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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인 Jun 19. 2023

미얀마의 지난한 봄에 부쳐

2021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다룬 꼬 빠욱의 <여명이 비추는 길>을 보고



이 얼굴을 아는가? 혹은 이 가방을 아는가? 이 가방의 주인이라도?



이 가방은 영국 출신이지만 파리지앵 스타일 아이콘으로 더 유명한 제인 버킨의 것이고, (2011년 동일본대지진피해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이베이 경매에 붙여져 지금은 제인 버킨의 소유가 아니다.) 전세계에서 제일 비싼 명품 중 하나인 에르메스 사의 버킨백이며, 가방 상단에 붙은 얼굴의 주인은 1988년도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주역이었던 아웅 산 수 치다.





제인 버킨은 버킨백을 선물받은 1984년 이후로 가방을 자유롭게 꾸몄는데, 구슬과 패브릭으로 스트랩을 달기도 하고 지지하는 정치적 메시지나 이미지를 오려다 겉면에 붙이기도 했다. 슬로건은 '티베트에 자유를 허하라!'이기도 했고 현지의 자연재해 피해를 위로하기 위한 일장기일 때도 있었으나 제일 유명한 버킨의 버킨백 이미지는 그녀가 버마의 민주화운동에 지지를 보내고 그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여성의 불합리한 가택 연금을 널리 알려고 부착한 자그마한 초상일 것이다. 오늘은 수 치의 78번째 생일이다. 수 치는 미얀마의 수도 네피도의 교도소 독방에서 생일을 맞는다. 1989년부터 2010년까지의 기나긴 가택 연금에 이어 다시 갇히는 처지가 되었으나, 아웅 산 수 치는 오랜 세월 동안 미얀마의 민주화를 염원하는 이들에겐 변함없는 희망의 등불이다. 개중 2021년 2월 2일에 처음 점화된 등불은 오늘로 867일째 타오르고 있다.


패션 아이콘의 패션 속 아이콘으로 패션 아이콘화된 아웅 산 수 치는 누구인가?


아웅 산 수치는 미얀마의 정신적 지주이자 91년도 노벨평화상 수상자다. 버마가 영국의 지배를 받던 시절, 수 치의 부친인 아웅 산 장군은 영국에 맞서, 그 뒤에는 일본에 맞서 독립투쟁을 이끌었다. 그는 버마의 많은 소수민족들을 포용하는 데도 열린 자세를 보여 독립국에서 민족 통합의 구심점이 될 지도자로 기대받았다. 불행히도 그 역할을 해주기 전에 일찍이 암살당했지만 말이다. 수 치는 영국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영국인과 결혼하여 주부로 살다가, 1988년 모친의 병간호를 계기로 건너간 고향에서 민주화운동의 열기에 휩싸이게 된다. 아웅 산 장군의 외동딸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그녀는 순식간에 민주화운동의 아이콘으로 부각되지만,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창당하여 진정한 다당제 민주화 국가로 나아가고자 한 실행력을 보면 오래된 외국 생활에도 불구하고 수 치에게는 분명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자리매김해 있었던 것 같다. 당시의 버마는(불행히도 오늘날의 미얀마라고 별로 다르지도 않지만) 헌법부터 시작해 권력 구조 자체가 철저하게 군부 위주로 조직되어 있어 평화롭게 민주국가로 나아가기가 불가능했고, 아웅 산 수 치 또한 15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군부에 의해 가택 연금을 당하게 된다. 예테보리에서의 노벨상 수상도, 옥스포드에서의 남편의 임종도 직접 자리하지 못한 채로.


애꿎은 운명은 수 치에게 기껏 돌려준 자유를 다시 앗아갔다. 2021년 2월 2일, 이번에도 주체는 군부였다. 2015년 자유총선에서도 NLD는 크게 득세했다. 군부와 합의를 이뤄 조심조심 나아가는 문민정부가 되는가 싶었던 미얀마는 군부 독재 시절 제정된 악의적이고 편파적인 헌법으로 인해 난항을 겪어야 했다. 첫째, 외국인 배우자•자녀를 두었다는 이유로 국민들이 염원하는 후보인 아웅 산 수 치를 대통령으로 세울 수 없었고, 둘째, 25%의 의석 수를 반드시 군부에 할당해야 했으므로 헌법 자체를 민주화시킬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에 정부는 개헌 요청이라는 이름의 권력 개편을 요구했고, 군부는 아예 판을 뒤엎는 걸로 응수해온 것이다. 군부는 NLD가 82%나 되는 득표율을 보였던 자유총선을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면서 수 치를 비롯한 정부의 실세들을 즉각 무력화시켰다. 그럴 만한 힘과 권력과 정당성이 군부에게는 있었다, 말도 안 되지만! 지난 세월 익히 겪어왔던 군부의 무력 통제에 미얀마 시민들과 문화예술인들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여명이 비추는 길>을 연출한 꼬 빠욱 감독도 그중 한 사람이다.



악역 연기와 코미디영화 연출로 명성을 얻은 꼬 빠욱은 자유로운 영혼으로 명성과 재능을 즐기며 살고 있다가, 군부 쿠데타 소식을 듣고 군부 독재 반대시위에 영화인 동료들과 함께 앞장선다. 수배령이 떨어진 뒤에는 집을 떠나 위태로운 도피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일상을 아이폰 동영상에 담아낸다. 제대로 된 영화카메라와 편집 프로그램을 거치지 않은 까닭에 다소 조악하게 보이는 동영상이 모여 만들어진 이 <여명이 비추는 길>은 결코 어둡거나 울적한 분위기는 아니다. 꼬 빠욱 감독이 다소 관종끼가 있는 밝은 사람인데다 요리와 미식에 일가견이 있는지라, 기본적으로 잘 떠들고 (도망자치고는) 참으로 호사스럽게 잘 차려먹는다! 모든 혁명이나 정치적 도피가 고행이거나 엄숙주의에 찌들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하게 되는 부분이다.


영화는 크게 2부 구성으로 나눌 수 있다. 1부는 꼬 빠욱 감독의 신체가 사랑하는 가족들, 익숙했던 문명 세계와 찢어져 단독자로서, 도망자로서, 투쟁자로서 거듭나는 과정으로서의 도피 브이로그다. 2부는 감독이 무사히 혁명 동지들이 모인 해방구로 건너간 뒤 미얀마 시민방위군, 카렌 소수민족해방군 등과 함께 지내며 그 자신을 공동체의 일부로, 투사, 전사로 재인식하는 모습을 담아낸다. 그리고 오프닝 시퀀스에서 나열된 쿠데타 이전의 틱톡 영상들이 있다. 틱톡 영상들에서 여장을 한 채 정치 풍자 상황극을 벌이며 익살을 떨던 꼬 빠욱의 신체가 거듭된 도피와 코로나로 거의 죽었다 살아나는 과정을 거치며 '다시 태어나는' 광경은 흥미롭다. 한 사람의 몸이 보이지 않는 듯 눈에 보이는 탈피를 거치는 게 가장 혁신적인 기술 매체인 스마트폰을 빌어 가장 날것의 모양새(방치되어 자라는 염소수염과 배불뚝이 상체)로 전해진다고나 할까.


1부의 브이로그는 일종의 변태일기變態日記인 셈이다. 그랬던 영화가 2부에 가서는 갈수록 프로파간다 필름의 냄새가 짙어진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군부 독재라는 말과 미얀마 시민방위군에 관심을 보내달라는 부탁을 카메라에 대고 직접 말하기도 하고, 꼬 빠욱 본인도 (전투나 훈련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하여도 뜻을 같이하여 투쟁한다는 점에서는) 군인이라는 생각을 하는지 군복을 입고 다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몇 번의 상징적인 죽음을 이겨내고 다시 태어난 신체가 (군부에 맞서기 위한 반폭력으로서의 무력투쟁이라고는 하나) 다시 군인의 신체로 탈바꿈해 총을 긍정한다는 역설이 기묘하게 느껴진다. 1부에서 군부의 수장인 민 아웅 훌라잉을 쏴 버리고, 죽여버리겠다고 단언하는 어린 아들의 과격한 언어에 잠시간 침묵하는 꼬 빠욱 감독의 음성 녹음이 심금을 울렸던 만큼. 그 잠깐의 말 없음 혹은 말 잃음은, 어린시절부터 군의 정치 개입과 무력 탄압을 경험하면서 굳이 학습하지 않아도 되었을 폭력을 절로 대물림하게 되는 어린 신체, 후세대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니었던가? 2부에서 채 10대를 벗어나지 못한 듯 어린 티가 역력한 방위군의 훈련을 독려하며 직접 싼 도시락을 나눠주는 꼬 빠욱은 조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한 가지 더, 꼬 빠욱은 이 모든 문제를 '군부 독재 때문'이라는 단순한 진단으로 일축하고 있다. 그것도 카메라에 대고 직접 말하기라는, 영화연출자로서는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미얀마 사회에 왜 군부가 등장하게 되었으며 군부와 일반 시민 사회의 융합이나 통합이 어째서 불가능하다고 보는지, 아웅 산 수 치가 미얀마 민주 사회에서 가지는 의의와 그 경우에 가질 수도 있는 맹점은 무엇인지(남한의 박정희 개발독재 신화가 박근혜라는 컬트로 번진 걸 생각해보라!), 지난 5년간의 미얀마 문민정부의 민주주의가 어떠했으며 로힝야족 숙청에 대해서 아웅 산 수 치가 뒤집어 쓴 오명의 진실은 무엇인지(진실을 낱낱이 알 수 없다고는 해도, 적어도 미얀마인 중산층으로서 감독은 국제 사회의 그 강도 높은 비판에 무어라 말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도, 고찰하지도 않는다. 말하자면 <여명이 비추는 길>은 한 개인의 미시적인 몸의 변화, 도피 과정을 통해 그 자신이 원치 않는 변화를 강제로 거쳐야 했던 몸의 역사를 현재적으로 제시하는 만큼은 미얀마라는 거시적인 큰 신체의 고질적인 종양덩어리에 대해서는 잘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 아무리 미얀마군이 학살과 약탈을 서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군부 치하의 군대와 시민방위군을 단순한 이항대립구도로만 바라보고 있는 점 또한 영화연출자로서 담지해야 할 세계의 복잡성을 생각하면 아쉬운 부분이며, 그 자신을 (단독자-고행자에서) 공동체의 일원-군인으로 정체화하는 내내 깔려 있는 연출자의 태도에는 (그의 헌신과 고난을 생각했을 때, 그리고 최전선에서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현지인을 두고 감히 이런 게 옳다 저런 게 옳다 평가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도취 심리 또한 가미되어 있다고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이 거칠게 만들어진 필름이 더욱 흥미롭기도 한 걸 테지만 말이다. 한편으로는 80년대 들어 역사적으로 중대한 갈림길에 설 때마다 (운 좋게도)(그리고 물론 시민들과 민주 투사들의 힘으로) 거시적으로 옳은 결정을 함으로써 대의민주주의 국가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대한민국의, 바로 그렇게 수립된 문민정부 시기에 태어나 자란 내 시야의 한계를 실감한다. 그 시절의 기율 권력과 민주화운동, 데모와 체포 등을 체험했던 관객이라면 분명 나와는 다른 시각에서 <여명이 비추는 길>의 투쟁을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친절하고 품위 있는 사람들의 나라로도 유명한 미얀마는 불행히도 남한만큼은 운이 좋지 못했고 그 때문에 지금의 공고한 군부 독재를 타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시민들로서는 가장 어려웠을) 무장 투쟁과 게릴라 작전밖에는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사실 위에서 지적한 지점들은 이 필름만이 가지는 특유의 리듬과 가치를 폄훼할 이유는 될 수 없다. 미얀마에 여전히 싸우는 사람들이 있음을, 가진 걸 버리고서라도 자유로운 미얀마를 위해 끝까지 투쟁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리는 것은 중요한 일이며 꼬 빠욱의 이 영화는 바로 그 목적을 달성해낸다.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그의 직접적인 호소는 곧 미얀마 민주화운동에 식어가는 국제 사회에 울리는 경종에 다름 아니다. 민주 투사로 국제적인 명성이 자자한 노벨상 수상자 아웅 산 수 치가 로힝야 족 학살을 방조한다고 조리돌림했던 때만큼의 절반만이라도 관심을 보여주시면...?




앞서 말했듯이 6월 19일은 아웅 산 수 치의 78번째 생일이고, 오늘 인천 등지에서 수 치의 생일을 기념할 겸 다시 한 번 미얀마에 민주주의가 찾아오기를 기원하며 행진을 벌일 계획이 있다고 들었다, <여명이 비추는 길>을 보게 해 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주관의 "2023 민주주의 극장" [미얀마 군부 쿠데타와 시민투쟁] 게스트로 나온 띤 티 아웅 미얀마군부독재 타도위원회 공동위원장이 그렇게 말했다. 행사는 잘 끝내셨는지 모르겠다. 국제 사회의 주목도가 많이 사그라든 지금,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관심이 필요하고 또 귀하다고 한다. 진행자인 이승원 시사평론가가 센스 있게 후원 계좌를 물어봐주어 그 자리에서 모두가 메모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 우리은행 1005 204 159474 / 예금주 : 미얀마네트워크

(소중한 관심은 때로 금전으로 표현할 수도 있는 법이다!)



이 글을 씀으로써 아웅 산 수 치 여사에게 생일 축하 인사와 힘내라는 응원과, 미얀마에 봄은 반드시 올 것이며 그 뒤 자유로운 여름에 다시 한 번 생일 축하를 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비일상의 상시상태를 겪어가면서도 민주화의 열망을 놓지 않은 모든 미얀마 시민들과 그들의 지난한 봄에 이 글을 바치고 싶다. 그리고 미디어와 영화가 일상과 정치에 미칠 수 있는 힘을 믿는 이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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