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s and History Final Paper
-소개
아래 에세이는 작가 본인이 대학생 시절 비전공자임에도 정치 외교학과 전공 필수 과목 <Politics and History> 를 수강 하여 Final Paper로 제출한 글이다.「국가란 무엇인가」라는 베스트 셀러 책을 들고서 교수님께 해당 책도 독서 레포트 대상이 되는지 여쭙고 교수님께서 다행히 허락해주신 기억이 난다. 이 글 또한 해당 과목 교수님께 꽤 칭찬을 들었던 에세이로 기억하고 있어 교육적 의도로 배포한다. 정치적 편향성이 있더라도 그보다는 논리의 흐름, 추론의 과정 등을 목적으로 활용하길 바란다. 모든 활용은 비상업적이어야 함을 알린다.
-본문
I. 국가란 무엇인가_내용 요약
1. 바람을 거슬러 나는 새들에게
이 책의 표지를 넘기면 제일 먼저 나오는 글귀는 바로 ‘바람을 거슬러 나는 새들에게’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작가가 이 글을 쓴 대상이 ‘바람을 거슬러 나는 새들’ 즉, 시대에 순응하기보다 역행할 수 있는 도전정신을 가진 이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것이 진정한 진보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굳이 바람을 거슬러 날아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의지가 전혀 없이 바람에만 따라 사는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는 생각 또한 든다. 그래서 두 가지 방안을 놓고 비교해본다면 이 때 기회비용을 따질 수 밖에 없다. 바람을 거슬러 날 때 그만한 위험부담을 가지고 날만한 가치가 있는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바람을 거스를 때 적재적소의 타이밍인지 또 적당한 거스름인지에 따라 그 위험부담이 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의 거스름이 아니라 거스를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적재적소의 타이밍에 완벽한 스트라이크를 날리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만일 지금이 그 순간인 새들이 있다면 이 책은 큰 도움이 될 것 같고 또 그 순간을 기다리는 새들이 있다면 역시 이 책은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2. 합법적 폭력
국가의 합법적 폭력의 기원은 아주 오래되었다. ‘리바이어던’이라는 사회계약을 통해 탄생한 국가라는 개념이 존재한 순간부터 그 합법적 폭력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국가는 사회 내부의 무질서와 범죄 외부 침략의 위협에서 인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막강한 세속의 신 같은 인간을 넘어서는 존재이므로 무제한적인 권능을 가진다. 즉 전제군주의 탄생과 함께 국가의 폭력이 합법적인 절차로 들어갔다. 그 근거는 모두가 두려워하는 권력이 없으면 인간은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없다는 전제를 기초로 하고 있다. 이는 다수가 동의하는 사실로 공공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효율성을 추구하고 이 때 절차적인 질서가 필요하고 그 질서를 지키기 위한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소말리아와 시리아를 예로 들며 정당화하고 있다.
작가는 독재의 정당성이 독재자에게서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인간이 느끼는 가장 강력한 감정인 두려움 즉, 무질서와 범죄 또는 외부의 침략에 대한 공포감에 따라 이성을 마비시키는 것에 비롯한 정치적 광풍에서 비롯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국가관이 전체주의로 흐르는 것을 방지하여 지난 날 겪었던 비극을 되풀이 말자는 뜻으로 풀이된다. 작가가 겪었던 과거 한국사에서 국가는 폭력을 합법이라는 이름 아래 한계 두지 않고 사용한 말 그대로 세속의 광(狂)신이었다. 사회 내부의 무질서와 범죄, 그리고 외부 침략의 위협에서 인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다른 모든 가치를 희생시킨 지배자이자 권력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이런 국가관이 필요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일부 존재한다. 이들은 자유, 인권, 노동권, 평등권의 가치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지만 국방과 치안을 위해서는 일정 수준으로 시민의 기본권을 제약할 수 있거나 심지어 반드시 제약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이기 때문이다.
3. 공공재 공급자
국가주의 국가관에서는 국가가 개인에 우선하였지만 여기서 소개되는 국가관은 그 반대로 개인은 국가에 우선한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국가는 사회계약을 통해 성립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서는 전제군주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즉, 합법적 폭력의 정당성을 제한한다. 왜냐하면 사회계약으로 어느 한 사람이나 추상적인 공동체가 아닌 사회의 다수파에게 권력을 부여하기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법치주의가 확립되는데 법치주의란 국민에게 공포되어 널리 알려지고 항구적으로 확립된 법률에 의거하여 통치하고 분쟁이 발생하면 공평하고 정직한 재판관들이 법률에 따라 재판하는 것이다. ‘주권재민’과 ‘법치주의’ 이 두 가지가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확립하는 두 기둥이다. 이 때 유의해야 할 점이 법치주의는 통치 받는 자가 아니라 통치하는 자를 구속한다는 점이다. 권력자가 선한 의도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헌법과 법률이 그에게 위임한 권한의 범위를 넘어선 의도는 실현되면 안 된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그는 나라의 부는 왕실의 재산이 아닌 국민 전체의 부를 의미하므로 국민 전체가 생산하고 소비하는 양이 많을수록 부유한 국가라고 한다. 이기심을 충족하려는 개인이 스스로 자발적으로 계약하고 거래하고 교환하도록 놔둬서 자신의 노동생산물이 최대가치를 갖게 한다면 사회 연간수입이 자연스럽게 최대가치를 가진다. 중요한 건 애국심이 아닌 자신의 이익 추구를 통해 사회의 이익을 증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 전체에 큰 이익을 주지만 시장에서 공급자가 나타나지 않는 사업과 기구가 있다. 그것은 바로 오늘날 경제학자들이 공공재라고 하는 것이다. 이는 외부효과로 설명되는데 외부효과란, 어떤 사람의 행위가 다른 이에게 이익 또는 손실을 주지만 시장거래나 계약을 통해 보상을 주고받을 수 없는 경우 혹은 이론적으로 보상을 주고 받을 수 있다고 하나 기술적으로 어렵거나 많은 비용이 들어서 실행하기 어려운 경우를 말한다. 이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이 늘 통하지는 않았는데 1930년대 세계대공황을 통해 증명되었다.
루소는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빼앗을 경우 사회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국가의 해체, 혁명의 가능성을 사회계약론이 끌어들인 것이다. 법치주의 위반 시 인민에게 정부를 무너뜨릴 권리가 있음을 분명히 해서 국가와 정부의 분리를 확실히 하였다. 밀은 정당한 권력이 법률을 통해서 제약하는 경우에도 공동사회 또는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는 범위를 제한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였다. 그 이유는 어떤 경우에도 침해 받을 수 없는 자유의 영역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들을 자유주의 국가론자로 한데 묶을 수 있는데 이 이론은 ‘시장경제’와 ‘대의민주주의’를 경제적 · 정치적 기본 질서로 택한 모든 국가에서 지배적인 이론이다. 이 이론은 대체로 여당이었던 정당에서는 주도권을 잡지 못했지만 그에 대적할만한 큰 야당에서는 견고한 다수파를 형성하고 있다.
4. 계급지배의 도구
여기서는 주로 마르크스의 이론을 다룬다. 그의 이론은 강의에서도 다뤄서 알고 있지만 간단하게 소개하면 사회는 항상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나뉘어지며 이러한 계급의 구분은 생산 수단의 소유여부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계급 간의 이익은 제로섬게임이므로 계급갈등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 때 국가는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계급지배의 도구이며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로써 알 수 있는 점은 마르크스는 국가의 자율성을 부정함으로써 악으로 규정했다는 사실이다.
5. 국가의 도덕적 이상은 무엇인가
작가는 진보정치를 “국가로 하여금 선을 행하게 하려는 정치활동”이라고 규정함으로써 그 선이 무엇인가에 대해 조명한다. 이 때 국가가 악을 저지를 수 있음을 언급하면서 그 원인을 국가 또는 집단을 지배하는 것은 집단적 감정과 충동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견해를 가진 인물이 바로 미국 기독교 신학자 니버이다. 그는 두 번의 세계대전을 보면서 개인으로서 사람은 서로간의 정의를 확립해야 한다는 사실을 믿는데 반해 집단으로서의 개인들은 힘이 명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극단적 사례로 국가보안법이고 국민이 북한을 이롭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면 대한민국에 해를 끼치지 않아도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만약 이를 부정할 수 없으면 국가라는 가장 큰 공동체에 대해서는 개인과는 다른 도덕적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이 때 도덕적 기준 즉, 사회에 요구할 수 있는 최고의 도덕적 이상을 니버가 제시하고 작가가 동의한 ‘정의’에 따라야 한다.
작가가 동의한 국가에 대한 정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 개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가 각자에게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이라 한다. 그러면 어떻게 그 정의를 실현할 것인가에 의문이 생기는데 이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 어떤 철학자의 위대한 저서보다 먼저 헌법을 읽는 게 유리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헌법에 명시된 권력배분의 원리는 경쟁이라고 소개하며 누가 더 그 권력자로 인정받느냐에 따라 달려있다고 한다. 권력의 분배는 현재 이 이상 정의로운 방법을 찾기 힘든데 소득과 부의 분배는 정의롭게 이뤄지지 않은 측면이 존재한다. 그 이유는 헌법이 규정한 의무를 국가가 실제로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와 홍익대학교 노동자들의 사례를 통해서 이를 알 수 있다. 자유주의 관점에서 국가는 여기에 개입할 필요가 없지만 같은 일을 했는데도 급여와 근로조건에서 현저히 차이가 나는 것은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다루는 정의 원칙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결론은 정의를 훼손한다. 국가의 목적은 정의를 세우는 것이기에 목적론적 관점에서 이는 크게 문제가 된다.
II. 국가란 무엇인가_자기 소견
군부정권으로 해방된 때가 그들이 통치할 때 보다 왜 더 삶이 비참한가. 힘의 논리가 꼭 공동체 구성원에게 적용되어 그들을 ‘다스려야’ 삶의 질이 나아질 수 밖에 없는지 현재 21세기를 살아가는 시민들이 고민해야 할 논제인 것 같다. 과거는 정복과 침략의 역사여서 힘의 논리가 용인되었다고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떠하였는가라고 물으면 테러와 전쟁이란 비극적 결과를 초래하였고 결국 자기파괴의 선까지 다가왔다. 즉 힘의 논리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그만둬야 한다. 국가의 합법적 폭력이 용인되는 선 혹은 그 용인 자체에 의구심을 품고 그 대안을 고민해 볼 수 있는 적절한 타이밍이기에 우리는 최선을 다해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또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만일 독재정권이 무능하지 않았다면 그 독재는 정당화될 수 있는지 여부이다. 소말리아와 시리아는 독재정권의 무능으로 인한 내전이 발생하였고 그 후에 국가권력을 제대로 세우지 못해 그러한 참사가 발생하였다. 그들에겐 국가의 합법적 폭력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근거가 있지만 만일 독재정권이 무능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예를 들어 우리나라 군부독재의 시작이었던 박정희 정권이 국가상태를 카오스로 규정하고 군부정권을 수립하여 독재를 통해 경제발전을 이룩하였다면 그의 독재는 정당화할 수 있는지는 아직도 사람들에게 해답을 쉽게 내릴 수 없는 영역이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는 아직도 보수 측의 국가주의 국가관과 이에 대해 반박하는 진보 측의 국가관이 대립하여 그 쟁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이 더 강한지 이미 알고 있다. 폭력과 비폭력의 길 중 어느 것이 역사에 남아 강한 자로 기록되는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저자의 목적론적 국가관에는 크게 동감하는 바이다. 국가는 존재 목적으로 정의 실현을 삼아야 하고 그를 향해 늘 추구하여 늘 새로우면서 효과적인 정의를 써 내려가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를 위해 국가라는 집단의 구성원인 시민들의 강한 진보 정신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꼭 이 진보가 정치적일 필요는 없다. 나이가 차서 더 이상 이룰 힘이 없을 때까지 도전하는 정신이 진보(progress)인 것이다. 자신이 소망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도전하는 정신을 힘이 다하는 데까지 붙잡고 있는다면 ‘where there is a will, there is a way’ 의지가 있는 곳에 길이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개개인의 정의에 대한 열망이 강해야 할 것이다. 독자로서 작가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시민에 대한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고 오히려 건강에 해를 가할 뿐이므로 자중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전하고 싶다. 시민들은 그렇게 약하지 않으며 본인의 책이 베스트셀러일 정도로 관심이 막중하니 충분히 작가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