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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우성 Sep 28. 2020

[남자의 클래식] 2회.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는다

카우프만의 결단


지금 가장 핫한 빅 테너를 꼽으라면 독일 출신의 요나스 카우프만Jonas Kaufmann이다. 영화배우 뺨칠 만한 잘생긴 외모에 지적인 매력까지 겸비한 테너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우선 그는 테너처럼 생기지 않았다. 테너라고 하면 엔리코 카루소나 파바로티처럼 작은 키, 동그란 얼굴에 배도 좀 나오고, 피자 가게 주인장 같은 후덕한 외모가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이 독일인 테너는 군살 하나 없는 다부진 몸매에 패션 브랜드 휴고 보스의 모델을 연상시키는 조각 미남이다. 그리고 뮌헨 대학교에서 수학과를 다닌 이력에 걸맞게 학자풍의 지적인 매력마저 풍긴다. 결정적으로 카우프만의 목소리는 일반적인 테너의 낭랑한 목소리가 아니다. 오히려 바리톤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 정도로 중후하고 굵은 목소리이다.


이런 이유로 카우프만은 데뷔와 함께 ‘테스토스테론의 과잉’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준수한 외모에 남성미가 넘친다는 찬사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테너치곤 너무 굵은 목소리에 이전의 이탈리아풍 테너 기준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그저 잘생겨서 뜬 테너라고 비아냥거리는 평가였다.



유럽의 여느 성악가처럼 카우프만도 청소년기에 교회의 합창단에서 노래하며 음악적 열정과 재능을 발견했다. 성악가가 되길 꿈꾸었지만 보험 회사의 직원이던 아버지의 권유로 음대 진학 대신 뮌헨 대학교 수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하지만 성악가의 꿈을 접을 수 없던 그는 뒤늦게 뮌헨 음대에 입학하여 1994년 학업을 마친다. 음대에 재학 중이던 시절부터 이미 뮌헨 국립 극장에서 단역을 맡아 노래했고, 레겐스부르크 극장에서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베네치아의 하룻밤> 중 카라멜로 역을 소화하며 오페라 가수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았다. 이후 1994년 음대 졸업과 동시에 독일 자브뤼켄 극장의 전속 테너 가수로 입단한다.


이때부터 약 2년간 카우프만이 맡은 배역은 오페라 <마술피리>의 타미노나 <마농>의 데 그리외 같은, 밝고 가벼운 리릭 테너의 역할이었다. 지금의 굵은 목소리로는 상상할 수 없는 역할들이다. 당시 노래한 자료들을 찾아보면 카우프만은 가벼운 음악도 꽤 훌륭한 수준으로 소화해 낸다.   

                 

엘리트 청년 카우프만의 선택


오페라 극장에서 신입 전속 가수는 그야말로 을 중의 을이다. 자신의 목소리에 맞는 역할이나 원하는 역할을 고를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당시 카우프만은 자신의 목소리와는 맞지 않는 밝고 가벼운 역할을 억지로 소화해 낸 탓에 목소리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목이 자주 잠기고 피로가 빨리 와 목소리의 건강을 담보할 수 없는 상태였다.


 신인 가수였던 그는 그간의 노력과 커리어의 단절을 각오하고 극장과의 재계약을 단호하게 거절한다. 그러고는 유명한 발성 코치인 마이클 로즈를 만나 본연의 자기 목소리를 찾는 데 전념한다. 이전까지 구축해 온 발성 체계를 완전히 뒤집고 지금껏 단 한 명도 없던 어둡고 무거운 테너의 목소리이자 자신 본연의 목소리를 마주하며 꾸미지 않고 노래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그런 과정을 겪은 후 더 이상 극장의 요구대로 노래하는 전속 가수가 아닌 프리랜서 가수로서 독일 슈투트가르트 극장 등 더 높은 수준의 극장에서 노래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전 세계 오페라 극장의 캐스팅 선호도와 음반 판매, 각종 시상에서 1위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젊은 시절 카우프만의 실력은 발성상의 문제는 전혀 없다. 24세의 테너치고 잘해도 너무 잘한다. 수려한 외모에 귀를 사로잡는 매력적이고도 싱싱한 목소리, 탁월한 연기력은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테너의 전형이다. 그는 상품성 있고 매력적인 테너일 뿐 아니라 극장과 관객들이 원하는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엘리트 청년이었던 거다.
 
 하지만 20대의 젊은 테너는 나름의 깊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이대로 계속 나이 들어도 좋은가?’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모든 걸 순조롭게 해나가고 있는 와중에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갖는 고민이었을 것이다. 만약 이때 카우프만이 내면의 고민에 집중하지 않고 주변의 박수와 환호에만 매몰되어 있었다면 어땠을까? 목은 자주 잠기고 피로가 쌓여갔을 것이고 지금처럼 많은 양의 공연을 소화할 수 없었을 것이다. 좋은 테너가 됐을지는 몰라도 지금처럼 전 세계에서 가장 유니크한, 유일무이한 테너는 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탈리아 스타일의 시원시원한 테너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카우프만에 대해 “목소리가 성대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한다voce ingolata, 보체 인골라타”라며 비아냥대고, 또 그의 잘못된 발성 때문에 성악가로서의 수명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데 베팅하기도 한다. 하지만 카우프만은 보통의 오페라 가수보다 거의 두 배나 많은 스케줄을 소화해 내며 1위 테너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무려 20년간이나 이어진 야박한 평가에도 묵묵히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신의 의지대로 앞으로 나아간 카우프만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시원하게 뽑아내는 기존의 테너 스타일을 버리고 타고난 목소리로 더 자유롭게 노래하고자 하는 의지와 핸디캡을 넘어서고자 하는 간절함이 그를 성공의 자리로 이끌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그 어떤 테너보다 밀도 높은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Play list


‘부드럽게   속삭여줘요’, <대부> 테마


니노   로타(1911~1979)


Parla   piu piano,  ‘Godfather’


by   Nino Rota


https://youtu.be/nvkVakdV4z8


영화 〈대부The Godfather〉의 메인 테마로 사용된 곡의 이탈리아어 버전을 카우프만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 독일 예술 가곡에서나 들을 수 있는 극피아니시모부터 특유의 어두운 음색과 폭발적인 고음까지, 이 곡에서 카우프만은 모든 음역과 다이내믹dynamic; 셈여림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마피아 보스 같은 능수능란함은 왜 그가 현존하는 최고의 오페라 가수인지 수긍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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