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대선 후보 TV 토론회가 있었죠.
선거의 토론회나 후보 공약 등에 농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수어 접근권을 보장해달라는 것은 농사회의 오랜 숙원이었습니다.
특히 토론회에서 후보자마다 통역사를 배치해달라고 하는 요구는 매 선거때마다 있었습니다. 현행 TV방송 수어통역은 통역 화면 자체가 매우 작아서 알아보기가 어렵고, 1인의 통역사가 사회자 및 전체 후보들의 발언을 모두 통역하다보니 누구의 발언인지 알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이전 후보의 말을 다 통역하기 전에 화면이 다른 후보로 넘어가기도 하고, 토론 중 타 후보의 말을 끊거나 동시에 말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방송사와 선관위는 기술적 문제, 예산의 문제, 화면이 커지거나 후보 옆에 통역사가 선다면 청인 시청자가 불편해한다 등등의 이유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습니다.
그래도 20대 대선을 맞아 유튜버 하개월님을 비롯한 농인 당사자들이 더불어민주당의 간담회에 다녀오기도 했고,
https://www.youtube.com/watch?v=m34EbtA_Y9s&ab_channel=%ED%95%98%EA%B0%9C%EC%9B%94hamonthly
정의당이 나서서 이 의제를 공론화하고 계속해서 의견을 내기도 했습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6/0000111667?cds=news_edit
그런데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21일 1차 TV토론에 사회자 1명, 후보당 각 1명씩 수어통역사를 배정해 총 5명의 수어통역사가 배치된 수어 중계 영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2477
이 중계는 유튜브 김광진TV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김광진 전 의원의 사비로 진행했다고 하네요.)
본 영상에서는 영상 저작권의 문제로 후보들의 토론 영상 없이 음성만 가지고 통역 중계가 이루어졌고, 사회자 1명과 각 후보당 1명씩 총 5명의 수어통역사가 통역을 합니다.
외국에선 토론 수어통역이 다양한 포맷이 있는데요, 국내에선 이러한 통역이 처음 이루어졌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습니다. 농인들이 요구하는 포맷이 딴 세상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실현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게 정말 중요하거든요. 이번 중계 방송은 가능성을 보여주는 일을 했고, 이후 공중파 방송의 선거 수어통역을 바꿔나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농사회에서도 선거 수어통역에 관한 여러가지 시도들을 해 보면 좋겠어요. 여러 온라인 수어방송들이 있으니, 실시간은 아니더라도 농인 아나운서들이 토론을 재구성해봐도 좋을 것 같고, 요약 영상을 만들어도 좋겠죠. 또한 농인의 입장에서 토론회를 피드백하는 영상도 좋을 것 같아요.
( https://www.facebook.com/1404913020/videos/351204520198784/ 이 영상은 글을 쓰고 나서 접했는데요, 토론회 하이라이트 영상에 농통역사들의 통역을 넣은 영상입니다. )
이런 아이디어들이 모이고 농인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어느 정도 공론장이 형성되고 있다는 싸인을 계속해서 정치권에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통해서 공중파 방송을 바꾸기도 하고, 한국수어로 된 컨텐츠가 더 많아지도록 요구할 수 있는 동력으로 삼을 수 있겠죠. 한국수어 컨텐츠가 많아진다면 그와 더불어 수어통역의 퀄리티에 대한 이야기도, 농인 당사자들이 직접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가 더 늘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유튜브 김광진TV에서 진행했고, 2차(2월 25일)와 3차(3월 2일) 토론의 수어중계는 유선방송인 복지TV에서 진행이 된다고 합니다.
1차 중계에서 다소 아쉬웠던 부분ㅡ영상 동시 송출, 자동 자막의 정확성ㅡ이 2차와 3차에서 해소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