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상 농인과 수어, 농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어느 정도 한 뒤에 쓰는 게 읽는 분들이 이해가 편할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고, 농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농인보다 코다가 주목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코다는 '농인'부모의 자녀이기 때문에, 농인과 농사회의 문화적 맥락을 모르면 왜 유난히 코다가 다른 장애인의 가족들과 달리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정체성의 하나로 자리잡을 수 있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코다는 Children of Deaf Adults, 즉 농인 부모의 자녀를 뜻하는 말입니다. 코다의 범주에 대해서는 농인 부모의 청인 자녀를 의미하는 것인지, 농인 자녀까지 포함해야 하는지, 또는 부모가 수어를 사용할 수 있는 농인인지 아닌지 등을 포함하여 다양한 논의가 진행중입니다.
일반적으로는 농인 부모의 청인 자녀를 의미하는 것으로 쓰이고 있어요. 농인 부모의 농인 자녀는 성장하는 동안 농 정체성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농사회로 편입되기도 하고, 청인인 코다와 농인인 코다가 겪는 경험의 범주가 판이하게 다른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코다라는 개념이 국내에 들어와서 농사회 내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초~중반정도인 것 같습니다. 저도 어머니로부터 먼저 이 용어를 들었었거든요. 그때는 어렸으니 오 뭔가 있어보인다!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었어요. 그리고 "저희 부모님이 청각장애인인데요~"로 시작해서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 없이 "전 코다입니다."라고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둘 다 관계성에 기반한 설명이긴 하지만, 주체가 '부모님'이 되느냐 '나'가 되느냐의 차이를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던 듯합니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친구 모임을 할 때 저를 데리고 다니셨고, 농아인협회에서 하는 행사들을 따라다니면서도 가끔 다른 코다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요, 어렸을 땐 또래라는 것만으로도 금방 친해질 수 있으니까 금방 친해져서 놀고 했었어요. 하지만 점점 자라면서 공통의 관심사도 없고 엄마아빠 모임에 따라나가지도 않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데면데면해지고 멀어졌죠. 그땐 코다란 용어도, 개념도 없을 때라서 제가 지금 코다들을 만났을 때 느끼는 동질감, 유대감을 느끼지 못했어요.
'코다'들을 만나게 된 건 농아인협회의 코다 토크 콘서트라는 행사에서였습니다. 코다로 살아오면서 겪은 경험들을 이야기하면서 서로가 얼마나 비슷한 경험들을 하면서 살았는지 확인하고 엄청난 친밀감을 느꼈죠. 연사로 나왔던 한 분과는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기도 했었는데, 그전까진 내적 호감은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코다로서의 경험을 두고 이야기한 건 처음이라 부쩍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어요.
청인 코다는 보통 어릴 때부터 부모의 귀와 입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이야 통역센터도 많이 생기고 여러 보조기기, 의사소통 지원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도 생겨서 농인 부모님들을 만나거나 부모교육을 할 때면 가능한 한 코다들에게 통역을 맡기지 말라고 얘기를 많이 하지만, 그래도 급하고 여유가 없을 때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건 코다이니 크게 다르진 않을거예요. 저도 그렇게 살아 왔구요.
이런 상황에서, 세상에 이런 경험은 나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경험을 해 왔다는 걸 알게 되면 얼마나 반갑겠어요? 서로 직업도 다르고, 가족 형태도 다르고, 수어 실력도 천차만별이지만 농사회와 청사회의 경계에서 살아왔다는 공통점이 무척 커서 공감되는 이야깃거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회포를 풀기엔 그 자리로도 부족해서 그 뒤로도 코다 모임이 계속되어 왔고, 얼마 뒤 코다코리아 모임이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