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딜 수 있는 고통의 깊이에 대한 고찰
알람 소리를 듣고 눈을 뜬다. 가까운 거리에 놓인 휴대전화기에 손을 뻗어 알람을 끈다. 여섯 시 삼십 분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잘 떠지지 않는 눈을 손으로 비벼본다. 기지개를 켜는 것조차 잊은 채, 천천히 몸을 돌려 침대 밖으로 다리를 뻗고 바닥을 디디며 상체를 일으킨다. 눈을 감은 상태로 살며시 목을 돌리고 난 후 손은 깍지를 끼고 머리 위로 쭉 뻗는다. 온몸이 잠에서 깨어날 수 있도록 돕는 움직임. 기온이 오르고 포근한 햇살이 감싸면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봄눈처럼 잠에서 깨어나는 일련의 과정이 무의식적으로 이어지며 흐른다. 언제나 그렇듯 탁자 귀퉁이에 놓인 시계를 착용하고 세면대 앞에 서서 같은 방향으로 놓인 면도기를 들고 거울 앞에 선다.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면도기가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방향은 언제나 일정한 느낌이다. 왼쪽 코 아랫부분을 시작으로 인중을 지나 오른쪽으로, 또 입술 아래로 자연스럽게 나아간다. 입 주변의 정리가 끝나고 향하는 곳은 턱. 아래턱 정면과 목으로 넘어가는 부분을 다듬고는 이내 왼 아래턱을 따라 왼쪽 귀 앞까지 부드럽게 움직이고 이어 다시 오른 아래턱을 따라 오른쪽 귀 앞까지 움직이고 나면 거울 속 내 모습은 말끔하다. 칫솔의 위치나 자주 사용하는 연필, 지우개, 휴대전화를 내려놓는 곳까지 나름의 정해진 장소가 있다.
사람들은 규칙과 질서를 스스로 만들고 이에 따라 움직인다. 자신만의 루틴을 만드는 등의 큰 인생의 계획뿐 아니라 옷을 개었을 때 드러나는 부분을 일정하게 맞추는 등의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쓴다. 각자 신경 쓰는 부분이 다르긴 하지만 자신에게 익숙한 상황으로 생활공간을 배치하고 재구성한다. 불편하거나 낭비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이 습관들은 인간이 보수적이라는 주장에 덧붙일 수 있는 근거가 아닐까? 물론 물건을 정리하거나 사용하기 편리한 상태로 관리하는 것, 자신의 생활을 루틴으로 만들어 실행하고 있는 것으로 인간이 보수적이라는 주장은 다소 납득하기 어렵다. 정리를 잘하고 사는 것이 변화나 도전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며 산다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사람이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고 싶어 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안정적인 삶의 일부로 마음의 평온을 이야기하고 싶다. 마음이 평온하지 않은 상태, 다시 얘기하면 마음이 불편한 상태에 놓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어떤 목표를 위해 움직이고자 할 때 마음을 다그치거나 불안하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는 매우 훌륭한 방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마음이 불편한 상태가 가져다주는 스트레스와 이 때문에 영향을 받는 일상의 어긋남에 괴로워하기 마련이다. 마음이 불편한 상태를 고통이라고 한다. 고통은 몸이나 마음이 아프고 괴로운 상태를 지칭한다. 많은 사람들이 신체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고통받고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시험을 앞두고 준비가 덜 되었다고 생각할 때 받는 불안은 고통이다. 가족과 심하게 다투어 느끼는 분노와 실망도 고통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식어 자신을 떠날 때 느끼는 상실감도 고통이다. 수많은 상황에서 발생하는 고통이지만 그 깊이는 천차만별이다. 평온한 삶을 꿈꾸지만 매 순간 찾아오는 고통의 순간들은 우리를 괴롭힌다. 마치 수심을 알 수 없는 크고 작은 고통의 냇물을 수시로 건너며 목적지를 향하는 산책으로 우리의 삶을 비유할 수 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건너던 작은 냇물에서 예기치 못한 깊은 곳에 발을 디디면 놀라고 당황스럽다. 어떤 고통은 그 깊이가 매우 깊어 삶의 의지조차 놓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데, 이렇게 깊은 고통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전쟁으로 엄마를 잃은 아이가 그 공포감을 이기지 못하고 말도 정신도 잃고 살아가는 일화를 바라보며 감당하지 못할 깊이의 고통도 세상에는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우리는 얼마나 깊은 고통까지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 우리 마음의 힘은 어느 정도까지의 고통을 견뎌낼 수 있을지 시험해 보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겪어 온 고통 중에 가장 큰 고통을 떠올리며 그것을 극복해 낸 자신의 용기와 태도도 함께 떠올릴 것이다. 부들부들 떨리던 손과 입술, 그 손의 떨림을 멈추게 하기 위해 잔뜩 힘주던 팔과 앙다문 입, 두근거리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어 뜬 눈으로 지새웠던 기나긴 밤과 몽롱한 정신으로 마주한 여명, 멍한 정신으로 손에 잡히지 않던 많은 일들. 고통의 깊이 그 바닥까지 침잠하며 드는 생각, '어디가 이 고통의 끝인가?'. 애써 피하고 싶었던 고통의 밑바닥을 마주한 후에도 바로 수면으로 오르지 못하고 그곳에 머물게 된다. 주마등처럼 스치는 다양한 기억들을 고통의 밑바닥에 좌악 펼치고 하나하나 되짚어 본다. 고통의 원인, 나의 과오. 그렇게 오랜 시간 관조하다 보면 어느덧 몸에서 느껴지는 부력 같은 것이 있다. 심연으로 들지 못하는 빛이 희미하게나마 자신을 비추는 듯한 느낌. 어쩌면 희망적인 부분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깊이의 고통에 빠져 큰 절망 속에서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살아오면서 나는 마음앓이를 크게 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고통을 주제로 글을 쓸 기회가 없을 것이라 여겼다. 이별은 만남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동전의 양면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들을 다 받아들일 수 있다는 태도로 살아왔다. 하지만 최근에 고통스러운 상황을 겪고는 삶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비록 이 고통의 깊은 골짜기를 아직도 건너고 있는 중이지만 내가 기울일 수 있는 노력으로 다시 빛이 스미는 곳까지 올라보려 한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깊이의 고통은 어디까지일까? 이것도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일까? 이조차 지나가리라는 명언이 귓가에 맴도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