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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준형 Feb 17. 2022

우리가 그들의 4년을 헤아릴 수 있을까

베이징 올림픽, 그 역사의 마지막.

베이징 올림픽이 거의 다 끝나간다.

불과 2주 남짓한 짧은 기간이지만, 올림픽은 평소에 쉽게 마주하지 못했던 선수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팀킴'의 이름으로 평창에서 컬링 신드롬을 일으켰던 대표팀이 평창 올림픽 이후 겪어야 했던 여러 고난들. 그들은 자신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한 감독 일가와 싸워오면서, 어렵게 소속팀과 감독을 구하고 다시 베이징 컬링장에 섰다.


쇼트트랙에서 금메달 1개와 은메달 2개를 따내며 여전히 대한민국은 쇼트트랙 강국임을 몸소 증명해준 최민정 선수. 한때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동료이자 언니로 심석희 선수를 꼽았던 그녀는, 심석희 선수의 뒷담화를 이겨내고, 베이징 서우두 체육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섰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올림픽. 우리나라의 전통적 효자 종목이라고 불리었던 쇼트트랙은 선수 구성 과정에서부터 흔들렸다. 또한 중국의 홈 텃세를 넘어선 불공정한 편파 판정으로 다시 한번 고통받았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서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부분을 생각하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선수들은 달랐다.


대한민국 선수들은 어이없는 편파 판정을 겪고 나서도 의연하게 더 깔끔한 레이스를 펼치겠다고 답했다.

절치부심하여 준비한 레이스에서 넘어지고 나서는 '어제 넘어졌다고 4년 동안 준비한 게 없어지진 않는다'라고 말했다.

누군가는 손이 찢어져서 11 바늘이나 꿰매고도 부상 핑계를 대고 싶지 않다면서 경기를 이어갔다.




오늘 밤, 방에 앉아서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주변이 깜깜한 밤에는 작게 빛나는 불빛조차 선명하게 보인다. 창 밖으로 바라본 또 다른 사람들의 창 속에는 하나같이 올림픽이 담겨 있었다.

모두가 같은 시간에 같은 경기를 보며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겠지.


우리나라 선수가 뒤쳐져 있을 땐 '빨리 선두로 가야 하는데..'라고 중얼거리며 초초한 마음으로 지켜보았을 것이고, 추월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가로막히는 선수를 향해서는 '지금 인코스로 빨리 들어가서 추월했어야지!'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을 것이다. 경기 막바지에 힘이 부족해 보이는 선수에겐 '좀 더 힘내서 빨리 가자! 결승선이 얼마 안 남았어!'라고 소리치며 발을 동동 구르거나, 경기 도중 넘어진 선수를 보고 나서는 분노의 감정이 솟구치다가 다시 아쉬움과 슬픈 마음이 뒤섞여 가슴 한편에 자리 잡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선수들의 경기를 응원하면서 웃다가 울고, 마음을 졸이기를 반복했다. 2주 정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우린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에게 감정이입을 했던 것이다.


선수들을 응원하면서 느꼈던 우리의 감정이 마치 선수들이 느끼는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올림픽 기간 동안 선수들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 빠져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쇼트트랙 에이스, 최민정 선수는 1000m 종목에서 네덜란드의 수잔 슐팅에 이어 은메달을 확정하고도 눈물을 쏟아냈다. 중계방송을 진행하는 캐스터와 해설위원의 멘트처럼, 나 또한 최민정 선수의 눈물은 정말 아깝게, 0.052초의 차이로 금메달을 놓친 것에 대한 서러움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대답은 달랐다.


준비하면서 너무 힘들었던 게 생각이 많이 나서 그런 것 같아요


올림픽을 보면서, 나는 은연중에 메달이라는 결과만을 떠올렸던 것이다. 메달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선수들 한 명 한 명의 노력이 담긴 레이스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라고 항상 생각해왔던 나의 머릿속에도 어느 한편에 메달에 대한 열망이 담겨있는 듯했다. 어쩌면 나는 그동안 내가 느끼는 감정과 선수들이 느끼는 감정이 비슷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올림픽을 보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우리는 선수들의 레이스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언제나 최선의 경기를 펼치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걸까.


그들이 자신의 청춘을 갈아 넣어,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쏟아부은 노력의 반의 반만큼이라도 경험하지 못했던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어쩌면 그들의 아름다운 레이스를 함부로 평가할 자격이 없는 건 아닐까.

올림픽을 보면서 은연중에 밖으로 나왔던 나의 말 한마디와 결정적인 순간마다 표출되었던 나의 감정들은 4년 이상의 시간을 노력으로 채운 선수들을 묘사하기에는 한참 모자라고, 부족했을 것이다.


당연해 보이는 결과에도 뼈를 깎는 노력이 잇따른다. 그렇다면 당연함을 넘어서 특출난 결과를 일구어내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는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언제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 2022.02. 조준형 씀. All rights reserved.



표지 사진 출처 : olympic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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