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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알드 별 May 19. 2024

수면교육, 그게 대체 뭐길래

엄마는 머리만 기대면 잘 수 있단다.

회사에 임신을 알리고, Zoom으로 베이비샤워를 하는 시간이었다. 아이를 가진 동료들은 하나같이 수면교육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어떤 이는 책을 추천해주기까지 했다. 유튜브를 통해서도 많이 접했던 주제라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잠자는 게 뭐가 어려워? 안전하게 잘 수 있게 침대 마련해서 분리수면 하면 되지 싶었다. 훗, 아무것도 모르는 과거의 나 녀석..




캐나다와 한국의 수면교육은 어떻게 다를까? 사실 요즘은 정보가 활발히 교류되고 개인의 신념에 따라 똑소리 나게 교육하는 부모들이 많다 보니 큰 차이가 없다.

그래도 굳이 꼽자면 Western 쪽은 대개 분리 수면에 아이 혼자 잠드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한국은 상대적으로 아이가 푹 자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것 같다.

또, 전반적으로 캐나다나 미국은 한국에 비해 부모 자신을 희생하며 육아하지 않는다. 아이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면서 나의 모든 것을 아이를 위해 포기하거나 바꾸는 희생을 하지 않는다. 저녁에 부부가 시터에게 아이를 맡기고 데이트를 하러 가는 것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실제로도 많이 그렇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의 독립성이 중요하고 수면교육 또한 그런 점을 지양한다.


육아는 일관성이 중요하다. 일관된 부모의 모습에서 아이는 안정을 느끼고 부모를 따르게 된다. 그런 점에서 부모의 성장과정이 육아를 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데, 대부분의 경우 전적으로 내가 했던 직접적/간접적 경험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한국에서 자란 토종 한국인으로서 캐나다나 미국의 육아보다는 한국의 육아 방식이 잘 맞았다. 하지만 나는 캐나다에서 접하는 정보에 흔들려 부분적으로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했는데, 특히 수면교육이 그랬다. 이제 내가 방황했던, 아니 방황하고 있는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출산을 했다. 이렇게 자도 되나 싶게 자는 '초' 신생아 시절이 지나가고, 딸은 조금씩 자신의 생활패턴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 시절부터 나의 고난은 조금씩 시작되었다. 딸은 잠드는 것을 너무나 싫어했다. 어떤 아기들은 잠에 드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자고 나면 다시 일어난다는 사실을 몰라 잠이 드는 그 순간을 무서워한다더니, 내 딸이 딱 그 경우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밤잠은 잘 잔다는 것이었다. 기특하게도 생후 40일 무렵부터 통잠을 자기 시작했다. 저녁에 나름 정한 수면의식이 있었다. 특정 시간에 목욕을 하고 수유를 했는데, 대부분 수유를 하며 잠이 들었고, 눕히면 아침까지 쭉 잤다.

문제는 낮잠이다. 처음에는 거실 한켠에 베시넷을 놓고 낮잠을 재웠다. 너무 조용한 환경에서만 재우면 조용해야만 잠드는 아이가 된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눕히면 자지 않고 혼자 놀거나 대부분의 경우 나를 찾아 울었다. 잠에 들어도 금방 깨기 일쑤였다. 월령별 수면시간을 못 채우다 보니 수유를 할 때마다 잠들어 흔히 말하는 '먹놀잠' 패턴을 만들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낮잠도 밤잠과 같이 크립에 재워보고, 자장가도 불러 보고, 백색 소음도 켜보고, 암막커튼까지 샀다. 여전히 쉽지 않았고, 6개월 무렵부터는 수면퇴행이 오면서 40분 동안 노력해서 재우면 20~30분만 자고 일어나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여담으로 아이는 지금도 이때 불렀던 자장가들을 싫어한다, 첫 소절만 불러도 바로 울먹거린다. 아이에게도 꽤나 힘든 시간이었나 보다.)

아이가 6개월 정도 되자 밤에도 수유하면서 잠들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밤잠도 재우는 것이 난관에 봉착했다. 낮잠을 잘 재우려면 밤잠 수면교육부터 확실해야 한다는 말에, 밤잠을 혼자 들 수 있도록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 안눕법, 쉬닥법, 퍼버법 할 수 있는 건 모두 해 언제부턴가 눕히고 나오면 10분 정도 혼자 뒹굴대고 조금 칭얼대다가 잠들게 되었다. 엄청난 성과였다.


해외에서 사는 우리 부부는 주변에 도와줄 부모님이나 가족이 없다. 남편이 재택근무를 하지만 남편이 일하는 동안은 오롯이 나 혼자 아이를 보는 중이었다. 아이가 자는 낮잠 시간에는 개인 공부도 조금 하고, 설거지 등 집안일도 틈틈이 하고, 밤에는 이유식 만들고 하다 보니 체력의 한계에 부딪혔다. 낮에 수유를 하며 잠이 들면 수유의자에 앉아 아이를 안은 채로 재웠다. 이렇게 안아주면 2시간은 기본으로 잤다.

그러던 중 아이가 7개월이 되었을 때 우리는 3개월간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낯선 환경과 시차 탓인지 아이는 굉장히 예민해지고 더욱 엄마 껌딱지가 되었다, 그러면서 잠을 더 못 자게 되었는데, 잘 자던 밤잠도 중간에 깨서 울기 일쑤였다. 또 하나 우리가 잘못 판단한 것은, 한국에서 쓸 아기 침대를 알아보다가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범퍼침대를 시도한 것이다. 나는 낮잠은 우리 침대에서 함께 자고, 밤잠은 잠들 때까지 범퍼침대에 함께 누워있다가 나왔다. 새벽에 깨면 그냥 수유를 했다. 이전에도 안 하던 밤중 수유까지 하게 된 꼴이었다. 하지만 바닥난 체력에 나는 더 이상 무엇을 할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엄마는 얼굴을 어디 기댈 수만 있어도 잘 잘 수 있는데, 너에게는 잠드는 게 그렇게나 어려운 일이니?”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한국을 다녀오고 나는 수면교육을 버렸다. 밤잠은 아이를 침대에 눕히고 일어서 안아달라고 하면 잠들 때까지 안아주고 다시 침대에 눕히고를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허리와 어깨가 많이 아파졌다. 낮잠은 그냥 같이 잤다. 같이 누워서 자면 여전히 1시간 반 이상은 거뜬했다. 포기하니 편했다. 또, 언제 이렇게 아이랑 같이 또 자보겠나 싶은 마음도 들었다.

돌 무렵 어린이집을 가면서 초반에 낮잠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다행히 곧잘 적응했다. 그리고 나는 복직을 했고 다시 체력이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아이도 많이 무거워져서 밤에 더 이상 잠들 때까지 서서 아이를 안다가 다시 침대에 눕히고 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아이 방바닥에 있는 빈백에 내가 눕고 아이는 나한테도 안겼다가 혼자 놀다가 하다가 어느새 내 옆에 누워 자고 있다. 주로 내가 먼저 잠들기 때문에 아이가 자는 시점을 본 적은 없다. 잠든 아이를 조심히 안아 올려 침대에 눕히고 나오면 성공이다.

이것도 최근에는 아이의 재접근기가 시작되고 종종 아프면서 어려워지고 있다. 며칠 전에는 잠든 아이를 안아 올리자 눈을 번쩍 떠 침대에 눕기 싫다고 “노!”를 외치더라. 결국 같은 걸 5번 해도 안 돼서 우리 방 침대에서 다 같이 잤다. 그나마 지켜오던 한 가지가 분리수면이었는데 그마저도 깨지는 것인지 마음이 좋지 않았다. 다행히 이틀정도 지나자 다시 원래의 패턴으로 돌아오긴 했다. 아이는 이제 머리도 마음도 몸도 커버려 자기 의지가 생겼고, 꾀가 생겼다. 어떻게 하면 엄마, 아빠와 함께 잘 수 있는지 아는 것이다. 동시에 같이 자고 있으면서도 잠결에 엄마를 찾는 아이를 보면 그래,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아이가 원할 때 엄마가 있어줄 수 있어 좋다고도 느낀다.




나는 아이가 왜 자기 싫어하는지 않다. 그녀는 혼자 있기 싫고 엄마와 함께 있고 싶고 더 놀고 싶다. 또 고집이 세고 눈치가 빠른 아이라 수면교육을 시도할 때 옆집에서 아동학대로 신고할까 봐 걱정이 될 정도로 크게, 숨이 넘어가게 울곤 했다. 이런 성향의 아이에게 적합한 수면 교육은 뭘까? 혹자는 수면교육은 수면패턴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일정한 시간에 잠들고 일어나는 것. 또 다른 사람은 혼자 잠드는 것을 배우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흔히 말하는 수면교육을 성공하지 못한 사람으로서 아직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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