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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우성 Sep 21. 2020

[남자의 클래식] 1회. 공기의 흐름을 바꾸는 카리스마

 



대학생 시절에 서울시립교향악단, 서울시립합창단과 함께 합창 공연을 했다. 작품은 베르디의 <레퀴엠, Op. 48>이었고 지휘는 정명훈이 맡았다. 대학생으로 정명훈 같은 거장 지휘자와 함께 공연을 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이지만 <레퀴엠>은 대규모의 합창단이 필요하기에 나도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당시에도 정명훈은 이미 말이 필요 없는 세계적인 지휘자였다. 거장의 지휘 아래 공연하게 된 것도 꿈만 같았지만, 진짜로 날 흥분케 했던 건 리허설이었다.


100여 명의 연주자가 질서정연하게 자리 잡았고 무대 위로 온화한 표정의 지휘자가 들어섰다. 가벼운 인사 몇 마디를 나눈 뒤 포디엄에 올라 곧바로 지휘봉을 들었다. 오케스트라와 100여 명의 합창단은 마에스트로의 손끝과 눈빛을 따라 일사분란하게 연주하기 시작했다. 30분가량 흐른 뒤 지휘자는 처음으로 연습을 끊었다. 지휘봉으로 보면대를 가볍게 톡톡 두드리며 입을 연다.


“오케스트라! 지금 연주한 마지막 프레이즈는 조금 더 템포를 당기듯이 연주해야 합니다.”

나지막한 한 마디 후에 리허설은 계속 진행되었고 거의 마지막 부분을 연주하던 무렵 그는 조용히 지휘를 멈추었다.

“합창단! 지금 연주한 부분의 리듬이 충분히 날카롭지 않습니다.”

친절하지만 특유의 엄격한 톤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특히 대학생 합창단 여러분! 여러분은 프로입니다. 프로는 틀리면 안 됩니다.”


마에스트로의   자격




그는 공연 전 단 한 번 주어진 2시간 남짓의 리허설 동안 단 두 번의 디렉션만을 주었다. 리허설이 끝난 후 “브라보”까지 더하면 딱 세 번이다. 뜨거운 심장을 가졌음에도 차가운 머리로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휘자에게는 ‘마에스트로’라는 호칭이 붙는다. 영어의 마스터와 같은 뉘앙스의 이탈리아 말로 ‘거장’이라는 뜻이다. 지휘자뿐 아니라 클래식 분야에서 높은 경지에 오른 음악가들에게는 마에스트로라는 명예로운 호칭이 붙는다.


“굳이 지휘자가 없더라도 그냥 오케스트라끼리 연주가 가능한 거 아닌가요?”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연주 시작할 때를 빼놓고 단원들 중 아무도 지휘자를 안 보는 것 같더라”는 말도 한다. 지휘가 없는 연주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런 연주는 무색무취의 영혼 없는 음표의 나열에 불과할 것이다.


지휘자의 역할은 단지 오케스트라의 시작과 끝을 알리거나 박자를 통일시키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연주의 템포에 미세한 변화를 주어 풍부하고 다채로운 느낌을 주는 아고긱agogic, 셈여림을 조절하는 다이내믹dynamic, 음악의 흐름을 자연스러운 악구로 나누는 프레이징phrasing 등 모든 것을 조절하는 일이 바로 지휘자의 역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악보를 해석하고 치밀하게 분석해 내야 한다. 그렇게 지휘자는 자신의 머릿속에 상상의 사운드를 만들어놓고 오케스트라나 합창단에게 디렉션을 주어 연주로 구현한다. 오케스트라나 합창단이 총주를 하는 중에도 각각의 소리를 분리해서 들을 수 있는 날카로운 청음 실력 또한 필수다. 음악적으로 매우 높은 경지에 오른 자만이 당연히 지휘자의 자격을 가질 수 있다.




카리스마의 마에스트로. 이 막연한 단어는 학창 시절 음악실에 걸려 있던 미남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을 떠오르게 한다. 백발의 잘생긴 외모는 다분히 귀족적이고 지휘봉을 든 채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옆모습은 우아하고 고독하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터틀넥과 검정 턱시도의 강렬한 이미지는 타협하지 않는 독재자를 연상시킨다. 
  
 사실 이 사진은 카라얀이 치밀하게 연출한 결과물이다. 카라얀은 자신의 옆모습, 그것도 45도 정도 틀어진 옆모습이 가장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진사에게 다른 각도에서는, 특히 정면에서는 절대로 사진을 못 찍게 했다. 높은 단에 올라 고개를 떨군 채 지휘봉을 든 모습은 마치 인간계를 내려다보는 ‘음악의 신’과 같은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그시 눈을 감은 모습은 비록 오케스트라와 섬세한 교감을 나눌 수는 없지만 모든 곡을 암보하고 있다는 ‘완벽함’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지휘자의 카리스마를 언급할 때 독재자 유형의 지휘자인 이탈리아 출신의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리허설 내내 “No! No!”를 연발하며 단원들을 닦달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단원들은 뒤에서 그를 ‘토스카노노’라고 불렀을 정도이다. 토스카니니는 작곡가가 악보에 적어놓은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허용하지 않는 원칙주의자이자 완벽주의자였다. 만약 성악가나 오케스트라가 악보에서 티끌만큼이라도 벗어나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런 강한 성격은 예술가적 양심과 자존심에도 그 빛을 발했다. 파쇼 정권의 수장 무솔리니가 토스카니니에게 파시스트당의 당가인 ‘죠비네차’를 연주할 것을 지시하자 “이 따위 노래는 음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라며 단호하게 거절한 사건은 유명하다. 그리고 이탈리아 전역의 주요 장소에는 독재자의 초상화가 걸렸지만 “저 더러운 자식의 사진으로 스칼라 극장을 더럽힐 수 없다”며 용감히 저항하기도 했다. 비록 괴팍하긴 했지만 그가 보여준 작곡가들과 음악에 대한 존경심, 열정과 업적은 ‘카리스마의 독재자’로도, 또 20세기 최고의 지휘자로도 여전히 추앙받고 있다.


리허설 동안 단 두 번의 디렉션만을 남긴 정명훈의 카리스마는 카라얀이나 토스카니니와는 다른 느낌이다. 가볍지 않은 친절함과 엄격함에서 나오는 힘은 온전히 기대고 싶게 만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스포트라이트가 들어오는 무대 위도 아니고 모두가 편안한 캐주얼 차림으로 진행된 리허설이었지만 마에스트로의 입장과 동시에 공기의 흐름이 바뀐다. 평범하던 합주실이 긴장감으로 가득차고 집중과 몰입의 에너지가 교차한다.


지휘봉이 움직이는 순간마다, 몸짓과 눈빛 표정의 변화가 미묘하게 일어나는 순간마다 고차원의 미적 세계로 연주자들을 순간 이동시키는 마법을 부린다. 그 영험함에 이끌려 정신없이 떠돌아다니다 보면 그와 함께한 리허설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른 채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다. 공연장에서 관객들은 열광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손끝 하나로, 눈빛 하나로도 분위기를 압도하는 힘. 그 힘이 연주자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무작정 기대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내게 물어 온 지인의 말처럼 그 누구도 지휘자를 보지 않고 제각각 연주해 내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휘자의 사인과 오케스트라의 사운드에 즉흥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휘자가 휘두르는 몸짓, 눈짓과 팔 동작 하나하나는 단원들과의 철두철미한 약속이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손과 눈은 매 순간 30cm 지휘봉의 날 끝에 예민하게 붙어 있다. 이 모두를 가능케하는 힘, 바로 거장의 힘이다.                    



Play list




<브람스   교향곡 1번> 작품 68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 


Symphony   No. 1 C minor, Op. 68 


by   Johaness Brahms


 


https://www.youtube.com/watch?v=MCYXSIumox4&feature=emb_title


 


정명훈은 2005년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예술 고문으로 위촉되어 이듬 해부터 예술 감독 겸 상임 지휘자를 맡았다. 그 후로 약 10년간 활동하며 서울시향의 수준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고소, 고발로 얼룩진 사태를 겪으며 2015년 12월 스스로 직을 내려놓았다. 그로부터 약 4년 뒤인 2020년 정명훈은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시향 앞에 다시 섰다. 연주할 작품은 <브람스 교향곡 제1번>. 정명훈의 지휘봉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시간을 뒤로 돌리는 마법이라도 부린 것처럼 연주자들은 정명훈과 함께했던 4년전의 사운드를 자아내기 시작했다. 서정적인 사운드에서부터 후반부의 오페라를 연상시키는 드라마틱한 연주까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일체감을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감동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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