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 포함) 영화 내용 분석 및 후기
: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고 난 후로 어쩐지 옛날 한국 영화들이 더 보고 싶어졌다. <접속> <해피 엔드>와 고민하다가 왠지 좀 더 가벼운 내용이 보고 싶어서 <엽기적인 그녀>를 오늘 아침에 봤다.
: ‘견우’가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으려 하는데, 빨리 오라는 고모의 독촉 전화를 받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 신도림역 인천행 지하철 승강장에서 술에 취한 ’그녀‘를 견우가 도와주면서 둘의 인연이 시작된다.
: 말그대로 ’엽기적인‘ 그녀와의 데이트… 정식으로 고백하는 장면이나, 말이나 글로써 둘의 관계를 분명하게 정의하는 장면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지만(딴짓하느라 내가 중간에 놓친 게 아니라면…….) 그들은 100일 기념일도 챙기고, 나중에는 그녀의 부모님에게 ‘그만 둘이 헤어지라’는 말을 듣는 등 연인 관계임을 알 수 있는 장면들이 나온다.
(주로 견우를 통해 둘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할지 요구되는 장면이 나타난다. 가령 놀이공원에서 만난 탈영병에게 우리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하거나, 처음 그녀의 부모님과 마주했을 때 그냥 친구 사이라고 말하는 것도 모두 견우이다.)
: 하지만 마냥 밝아 보이는 그녀에게는 상처가 있었는데, 바로 사랑하던 사람이 일 년 전에 죽은 것. 술에 취해 견우를 처음 만난 그 날은 죽은 연인의 사망 1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 그녀의 부모님은 견우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급기야 다른 남자를 딸에게 소개시켜주기까지 한다. 카페에서 셋이 함께 있는 장면에서 바로 그 유명한 I Believe~ 명장면 탄생,,,
: 타임 캡슐을 묻고 견우와 그녀는 헤어진다. 2년 후에 같은 날 오후 2시에 이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그녀는 정확히 일 년 더 늦게 그곳에 도착한다.
: 죽은 연인을 잊기 위해 영국에 1년 반 있다가 온 그녀는 죽은 연인의 어머니를 카페에서 만난다.
: 그리고 자신의 조카와 사귀어 보라며 소개해주는데, 그가 바로 견우이다.
: 이 장면에서 견우의 조카이자 고모의 아들이 죽었다는 정보가 제시된다.
: 고모도 부평에 살고 그들이 처음 만난 날 지하철에서 내린 곳도 부평이다. (부평역 맥도날드는 그때부터 쭉 있던 거라니!)
: 백일 기념 장미꽃처럼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주는 순수함과 지고지순함이 닮았을 것이다.
(물론 견우는 그녀의 “죽을래?“ 한 마디에 ‘그녀에게 살해당하지 않기 위해’ 무언가를 한다고 나오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겁을 먹었을리는 없고 자신의 이상형인 그녀에게 홀딱 반해 무엇이든지 다 맞춰주었던 것임은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 있다.)
: 심지어 촌수가 그리 멀지 않은 사이였다보니 외적으로도 그녀에게 죽은 연인을 상기시키기에 좋았을 것이다.
: 고모의 독촉 전화는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기 위해 사용되어야만 하는 장치이지만, 그 전화를 받은 장소가 사진관인 이유가 궁금하다.
카메라의 플래시 효과로 과거와 현재를 영상에서 자연스럽게 연결하기 위한 걸까?
: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미래에도 보여주는 사진이라는 매체, 그리고 미래인의 존재에 대해 늘 궁금해하는 그녀… 이렇게 연결이 되는 걸까?
: 사실 이 부분은 영화 전개상 생략해버려도 아무 상관 없고, 생략하는 게 오히려 더 깔끔하다.
: 그녀는 이미 영국에 다녀 왔고, 견우도 (그녀와의 재회를 통해 계획을 변경하기 전까지는) 영국에 갈 예정이었다.
: 그냥 해외도 아니고 둘 다 영국에 다녀왔거나 갈 예정이라는 설정이 의아했다…
: 시나리오 작가가 그녀의 꿈인 것과 관련이 있을까? 내가 놓친 부분이 있을런지… 해리포터 언급은 없었던 것 같은데.
: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어 했던 그녀의 꿈을 견우가 대신 이루게 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그녀와의 이야기를 인터넷에 올려 회사로부터 연락을 받게 된 것.
: 처음에는 그녀의 꿈이 왜 하필 시나리오 작가였을까? 싶었는데, 로맨틱 요소를 위해 그녀 대신 꿈을 이뤄주는 견우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풀어내기에는 세기말부터 2000년대 초반 당시의 핫한 트렌드였을 PC통신을 하나의 장치로 활용하기 위함이 아니었을지 추측해본다.
: 타임캡슐을 묻은 지 2년이 아니라 3년 후에 나타나는 그녀의 앞에 세상만사에 득도했을 것만 같은 인상의(…) 노인이 운명에 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운명이란 말이야… 노력하는 사람한테는 우연이란 다리를 놓아주는 거야.
: 그런데 사실은 좀 띠용한 게… 이 말이 딱히 영화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는 점이 함정이다.
: 아마도 순전히 우연(죽은 연인의 어머니가 남자 주인공의 고모였다는 설정)에 기대어 결말까지 극을 진행하기가 부담스러웠던 나머지, 이건 우연이 아니라 노력이 더해진 운명이다! 라는 기조를 바탕에 깔고 싶었던 듯한데… 사실 견우이건 그녀이건 둘 다 뭘 노력한 건 없다. 타임캡슐을 묻고 헤어진 2년 동안 서로 바쁘게 살았다는 내용이 짧게 나오기는 하지만, 그 정도의 노력을 ‘운명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노력’으로 거창하게 포장한다면 어딘가 과대포장에 질소가 꽉 찬 느낌이랄까…
: 100일 기념으로 그녀가 견우에게, 어떨 때 여자가 제일 예뻐 보이냐 묻자 피아노 칠 때라고 견우는 답했고 이에 100일날 장미꽃을 배달하러 여대 강의실에 간 견우는 그녀가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 곡은 다르지만 영화 <클래식>이 떠올랐다.
: 다소 과한 듯한 우연성에 거부감이 들기도 하지만, 전지현의 풋풋하고 앳된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던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