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뢰의 부재 : 행복하지 않은 사회, 소통하지 않는 사회
대한민국 부르주아를 떠올리면 정치적 이념에 따라 두 가지 다른 결을 떠올릴 수 있다. 하나는 자신의 부 축적에 대해 정당하다고 합리화하는 우파 계열이고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 수혜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경제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실천하려는 좌파 계열이다. 믿을 수 없게도 이것은 극단적인 이분법이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 상 제8조 1항「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 법 조항에서 여러 결의 정치적 이념이 통용될 수 있음을 명시하였으나 실상은 양당 패권주의에 가깝다. 보수와 진보로 나뉘는 거대 양당은 꽤 오랜 시간 동안 대한민국 정치사를 쥐락펴락하며 많은 정치적 갈등을 야기하였고 그와 함께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성장 동력 지표는 회복 불가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대한민국 잠재성장률은 꾸준히 하락하여 2040년대에 0%대를 바라본다. 2000년대 초반 5% 안팎에서 2010년대 초반 3%대, 2016∼2020년 2% 중반을 거쳐, 현재 2%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총 요소생산성(2.1% p→0.7% p)과 자본 투입(2.2% p → 1.1% p), 노동 투입(0.7% p → 0.2% p) 등 모든 구성 요소의 기여도가 축소됐다. 현재 추세가 지속된다고 가정할 경우, 잠재성장률은 △2025∼2029년 연평균 1.8% △2030∼2034년 1.3% △2035∼2039년 1.1% △2040∼2044년 0.7% △2045∼2049년 0.6%로 예측됐다. 장기적인 잠재성장률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은 인구 감소다. 고령화·저출생 영향으로 생산가능인구(15~64살)가 감소해 2030년대에는 노동 투입의 성장 기여도가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것으로 예측됐다. 1)
대한민국 정치사가 미래 성장을 저해하는 유일한 원인은 아니겠지만 그들의 정치 논리가 과연 미래 지향적인 해결책이었는지 궁여지책에 불과한 포퓰리즘 수단이었는지는 결론적으로 명확하다. 한국교육개발원은 24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37개국 학생들의 인문교양 수준을 분석한 ‘중등학교 인문교양 수준의 국제 비교 결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연구 결과, 한국 학생들은 학업성취도에 있어 수학 2위, 과학 2위, 국어(읽기) 3위로 우수했다. 그러나 ‘타자와의 관계’ 항목에서 관계 형성 영역을 보면, 교우 관계가 36개국 중 36위로 가장 낮았다. '주체적 자아’ 항목도 대체로 낮았고 자아정체성 영역에서 주체성은 20위, 독립성은 2위, 자주성은 33위로 나타났다. 삶의 향유 영역에서 일상생활은 27위, 여가생활 36위, 진로 탐색 29위로 대부분 최하위권이었다. 2) 많은 정치인들이 경제적 자유 혹은 민주화를 제창했지만 실상은 계급을 유지하기 위한 학벌주의 팽배, 사교육 쏠림 현상 그리고 모두가 외면하고 있는 미래 세대의 전멸이 코 앞이다. 대한우울자살예방학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살이 많은 나라는 아이를 낳지 않는다.' 이는 수치가 증명한다. 출생과 직접 관련 있는 10~30대의 자살률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다. 2017~2021년 10대는 4.7명에서 7.1명으로, 20대는 16.4명에서 23.5명으로, 30대는 24.5명에서 27.3명으로 늘었다. 30대 이하 사망 원인 1위가 바로 자살이다. 이들 세대에서는 사망자 10명 중 4명이 자살자다. 통계청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10~30대의 주요 자살 충동 원인은 우울감이다. 10대에서 우울감(34.2%) 못지않은 요인이 성적과 진학 문제(30.8%)다. 20대에서 우울감(36.8%) 다음의 요인은 직장 문제(22.9%)다. 30대에서는 우울감, 경제적 어려움, 직장 문제 순이다. 3)
자본주의 모태를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언급된 보이지 않는 손, 즉 , 시장경제에서 개인의 이기적인 행동이 사회 전체의 공익을 증진시킨다는 이론에서 떠올리기도 하고 영국의 산업혁명에서 떠올리기도 한다. 그리나 무분별한 개발과 착취는 인권문제를 대두하였다. 대한민국 경제는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엄청난 도약을 이루었다. 천연자원 개발이라는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지리적 요건은 하향식 의사결정에 의해 노동 인력의 인텔리화를 지향하며 산업 고도 성장을 급속도로 추진하였다. 그렇지만 산업혁명의 어두운 이면인 영국 산업혁명 당시 경제 최약층 아동 노동 인권 문제를 폭로한 것처럼 무리한 착취와 탄압은 노동권과 학생 인권 등 여러 인권 문제를 야기하였고 수많은 민주 항쟁들을 이끌어내었다. 이로써 민주화 진영이 대거 정치에 합류하며 거대 양당 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하였고 그들은 빠르게 자리 잡으며 양당 패권의 주요 축이 되었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이자 정치평론가인 강준만의 저서 『강남 좌파 :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에서 우파, 좌파 정치인 할 것 없이 모두 비판하였지만 그보다 더 눈여겨봐야 할 것은 그들의 공통분모, 위선이었다. 위선(영어: hypocrisy) 은 미덕이나 선을 표면적, 외관상으로 보여주나 실제적, 내면적 모습은 그렇지 못한 것으로 저자는 그들의 위선은 가방끈 특권 의식에 따른 진정한 소통의 결여 때문이라고 말한다.
존 롤스 저서인 『정의론』에서는 경제 성장에 대한 수혜 분배에 대한 공정성에 기초한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기본적인 경제적 자유를 제창하고 있다. 이를 위한 선제 요건은 과감하게 무지의 베일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회 계약에 대한 신뢰이다. 그리고 그 신뢰에 대해 미래 세대가 느끼는 바는 명확하다. 여러 경제, 사회적 위기를 양산하는 제도권에 대한 불신, 경제 자유화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써 학벌주의에 대한 피로감,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로 만들어진 일방적 부의 쏠림에 대한 열등감 등 복합적인 경제, 사회적 요인들은 누구보다 수동적인 세대로 만들고 있다. 심지어 이미 저출생과 인구 고령화로 진행되는 생산 가능 인구의 소멸 현상은 다수결의 원리라는 민주주의 원칙마저 미래 세대보다 중장년층 등 기득권 세대 위주의 사회로 재구성하고 있다. 이것은 미래 세대에 대한 충분한 의견을 반영하지 못할 뿐 아니라 기득권 세대가 세운 정치 세력이 경제적 약자를 위한 배려를 추구하지만 그럼에도 과거에 머물고 있고 위선적인 포퓰리즘으로 퇴색하게 된다. 모두에게 열려 있지 않은 경제 성장은 경제적 자유를 억압하며 모두에게 공정하지 않은 분배 정책은 다양한 권리를 묵인하기 때문이다. 내놓는 정책들은 그저 그들을 위한 정치적 진영 논리일 뿐 경제 지표를 회복할 수 있는 실질적인 혜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원할 마지막 투수는 무엇일까.
우선 신뢰를 이해하기 위해 해당 구성 요소를 분석한다. 신뢰 이론(박통희・원숙연, 2000; 원숙연・박통희, 2000)에 따르면 신뢰에 대한 다양한 개념 규정을 관통하는 공통된 요소가 있다. 첫째, 위험의 감수(risk-taking)이다. 위험이란 손실이 이득을 초과할 가능성으로 인지한 손실에 대한 가능성이다. 그러므로 신뢰는 신뢰 대상이 기대대로 행위하지 않을 배신의 가능성을 전제한다. 둘째는 낙관적 기대이다. 불확실하고 위험한 상황에서 누군가를 신뢰한다는 것은 신뢰자가 두려워하는 상황보다는 원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리라는 기대에 근거해 있다. 마지막으로 자발성으로 외압에 의해 강제된 신뢰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배신의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서 신뢰 대상에게 신뢰자의 미래의 이익을 맡기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종합할 때 신뢰는 다음과 같이 개념 정리할 수 있다. “불확실성과 위험에도 불구하고 신뢰대상이 신뢰자의 이해에 부합하도록 행동하리라는 주관적 기대와 그러한 기대를 근거로 신뢰대상의 행동에 신뢰자 자신(신뢰자의 이해)을 맡기려는 자발적 의지” 4) 이 개념을 앞서 말한 사회 게약 혹은 제도권이라는 신뢰 대상과 사회 구성원이라는 신뢰자에 대입할 수 있다. 각 3요소를 알맞게 대입하면 다음과 같은 정의가 산출된다. '사회 제도에 대한 감시 및 관리가 어렵고 불확실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현 제도권이 사회 구성원의 이해에 부합하여 작동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믿음'이 그 정의이다. 그러나 미래 전망 지표들은 위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모두 암울하다.
무너져 버린 신뢰 회복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보스 2025 포럼의 신뢰 재정립(Rebuilding trust) 의제에서 제시한다. "지능형 시대"의 기술을 활용해 우리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를 해결하려면 국제적 차원부터 지역적 차원까지 모든 수준에서의 협력이 필요하다. 각 과제는 연결되어 있기에 혁신적인 해결책, 충분한 투자, 그리고 협력적인 사고를 요한다. 5) 이 요소들을 충족하기 위해 사회 내부 구성원은 서로 협력하고 위대한 담론을 마련하여 각계각층의 갈등을 봉합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에 대한 모든 역량을 긍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더 나아가 미래 세대가 불합리한 특권 의식이 아닌 합당한 도덕적 사명을 지닌 자유 의지를 지닌 주체로서 행동하도록 대한민국 내외에서 협력해야 한다. 이에 더해 다보스 포럼에서 다룬 보다 세부 지침을 참고할 수 있다. 첫째, 신뢰를 위해 겸손해야 한다. 둘째, 신뢰에 대한 단계적 도입과 기본적인 요건 충족을 위한 지원이다. 셋째, 신뢰 기준을 준수하고 위선에 대한 경계이다. 넷째, 가치 증진이 부당한 해를 끼치지 않도록 상충 관계를 신중하게 고려하는 것이다. 다섯째, 고유의 역사적 가치를 다뤄야 한다. 마지막으로, 특히 합리적으로 준수할 수 있는 규정을 개발해야 한다. 5) 위 의제에서 다룬 주요 지침들은 선구적이며 실행 가능할 뿐 아니라 보편타당한 원칙이다. 성장 관련 지표가 한 번에 회복할 수 없을지라도 미래 세대를 위한 논의의 여러 갈래의 확장을 지속적으로 도모해야 한다. 아니면 거창한 미래에 대한 논의 확장은 못하더라도 사회 문제에 대해 보다 깨어있는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는 있다.
[참고 자료]
1) “한국 잠재성장률 앞으로 5년 평균 1.8%…2040년대 '0%대' ...
2) 한국 중학생, OECD 내 교우관계 꼴찌…학업성취는 상위권
4) 정부신뢰의 영향요인: 청와대신뢰의 매개효과를 중심으로 한 탐색적 접근
5) Trade and Values: Navigating the Intersection of Policy and Princip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