중독성 수준을 테스트해 보라. 혹시 아는가. 당신도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밈 중독증' 입니다." 소리를 들을지도? "흥, 웃기는 소리."

#

덧붙이면, 책은 참으로 도전적이다. 밈처럼 예측 불가능한 수명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책을 쓰겠다는 사람도, 그 내용을 책으로 만들겠다는 사람도 모두. 게다가 문장들에 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두었다니, 조금만 시기가 지나도 이 책의 문장들이 뭐가 웃긴지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태반이 될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그래서 좋았다. 안 그런 척 재는 문장들로 가득한 책도 시대와 들러붙어 있다는 사실을, 그런 책을 쓰고 펴내는 사람만 모른다. 


책의 용도 폐기는 책을 쓰고 만드는 사람의 손에 달려 있지 않다. 인터넷 밈처럼, 저자의 역할은 명백히 한정적이다. 책의 생명력은 보고 읽는 사람들이 대부분 결정한다. 이 책 속 밈들이 다 죽어 문드려서 사라진 후라 할지라도, 책의 생명력은 별개의 문제다. 금방 잊힐 수많은 밈들을 '박제'해둔 것만으로도, 이 책은 훌륭한 사료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학창시절 애써 만들어 둔 자료들이 대부분 암흑 속으로 사라졌던 경험을 우리 모두 관통하고 있지 않나. 디지털 시대는 이전의 시대보다 역사를 훨씬 빠르게 망각할 것이다. (아 그래서 그 분들이 밈을 책에 싣는 걸 거부한 건가...)


#

"인터넷 밈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것은 오직 지적재산권과 자본뿐이다."(99) 이 책에 실리지 못한 수많은 밈들을 가리키는 하이퍼링크는 오래지 않아 끊길 것이다. 우리는 '예전에 그런 밈이 있었지'라고 뇌까릴 뿐, 많은 흔적들이, 많은 놀이의 결과물이 없었던 것이 되겠지. 어쩌면 이 책을 보면서 패멀라 폴의 <우리가 두고 온 100가지 유실물>을 떠올리는 게 그렇게 이상한 건 아닐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

연재 게시 후 수정하면 연재에서 빠진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아는 게 없다. 같은 내용을 다시 연재에도 게시했다. (6/1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