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윤리
<숭실대 학술적 논문 에세이 글짓기 경연대회 '정의란 무엇인가' 장려상 수상작>
-소개
'정의와 윤리 - 상식을 타협할 수 있는가'는 작가 본인이 대학교 때 교내 글짓기 경연대회에서 수상한 작품이다. 대학교 때 쓴 에세이기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미리 알린다. 그럼에도 배포하는 이유는 꽤 치열했던 경연이었고 그 대회에서 수상한 작품이기에 배포 가치가 있어 공개적으로 개인 블로그에 공유한다. 그러나 정치적인 편향을 지향하지 않으니 글에 정치적 색채가 있더라도 그것 자체가 글의 의도가 아님을 알린다. 그러한 논의 외에 모든 교육적 목적과 비상업적 의도라면 인용이 가능하니 참고하길 바란다.
-목차
1. 한 주장 제시 – 정의란 타협의 산물
2. 문제제기 – 사람들은 도덕적 당위를 타협하지 않는다.
3. 정의와 윤리의 상관관계
4. 상식으로서 최소한의 윤리
5. 타협 가능한 공동의 정의
6. 상식을 타협할 수 있는가
7. 확장된 방안 – 윤리의식의 고도화, 숙의민주주의 발달, 통합된 사회정의 고취
-본문
한 칼럼1)에서 정의는 시대와 사회에 따라 변화해서 다양하기에 도덕적 당위를 앞세운 나만의 정의보다 공동의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만의 정의의 나쁜 예로 탈레반과 테러집단 이슬람국가(IS)를 들어 나만의 정의가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적시한다. 이 때 유의해야 할 점은 나만의 정의가 그냥 세워진 것이 아니라 도덕적 당위에 따라 세워졌다는 것이다. 도덕적 당위의 정당성을 인정하되 그에 기인한 정의에 대해 타협을 하지 않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박정희 우표 논란의 경우 그가 ‘국가를 위해 큰 업적을 남겼다는 역사적 사실’이 ‘독재자’란 타이틀에 평가절하 되는데 이는 저마다의 정의를 내세워 국가공동체의 대의를 무시하는 것이라 한다. 이는 최저임금 인상 문제에도 적용하면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공약을 일방적으로 주장함으로써 일부 수혜자를 빼고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고 한다.
이상한 점이 있다. 어떻게 도덕적 당위가 정당한데 그에 따른 정의를 타협할 수 있는지의 문제가 그것이다. 만일 가능하다면 사람들은 왜 도덕적 당위에 대한 주장을 타협하지 않는 것일까. 예를 들어 현 정부의 이른바 ‘적폐청산’을 포함한 전반적인 정치에 대해 70% 넘는 지지도를 보이는 것을 통해 대다수의 시민들이 타협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제시하는 도덕적 당위는 바로 우리 사회에서 지켜져야 할 최소한의 윤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칼럼에서 주장한 공동의 정의를 실현을 하기 위해서도 그 사회에서 지켜져야 할 최소한의 윤리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즉 그들이 타협하지 않는 것은 최소한의 윤리, 즉 상식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윤리는 정의에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하는 요소인 것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정의의 개념을 살펴보면 철학적으로 개인 간의 올바른 도리 또는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이다. 굳이 따지자면 개인적 차원의 정의와 사회적 차원의 정의가 있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윤리와 거의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윤리의 개념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이다. 이는 전자의 정의보다 강제성 있는 어감이지만 모두 사람의 이상적인 도리를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그 맥락은 흡사하다. 이에 반해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가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와 맥락을 같이 하는가는 확실한 근거가 없다. 왜냐하면 후자의 정의는 전자의 정의에 비해 너무나도 다양한 양상을 띠고 있고 그 공정성의 여부도 확신할 수 없기에 강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통 우리는 정의(正義)를 떠올릴 때 후자의 정의를 떠올린다. 그것은 수많은 학자들이 정의에 대해 탐구할 때 사회라는 개념을 배제하지 않기 때문이고 또 사람들도 정의를 떠올릴 때 수많은 학자들이 얘기한 정의를 우선적으로 떠올리기 때문이다. 정의를 떠올릴 때 후자의 정의를 주로 다루기에 우리는 후자의 정의에
대해 봐야 한다. 윤리와 맥락을 달리한다고 한 정의,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는 정말 강제할 수 있는 부분이 전혀 없을까? 공정성에 관한 정의는 전체를 강제할 수 없지만 일부 강제해야 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사회에 속해 살아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질서가 필요하고 그것이 바로 윤리라는 영역이자 정의의 한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 문제 같은 경우에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임시직은 인상불가가 될 경우 물가의 지속적 상승이라는 외부요인에 압박을 받아 실질임금이 낮아지고 사회취약계층으로도 분류될 수 있는 위험도 떠안게 된다. 이들을 이대로 방치하는 것은 기초생활수준에 대한 압박을 받게 하여 생존권 문제에 직면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윤리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얘기이다. 앞으로 닥칠지 알 수 없는 고용불안 등의 이유로 최저임금 인상을 미루게 된다면 관련 노동자들에 대한 인권을 무시하는 처사가 발생하므로 임금인상을 하여 경제가 잘 순환되도록 해야 하고 현재 대다수의 여론 또한 이에 찬성하고 있다.
이러한 최소한의 윤리는 상식적으로 존재해야 할 윤리의 수준을 의미한다. 정의 사회 구현을 위해서 최소한의 질서가 필요한 것은 맞지만 그 수준이 어디까지이며 확실히 정할 수 있는지 여부는 아직 불확실하다. ‘상식이 통하는 나라’라는 칼럼2)에서는 상식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토머스 페인의 『상식』이라는 베스트셀러
소책자에서는 당시 시대를 이끌던 사상, 입헌군주제를 위한 로크의 이론을 수용하되 그 논리에 모순된 점을 찾아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왕이 존재하는 한 권력이란 그에게 집중이 되기 때문에 입헌군주제도 옳지 않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영국의 미국에 대한 지배를 비판하는데 ‘자식’을 냉혹하게 차별하는 어머니는 자격이 없다고 하였다. 이로 인해 미국은 입헌군주제가 아닌 대통령을 선출하는 민주공화국을 만들어 내었다. 독립 쟁취를 위한 미국의 전쟁을 독립’혁명’이라 표현하는 것도 그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즉, 그 소책자를 통해 미국이 독립국에 되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 얘기한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건전한 상식이 몰상식을 몰아내고 승리를 쟁취한다는 점이다. 차별과 억압을 통한 지배는 몰상식이기에 우리는 건전한 상식을 이룩하여 몰상식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즉 상식인 최소한의 윤리로 몰상식을 배제함으로써 그 수준을 정하고 그 여부를 확실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몰상식이 무엇인지에 대해 바로 위 칼럼은 이렇게 제시하고 있다. 가진 자들이 없는 자들을 핍박하고, 정부가 개입하여 양심과 학문의 자유를 짓밟고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 몰상식인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가진 자들이 없는 자에 대한 착취를 막고 개인의 기본적인 자유를 보장받아야 하는 정도가 상식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최소한의 윤리이다. 이를 지키지 못한다면 정의사회는 구현하기 힘들어진다. 이러한 상식선이 무너지지 않아야 그 선을 바탕으로 다양한 정의의 논의가 전개될 것이다. 맨 처음 칼럼에서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현실에서 독점적 배타적 정의를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라고 했지만 그들은 정의보다 최소한의 윤리, 상식을 요구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에 해당하지만 그보다는 더 높은 수준인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인 것이다. 정의가 아니라 윤리를 주장하는 것이기에 도덕적 당위에 대한 일방적 주장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정의도 일방적인 주장을 통해 강제성을 띄어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아까 위에서 언급했듯이 정의는 너무나도 다양한 양상을 띠고 있고 그 공정성의 여부도 확신할 수 없기에 강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정의의 일부분만 강제를 허용하고 그를 제외한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타협할 수 있다. 가진 자들이 없는 자에 대한 착취를 막고 개인의 기본적 자유를 보장하는 기준 아래 세운 정의들은 얼마든지 타협이 가능하다. 정의의 모습은 여러 양상을 띤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약자의 정의, 존 롤스의 중용의 정의 그리고 벤담의 공리론인 경제적 정의가 있다3). 이 정의들을 서로가 주장하기만 한다면 공공의 정의는 이루어질 수 없다. 상식을 지키면서 이 정의들을 잘 융화시켜 통합해야 한다. 위 최저임금 인상문제를 볼 때 최저임금 인상을 미루는 것은 윤리적으로 허용할 수 없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고용불안의 문제를 차단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미리 예방해서 나쁠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임시직 자체를 줄이고 정규직화 하는 것도 또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임시직 자체를 줄임으로써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고용불안 문제를 잠재울 수 있고 정규직화하면서 일자리 창출을 하여 경제 선순환을 이끌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안은 최소한의 윤리를 지키면서 각자의 다른 정의를 다른 대안으로 융화시켜 새로이 제시한 것이다. 굳이 이 대안이 아니라 다른 더 융화를 잘 시키는 대안이 있으면 그 대안을 따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렇듯 사회적 차원의 정의, 공동의 정의는 타협을 통해 이루어나가야 한다. 즉, 공정성의 문제는 최소한의 윤리의 얘기가 아니므로 자유롭게 토론하고 또 공동의 방법을 모색해나가야 한다. 진영논리에 치우치지 않고 타협을 통하여 서로 다른 입장과 다양한 가치를 포섭한 ‘공동의 정의’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데 서로 갈라진 공동체가 아닌 통합된 공동체 사회를 위해서다. 유의할 점은 상식으로서 최소한의 윤리는 타협을 할 수 없다는 사실과 그를 제외한 영역으로서의 정의는 충분한 논의가 타협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구별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제대로 구별해내지 못하고 혼동하게 되면 올바르게 논의가 전개되지 못한 채 타협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할 것이고 이는 결과적으로 사회구성원이 그 위험부담을 떠안게 된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 인상문제를 선을 정하지 않고 일방적인 주장만 하면 그 위험은 고스란히 관련 구성원들이 떠안게 되어 정의는 막론하고 최소한의 윤리인 상식조차 찾지 못하게 될 것이다.
맨 처음 칼럼 머리말에 이러한 글귀를 인용했다. “승차는 정의롭게. 여행은 자유롭게” 이 글귀를 조금만 변형해본다면 “상식은 지키면서 승차는 정의롭게. 여행은 자유롭게”가 될 수 있겠다. 아무리 승차를 정의롭게 하고 여행을 자유롭게 한다고 한들 상식을 지키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과연 올바른가에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상식은 앞서 말했듯이 타협될 수 없다. 최소한의 윤리조차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차별, 착취, 무시밖에 없다. 이들에게 타협당하는 것은 권력에 굴복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권력에 복종하기보다 서로의 권력을 타협해가며 올바르고 공정한 정의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그럼으로써 우리에게 요구되는 자세는 건전한 상식을 쌓는 것인데 위에서 얘기하였듯이 몰상식의 기준을 피해서 쌓으면 된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여 보장받을 수 있고 부조리한 차별과 착취를 피하기 위해서 투쟁해야 한다. 하지만 그 최소한의 윤리기준은 지키면서 공정성에 관한 정의는 많은 논의 전개를 다양하게 하고 그 내용을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식 주장보다 타협을 이루어나가야 할 것이다.
더 바라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윤리 수준의 확장이다. 현재 만족하고 있는 최소한 의 윤리를 넘어서 윤리의식이 고도화되어 더 높은 수준의 투명성을 확립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사회가 투명해지면 개인의 자유를 좀 더 쉽게 존중받고 보장받을 수 있으며 착취와 억압의 구조 또한 사회의 견제를 통해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윤리 요건이 충족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도 벅찬 것이 사실이지만 시험점수를 목표로 80점을 잡으면 실제로는 더 낮은 점수를 받는 경우가 대다수이듯 목표를 평범하게 잡으면 실제로는 그에 못 미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소한의 윤리의 기준을 좀 더 높일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바라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숙의민주주의의 발달이다. 정의에 대해 최대한 많고 다양한 양상의 형태가 논의되어야 공동체가 제시하는 방향에 좀 더 수렴할 수 있다. 숙의민주주의를 구축한다면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에 어느 정도는 부합한다. 논의는 다다익선이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귀 기울여 듣고 이를 통합하려는 시도가 있어야 할 것이다.
1) 나의 정의, 너의 정의: 정의란 무엇인가/저자: 고미석
http://news.donga.com/East/MainNews/3/all/20170719/85419552/1
2) 상식이 통하는 나라/저자: 조한욱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65058.html
3) 경제와 정의에 대햐여/저자: 김세형
http://opinion.mk.co.kr/view.php?sc=30500146&year=2017&no=532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