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스템의 역설 : 위대한 민주주의가 위대한 시민을 창출하는가?
시작이 반이다. 민주주의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 태동부터 수많은 갈등과 상처, 분노와 좌절, 실패와 갖은 고난을 겪었지만 우리는 이미 거대한 흐름에 합류하였고 그 추세는 대한민국 단일 국가 차원을 넘어서 국제적인 차원으로 뻗쳐나가고 있다. 앞서 제도권의 정립과 그에 대한 신뢰가 선제가 된 상황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다시 말해서 민주주의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국면에서 겪는 시행착오에 대해 우리가 맞설 각오가 되어있다면 우리는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하는가. 이를 위해서는 우리는 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의 칼럼 「시스템의 역설」을 참고하려 한다. 그는 사학 분야에서 인정받는 전문가로서 한 가지 식견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시스템(제도, 규정)은 그 시효 순간부터 변질하기 시작한다”이다. 즉 시스템이라는 엔진에 기름을 주입하고 작동하는 즉시 그 엔진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물론 변화는 중요하다. 외부적인 요인의 충격을 흡수하며 변화할 수 있고 내부적인 요인의 마찰을 견뎌가며 변화할 수 있다. 게다가 그 변화가 미치는 영향과 그로 인한 양상은 천태만상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러한 변화를 분석하고 그 양상에 적응하기 급급하여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사회는 완전하지 않고 변화한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떠한가. 사람 자체는 불완전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주어진 권리는 완전하다. 그 권리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주어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은 완전한 권리를 갖는다. 샤르트르가 말한 대로 그의 존재가 그의 본질에 앞서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태도 첫 번째, 모든 사람은 민주주의 주체이다.
태도 두 번째, 민주주의의 모든 가치는 정의롭다. 민주주의 시민이다 아니다를 물어보면 대한민국의 대다수 사람들은 너무나 당연한 질문을 왜 하는지 의아해할 정도로 어이없어하며 당당하게 본인은 민주주의 시민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정의로움에 대해 묻는다면 어떨까. 현 시민사회의 암담한 통계들과 뉴스 그리고 피곤한 논쟁까지 바라보며 그 가치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사람의 비율이 꽤 될 것이다. 그것은 혼동이다. 시스템은 원래 완전하지 않다. 그렇지만 민주주의 가치는 절대무결한 가치이다. 현실의 다양한 대안이 있지만 그 대안을 꿈꾸거나 소망하거나 실행하려는 시민이 얼마나 될까.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서 그런 것으로 치부히기에는 말이 되지 않는다. 그리스 시대에 먹는 문제가 이미 충분히 해결되고도 남았던 철학자들은 왜 쓸데없이 그들의 이상에 대해 논했을까. 자본의 논리가, 대중의 잣대가, 진영의 프로파간다가 우리의 이상을 파괴했다. 가치에 대해 논하는 것은 유치하고 현실적이지 않으며 당장 생존을 해결할 수 없는 철없는 샌님의 망상으로 치부한다. 하지만 힘의 논리로만 대화가 된다면, 승리의 역사로만 써내려져 간다면, 이기적인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그것은 사람이 사는 세상이 아닌 게임 속 세상일 뿐이다. 게임에서는 누구도 죽어가는 상대편을 살려야 한다고 외치지 않는다. 게임에서는 누구도 실력이 부족한 팀원을 합류하려 하지 않는다. 게임에서는 어느 누구도 꼴찌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지 않는다. 대한민국 사회는 민주주의 가치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가. 다시 재고해야 할 때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함양해야 할 자세는 정의로운 시민이 민주주의 가치를 계승한다는 것이다. 즉 주체적 시민의식을 갖고 민주주의의 이상에 대해 늘 고뇌하며, 반드시 지녀야 할 태도로 그 과정 또한 정의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민주주의 시민이며 그 가치는 숭고하다. 그러나 다음 세대로 이어나가는 작업은 그 어느 과정보다 고결해야 한다. 다시 말해 제도에 의해 영향을 받는 시민은 그 틀에 잠식당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민주시민이어야 하며, 더 나아가 제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는 시민이라면 그 스스로도 가치를 입증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은 혼자만의 자기 합리화가 아닌 민주사회 전체의 검증을 토대로 한 과학적인 방식을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런 검증된 시민들에게 제도를 변화할 권한을 위임하되 감시와 견제를 통해 올바른 제도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민주사회의 올바른 덕목이 될 것이다. 미래사회가 위기를 맞은 것은 다름 아닌 민주주의 가치의 우선순위가 한참이나 뒤로 밀렸기 때문이다. 그 지표는 교육 현장이다. 성장에 급급해 자본의 논리만을 내세워 사람이 누려야 할 대부분의 가치를 매몰한다면 그래도 승리할 수 있다. 독식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지 못할 것이다. 대의가 없는 명분은 사람을 설득할 수 없다. 설득할 수 없는 논리로 힘을 가진 자는 누구도 진심으로 그를 위대하고 여기지 않을뿐더러 위대한 제도를 계승할 수 없다. 미래가 사라진 것 같아 비관적으로 바라볼 수는 있어도 지나온 과거마저 비관적으로 여길 수는 없다. 우리가 이 제도를 계승한 것은 결국 파워 게임에 의해 패배한 것이 아닌 주체적으로 설득당하여 받아들인 것이기 때문이다. 제도가 문제라면 제도를, 사람이 문제라면 사람을 고치면 된다. 그러나 흐름이 문제라고 거스를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 그 힘은 어디에서 기원할까. 믿을 수 없다면 우리의 역사를 다시 한번 읽어보자. 위대한 민주주의가 위대한 시민을 창출하는가? 그게 아니라면 위대한 시민은 어디서 나오는가. 그 해답은 시스템이 아닌 우리 자신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