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행복한 삶
나는 또래에 비해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고민을 늦게 하는 편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친구들이 고민하던 것들 미래와 진로에 대한 내용을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없다. 성적에 맞춰 어떤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고작이었으며 딱히 취미나 특기, 좋아하는 것들과 직업을 연관 지어 생각하지도 않았다. 하고 싶은 것이 없지는 않았다. 컴퓨터 관련 공부를 하고 싶기도 했고, 미술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기도 했다. 건축에 흥미를 느껴 건축 관련 학과를 꿈꾸기도 했고 좀 더 큰 그림을 그리며 도시 공학과를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깊이 있게 고민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에 관련 검색어를 입력하여 자료를 찾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학원이나 지인의 귀띔이 아니고서는 내가 원하는 정보를 얻는 것도 쉽지 않았다. 진학을 위해 적극적으로 정보를 탐색하고 자신의 능력을 기르는 야무진 사람들을 보면 나의 학창 시절이 참으로 형편없이 느껴지기도 한다.
대학 진학도 고3 때의 담임선생님과 부모님의 조언을 거의 신격화하듯 받아들이기만 했지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밀어붙이지도 않았다. 그저 컴퓨터나 건축 공부가 해보고 싶다고 뒷말을 흐리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선생님과 부모님은 나의 확신 없는 어투에서 그저 한 번 해보고 싶은 마음 밖에 없다는 것을 확신이라도 하신 듯 자신들의 안내를 따르라는 이야기만 거듭했다. 그렇게 나의 입시 원서에 내가 가고 싶었던 대학과 학과의 이름을 써넣지 못했다.
그렇게 진학한 대학에서 고등학생 시절에 진로에 대한 고민을 더 깊이 해보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대학교 공부가 어렵거나 도저히 못하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으나 마음 한편에 쌓여 있던 해보고 싶던 일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하지만 다시 입시 공부를 한다는 것은 가정 형편에 하등 도움이 되지 못하고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매우 불만족스럽다거나 꼭 해야만 하겠다는 간절함이 넘치는 것은 아니어서 그저 가벼운 갈증 정도로만 간직한 채 잊었다.
대학을 졸업할 시기가 다가오면서 취업 준비를 하면서도 직장에서의 승진을 꿈꾸며 이런저런 야무진 계획을 갖고 있던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게 무계획으로 취업을 하게 되었다. 제대로 된 준비를 하지 않으니 입사를 위한 다양한 시험에서 겨우 턱걸이나 되는 성적으로 기준만 충족된 신입이었다. 준비가 덜 된 사람이 일까지 못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할 수 있는 새로운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때론 다양한 방법을 공부하며 일했기에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물론 전적으로 개인적인 생각이기 때문에 이전 동료들이 나의 이야기를 자칫 보게라도 되면 쓴웃음을 지을지도 모르겠다.
보통 대학이나 사회 초년생으로 살면서 인생의 큰 계획을 세우는 것 같다. 생각이 더 빨리 성숙한 사람들 같은 경우 학창 시절에 자신의 삶을 계획한다. 친구들과 미래의 계획을 이야기하노라면 언제나 깜짝 놀라고 만다. 언제까지 자산을 얼마나 가질 것이며 집은 언제 구매하고 빚의 규모는 얼마나 까지 감당할 수 있으며 차를 이때 사면 일정한 기간까지 사용할 계획이고 결혼은 어느 정도의 자산이 모였을 때 할 것인지 줄줄이 이야기한다. 특별히 몇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얘길 듣고 있자니 내 인생 계획을 떠올려본 적도 없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취미 삼아 운동으로 달리기를 하게 되었다. 달리기 연습을 할 때 일정한 거리를 완주하는 방법, 일정한 시간을 달리는 방법 등이 있다. 무작정 달리기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달리기를 운동으로 오래 즐기기 위해서는 목표를 달성하는 기쁨을 느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달리기의 흥미가 떨어져 금세 그만두게 된다. 5km만 달리던 사람이 7km에 도전을 하게 되고 성공했을 때의 기쁨을 느낀다. 점점 달릴 수 있는 거리가 늘어나고 시간이 단축될수록 더 기쁘다. 자신의 능력이 향상되고 성취감을 느낄 때 더 즐겁고 행복하게 달리기를 이어갈 수 있다. full코스인 42.195km를 달리는 것이 최종 목표이며 이를 위해 거리를 늘리고 시간을 단축하려는 노고를 아끼지 않는다.
또래보다 고민이 많이 늦었던 내가 이제 와서 생각해 보건대, 나의 고민은 자산이 얼마이며, 직장에서 어떤 지위에 머물러야 하고, 맺어지는 사람의 조건은 어떤 것 등인지가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내 마음이 불편하지 않게 살아가는 것, 또한 내가 딛고 있는 나의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들이 아니었나 싶다. 내 인생이 실패한 인생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경제적 어려움도 겪어 봤고 나름 굴곡이 있던 삶이었지만 그런 와중에도 지금을 즐기고 행복할 수 있었던 힘은 큰 목표를 향해 달리고 성취감을 느끼는 데서 온 것이 아니라 마음의 평온과 행복을 추구하는 소박한 목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감사의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잠들기 전에 느꼈던 하루의 행복에 감사하는 마음가짐을 잃지 않아야겠다. full코스 마라톤을 완주하지 못하면 또 어떠하랴. 뛸 수 있다는 건강한 몸을 갖고 있다는 자체에 감사를 느끼며 살아가는 즐거움을 크게 느껴보련다. 그래도 완주하고 싶은 욕심은 아직까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