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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정 Feb 08. 2021

29. 나랑 책 모임 할래?

- 친구에게 책 모임 권하는 아이 

 “엄마,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어디 있어요?”

 외출했다 들어온 아이가 신발을 벗자마자 책장으로 달려간다. 다짜고짜 책을 찾아내라니 당황스럽다. 안방, 거실, 아이 방을 여러 번 드나든 끝에 겨우 책을 찾았다. 몇 년 전에 사서 읽고는 잊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만나니 반가웠다. 오래된 잡화점에 찾아든 도둑들이 과거로부터 편지를 받고, 답장을 해준다는 이야기. 편지를 보낸 사람들의 사연과 도둑들이 고민하여 쓰는 답장을 읽으며 잔잔한 감동을 느꼈던 기억이 났다. 언젠가 아이에게 권해도 좋을 책이다 생각은 했는데, 이렇게 느닷없이 아이가 읽게 될 줄은 몰랐다. 


 “이 책을 네가 어떻게 알아?” 하니 아이는 “주*가 이 책을 읽고 있다고 해서요. 나도 읽을까? 나랑 책 모임 할래? 했더니 좋대요.” 하고 답한다. 같이 놀래? 같이 맛있는 거 먹을래? 도 아니고 같이 책 모임 할래?라고 했다니. 그 얘기를 듣고 주*가 “좋아!”했다는 것도 놀라웠다. 아이 이야기를 들어보니 주*는 평소 책을 좋아하고 잘 읽는단다. 책 모임 얘기를 꺼냈더니 재미있겠다며 반겼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하며 아이는 기분이 좋은지 싱글벙글이다. 휘파람까지 불며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위에 내려앉은 먼지를 걸레로 깨끗이 닦아낸다. 친구를 책 모임에 초대하는 아이, 그 초대에 즐겁게 응하는 아이. 두 녀석 모두 멋지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히가시노 게이고.현대문학)


책 모임 주최자가 된 아이  


“엄마, 주*는 책 모임이 처음이니까 내가 발제하기로 했어요.”

 아이가 책장을 넘기며 무심히 말한다. 나는 또 놀랐다. 친구를 위해 일부러 책을 읽는 것도 신기한데, 발제와 진행도 제가 맡는단다. 책의 장르나 난이도, 분량은 전혀 상관없다는 듯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반면에 엄마인 나는 오래전에 읽어 책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인가, 두께가 좀 있는데 아이들이 끝까지 읽을까 싶어 걱정부터 앞선다. 급히 책 정보를 검색해보고, 책을 넘겨 밑줄 그은 문장들을 다시 살폈다. 나쁘지 않았다. 아이들 스스로 고른 책이고, 스스로 만든 모임이다. 어른이 끼어들어 훼방 놓으면 안 된다. 이번에야 말로 나는 입 꾹 다물고, 곁에서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응. 잘했어. 그런데 책이 좀 두꺼운데. 한 번에 다 읽을 거야?”

“아... 그럼, 세 번에 나눠서 읽어야겠어요.”

그날부터 아이는 일상적인 놀이를 하듯이 가뿐하게 책 모임 준비를 했다. 친구들에게 3회 모임을 제안하고, 읽을 분량을 안내했다. 모임 날과 시간을 정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틀에 걸쳐 느긋하게 1~2장을 읽더니 컴퓨터 앞에 앉아 발제를 했다. 그동안 읽어온 책들과 결이 좀 달랐는지 “엄마, 발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하고 묻기도 했다. 나는 신경 쓰지 않는 척하면서 아이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아이가 물으면 놓치지 않고 조언을 해줬다. “동화책 발제하듯이 편하게 하면 돼. 네가 의미 있게 본 장면, 인물, 사건을 골라봐. 그리고 친구들한테 너는 어떻게 봤어? 어떻게 생각해? 너라면 어떻게 하고 싶어? 하고 물어보면 좋을 것 같아.” 아이는 “아!”하고 개운한 표정을 짓더니 쉬지 않고 질문을 만들었다. 



아이가 만든 발제문 일부


 아이는 모임 주최자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려 애썼다. 완성된 발제문은 모임 이틀 전에 사진으로 저장해서 친구들에게 보냈다. 어른이 시키면 여러 날 걸릴 일을 짧은 시간에 마무리했다. 책 모임 날이 되자 30분 전부터 모임 할 준비를 했다. 줌을 열고, 발제문 공유가 잘 되는지 살폈다. 이 모든 걸 엄마 도움받지 않고 혼자 했다. 알고 보니 책 모임에 초대된 친구는 두 명이었다. 우리 아이까지 셋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고 모였다. 아이가 식탁에 앉아 책 모임을 한 덕분에 나누는 이야기 일부를 들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서로를 배려하며 천천히 대화 나누는 모습이 고왔다.   


아이들의 말+웃음 


 나는 책 모임 할 때 아이들의 말소리에 웃음소리가 섞이는 순간을 좋아한다. 이 순간 서로 진하게 통(通)하는 기분이 든다. 마음이 통하고, 생각이 통해서 너와 나의 경계가 없어진다. 우리 아이가 “네 생각은 어때?”하면 친구가 조근조근 제 생각을 얘기한다. “처음에 도둑들이 나미야 잡화점에 들어가는 부분이 좋았어. 그림이 없어서 잡화점의 모습이나 인물의 성격, 생김새를 상상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어.” 또 다른 친구가 조금 높은 톤의 목소리로 생각을 덧붙인다. “내가 도둑이라면 도둑질을 해서 천벌을 받나 보다, 이렇게 이상한 일을 겪는구나 할 거야.” 아이가 깔깔깔 웃는다. 이어서 다른 아이들도 웃음을 보탠다. 


 “나도 처음에 도둑들이 나미야 잡화점에 들어가서 편지를 딱 받았을 때가 마음에 들었어. 도둑들이 쫓겨서 잡화점에 들어간 건 평범했는데, 편지를 받아서 토론하고 고민하는 게 재미있었어.”, “나는 쇼타가 우유 상자의 비밀을 알아내서 논리적으로 정리해 말하는 장면이 좋아. 과거의 사람과 대화를 나눈다니 신기했어.” 아이들이 또 웃는다. 우리 아이가 “어, 낱말을 잘못 썼네. 오타야.”하니 아이들이 크게 웃는다. 자극적인 소재나 장면이 없어도, 현란한 말장난이 없어도 아이들은 이야기를 즐긴다. 같은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서로에게 공감한다. 함께 웃는다. 고개를 슬쩍 내밀어 보니 아이들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책 모임을 진행하는 우리 아이는 “~쪽을 봐주세요. 이 장면을 어떻게 보았나요?”하고 공손히 묻고, “OO 생각은 어때?”하고 발언을 유도한다. 질문의 의도를 친절하게 풀어 말해주기도 한다. 친구들이 생각을 정리하지 못해 머뭇거리면 자기가 먼저 의견을 내기도 한다. 자기 말이 너무 길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느껴진다. 친구의 말에 “나도 그렇게 생각해.”, “정말 그렇네.”하고 추임새도 넣는다. 평가하는 말을 하지 않으려 애쓴다. 그런 아이를 보면서 7년 동안 책 모임 해온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일부러 가르치지 않았지만 아이는 잘 말하고 잘 듣는 걸 배웠다. 타인의 입장되어 생각하고 느꼈다. 


처음 아이 책 모임을 시작할 때는 아이에게 책을 많이 읽히려는 욕심이 컸다. 우리 아이가 책을 많이 읽고, 잘 읽게 하는 게 책 모임 하는 큰 이유였다. 하지만 책 모임을 오래 해보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책 모임은 아이에게 더 크고 멋진 선물을 주었다. 타인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능력, 약속을 지키고 책임지는 자세,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는 능력, 자신에 대한 긍정적 인식. 아이 마음 밭에 귀하고 좋은 것들이 가득 피어났다. 이제 아이는 제 마음에 담긴 것들을 친구와 나누려 한다. 아이는 함께 읽고 나누는 즐거움을 알았다. 자신이 알게 된 것을 주변 사람과 나누는 사람으로 자랐다. 


"나랑 책 모임 할래?" 묻는 아이, "좋아" 답하는 아이


한 시간 조금 넘게 진행한 책 모임이 끝났다. 함께 얘기 나눈 친구들은 “ 책 모임을 처음 해봤는데, 너무 재미있었어. 앞으로 꾸준히 하고 싶어.”,“ 나도 이렇게 주*랑은 처음 해봤는데,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좋은 책이다. 훌륭한 책 모임이었어.” 하고 소감을 나눠줬다. 우리 아이는 “도담도담 책 모임을 처음 진행했는데, 아주 잘 됐다고 생각해. 기분이 아주 좋아.” 하며 뿌듯해했다. 나중에 들으니 그새 책 모임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다음 2회 모임 발제는 책 모임을 처음 해본 주*가 한단다. 주*가 “나 발제해도 돼? 내가 해보고 싶어.” 했다니 고마운 일이다. 우리 아이가 친구 마음에 책 모임 씨앗을 뿌렸다. 읽고 나누는 즐거움을 맛보게 해 주었다. 친구는 기꺼이 아이가 내민 씨앗을 제 마음 밭에 받아들였다. 덕분에 우리 아이는 내가 가진 것을 타인과 공유할 때 얼마나 행복한지 알게 됐다. 


“나랑 책 모임 할래?”하고 권하는 아이와 “좋아”하고 흔쾌히 답하는 아이. 이 아이들은 자라 어떤 어른이 될까? 아마도 부모들보다 더 유연하게 생각하고, 더 다정한 어른이 되겠지. 그런 어른들이 모여 사는 세상은 어떨까? 아마도 지금보다 더 평화로울 거고, 더 많은 사람이 함께 행복한 세상이 되겠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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