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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제 Dec 31. 2023

모르는 사람이 나누어 준 친절을 먹고 살아요 - 1편

첫 유럽 여행의 기억에 뿌리내린 순간들

한국에 온 외국인에게 현지인으로서 도움을 주는 역할이 익숙한 나에게, 흔치 않은 이방인의 신분이 허락되었던 올해 가을. 파리와 런던에 2주 동안 머무르는 동안 기억에 남는 현지인들의 호의를 간단히 기록해보고 싶다.


첫 번째 기억

바쁜데 굳이, 따뜻하게 데워 준 샌드위치

위치: 파리 북역(Gare du Nord) 스타벅스


파리에서 런던으로 가는 유로스타를 타러 새벽 5시쯤 일어났던 걸로 기억한다.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낑낑대며 파리 북역(Gare du Nord)까지 도착하는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해 피로하고 배고팠다. 먹거나 마실 걸 들고 타도 되는지 알지 못해 조금 망설였지만 그보다는 허기를 채우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의 승으로… 역사 내 스타벅스에 들렀다.

뭐든지 메뉴를 고를 때 신중한 편이지만 이때만큼은 그냥 앞 사람이 집어 가는 제품 그대로 따라 집었다. 무슨 맛이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행여나 도둑맞을까 짐 챙기랴, 열차 시각 확인하랴, 승강장 위치 살피랴 온갖 것들에 신경을 분산시키느라 마음이 바빠 아무거나 골라 얼른 포장해 나갈 심산이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매장 안도 주문을 하는 사람들이 짧지 않은 줄을 서 있을 만큼 적잖이 바쁜 상황이었다. 내 차례가 되어 따뜻한 커피와 샌드위치를 주문하는데,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종업원이 물었다.


샌드위치 데워줄까?

영어 문장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 표현을 그대로 옮길 수는 없지만, 요지는 간단명료했다. 척 봐도 이곳의 모든 것을 낯설어 하는 이방인에게 기왕이면 아침밥-밥이 아니라 빵이지만-을 따뜻하게 먹고 싶은지 의사를 물은 것이다.


귀국 후 스타벅스에서 일하고 보니, 푸드를 구매하는 고객에게 데워드릴까요? 묻는 것은 포스 업무 매뉴얼 지침 사항 중 하나였다. 매뉴얼이 아니더라도 데워먹는 음식을 사가는 고객에게는 으레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이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그 직원의 미소가 아직까지도 꽤나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일까.


해외 여행을 할 때마다 여러 차례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말투가 우리나라에 비해 그리 친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단지 내가 아시아인이라 그런가? 하기에는 다른 피부색, 성별, 국적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별반 차이 없는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보고 그렇게 느꼈다. 그래서인지 몇 안 되게 친절한 미소를 선뜻 보여주는 종업원의 모습이 우리나라에서 일상을 살아갈 때에 비해 더 뇌리에 잘 박히는 것 같다. 여행하면서 쉬이 느끼지 못했던 온도의 표정과 음성임을 그제야 깨달으면서.


굳이
[부사]
1) 단단한 마음으로 굳게.
2) 고집을 부려 구태여.


굳이 본인이 안 해도 되는 일을 제가 하겠다고 먼저 나서는 신입사원이 예뻐 보인다. 굳이 안 치워도 되는 공용 부엌을 먼저 치워주는 룸메이트에게 정이 간다. 굳이 오늘까지 해야 하는 일은 아니지만 미리 끝내 놓으면 내일까지 마음이 편하다. 굳이 시도하지 않아도 될 일에 도전했다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경험과 추억을 얻기도 한다.


굳이 샌드위치를 따뜻하게 먹고 싶은지 먼저 물어봐 준 파리 북역 스타벅스 직원의 미소 덕에 나는 여행에서 돌아온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스타벅스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게 되기도 하였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의 마음의 작은 조각을 떼어 건넨 선의가

타인의 마음에 잘 심어지고, 말랑하게 부풀어서

결국에는 내 밖의 세계를 더 큰 부피로 채우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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