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하늘의 별과 가장 가까운 나라
어느 때부터인지 뉴스를 잘 보지 않는다. 갑갑하고 우울한 소식만 들려오기도 하지만 그런 게 아니더라도 뉴스나 신문 같은 매체가 이십 대 시절보다도 멀게 느껴진다. 손 안의 뉴스, 검색하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는 휴대폰이 생긴 탓도 분명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기계는 기계일 뿐 그걸 다루는 주인이 제대로 검색하고 기능을 찾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실시간으로, 세상의 소식을 관심 갖고 보는가, 전자 신문한 줄이라도 챙겨서 읽는가,를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요'
바쁘다, 바빠, 지금 내 삶을 살아내기에도 하루살이 인생 같은데 어쩌면 정보의 홍수가 넘쳐서 그런가, 선별적으로, 자극적으로 들려오는 소식에만 눈이 번쩍 뜨이는 것 같기도 하다.
나 같은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지 않을까. 어린 시절 우리 아빠를 떠올리면 바쁜 출근 준비 시간에도 늘 제일 먼저 하시는 일은 신문을 천천히 넘기시면서 보는 일이었다. 그러다 좋은 기사가 있거나 사설이 있으면 오려서 따로 보관해 두기도 하고 한자공부처럼 유용한 코너는 오려서 나에게 따로 공부해 보라고도 하셨는데, 생각보다 꽤 길게 스크랩한 흔적들이 있어서 놀란 기억이 있다.
저번에는 그릇이나 접시를 깨지지 않게 포장하려고 보니까 신문지는커녕, 집에 잡지나 광고 전단지 한 장 없다는 게 뭔가 허탈하고 이상했다. 그러다가 이 뉴스를 접하게 됐다.
함께 줌으로 일본어 수업을 배우는 혜은쌤은 지금 볼리비아 라파스에 거주하고 계신다. 라파스를 검색해 보면 이렇게 뜬다.
하늘의 별과 가장 가까운 수도
세상에, 너무 낭만적인 표현이네.
성 프란시스코 성당이나 우유니 사막, 킬리킬리 전망대, 라파스 케이블카까지 주변에도 볼리비아를 여행한 분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놀란 적이 있었다.
올해 함께 읽은 찰스만의 1493 콜럼버스가 문을 연 호모제노센 세상에도 볼리비아의 '포토시'가 등장한다. 볼리비아 포토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은을 품고 있는, 16세기 중반 거대한 은광의 발견은 전 세계 은 생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막대한 양을 생산했다고 한다. 이렇게 나온 은이 스페인을 비롯한 세계 경제와 은본위제 확립에 영향을 준 이야기까지 이 책에 자세히 나와있었다. 포토시의 은, 엘도라도의 금! 하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그 은들은 단 한 번도 볼리비아의 백성과 국민들은 위해 쓰인 적이 없다. 스페인의 종교 전쟁에 다 쓰이고 전부 빼앗기고. 많은 자본을 가졌음에도 마음껏 떵떵거리며 부유하게 살아본 적이 없는 가난한 나라.
역사에 무지했던 나는 이 부분을 배우면서도 해맑게 질문했다.
식민지에서 벗어났음에도 왜 이렇게 떠도는 집시 같은 이미지의 나라로만 내 기억에 자리하게 됐을까, 그게 궁금했던 거다.
혜은쌤이 가끔 보내주시는 라파스의 하늘 사진이 너무 멋있어서 매료되고 자꾸면 들여다보고 또 보게 된다.
-아니, 이렇게 멋진 곳에 사시면서도 왜 항상 세계 방방곡곡을 그것도 유럽 쪽으로 여행하세요?
유럽이나 미국, 일본으로 일 년에 여러 차례씩 여행을 하시는 선생님 일상이 궁금해서 물은 적이 있다. 외국 여행을 한다고 다 부러워할 건 아닌 게 여기엔 나라의 정치적 상황으로 선거철 마다도 피해있기도 한다고. 또 워낙 고산지대에 거주하다 보니 한 번씩은 내려와서 지내야 한다는 이야기도 해주셨다. 보고 싶은 세계 곳곳의 미술관, 명소, 멋진 건축물들을 자주 가시는 혜은쌤의 상황이 부럽기도 하고 늘 보내주시는 여행 사진과 소식에 괜히 마음이 설레곤 했다. 매년 한국에 오실 때마다 일본어반 분들과 함께 만났는데 혜은쌤은 유쾌하고 따뜻한 정말 좋은 분이시다.(일본어 실력만 보더라도, 우리 일본어반의 '에이스'이기도 하다) 선생님 덕분에 선물해 주신 볼리비아의 맛있는 커피도 맛볼 수 있었다. 그런 혜은쌤이 또 다른 여행을 앞두고 얼마 전, 우리 일본어 방에 짧은 뉴스를 보내셨다.
https://youtu.be/2mjnpY-4-2g?si=kZXE6GtkGpL9pmTl
▶ 볼리비아의 현재 상황이 담긴 혜은쌤의 블로그를 보려면 여기
수확해야 하는데 연료가 없어 기계가 멈췄다니, 기름을 못 구해서 자동차가 멈춘 건 물론이고 가게에서 식용유 하나를 사려고 해도 살 수가 없다. 이 나라는 자동차 기름은 물론이고 먹을 기름조차 동이 나 버린 걸까.
하…
문제는 병원, 아파서 당장 진료나 입원, 수술까지 필요한 상황인데도 병원에는 고칠 수 있는 아무 장비도, 의료품도 구할 수가 없다. 라파스 국립병원 앞 인도에 누워서 대기하는 환자들의 상황은 언젠가 내가 대학병원에 병실이 없어서 복도에 담요를 깔고 누워있는 풍경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 그래도 거긴 복잡하고 어수선하긴 해도 잠시 임시 거처로 이용한 병원 안이었지!
인터뷰하는 모든 시민들의 눈에선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별이 가장 가까운 도시인데, 마음의 별을 잃어버린 표정들이었다.
이 모든 문제의 또 다른 원인이기도 한 바로 대선, 정치적 갈등 유혈충돌, 이미 세 차례 대통령을 한 모랄레스는 과연 누구를 위한 대통령인가 말인가. 기가 찰 노릇이다. 지금 국민들이 기름도 못 구하고 먹을 것도 없이, 치료도 받을 수 없어서 죽어가는데, 자식처럼 키운 곡식하나도 수확하지 못하고 그냥 넋 놓고 타버리는 걸 보고만 있는 상황인데, 혼자만 여유만만 미소 가득이다.
어렸을 때 재밌게 읽은 과학책에서 우리나라에서 아주 커다란 드릴로 땅을 계속 뚫어서 반대편으로 간다면, 우리가 도착하게 될 나라, 거기가 바로 '칠레'라고 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제일 반대편에 있는 나라인 셈이다. 지도를 찾아보니 볼리비아는 칠레와 페루와 가까이 붙어있는 나라다. 5분도 안 되는 이 짧은 영상을 보는데 눈이 시큰해지고 눈물이 맺혔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저마다 이어지는 안타까움과 안부, 영상을 보다가 울컥했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정아쌤의 말처럼 우리가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 쪽 세상에는 또 무지하고 그런 뉴스들에도 무심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마음껏 웃지 못하는 볼리비아 사람들의 근심 어린 어두운 표정에서, 뉴스도 신문도 내가 알고 싶지 않아서 그냥 덮어뒀던 나의 시간에서, 반대편에 살고 있다고 우리와 모든 게 반대여야 할까. 낮과 밤, 계절은 반대일 수 있지만 그들도 우리도 식량이 있어야 먹고 살아갈 수 있고 안정적인 정치와 경제가 삶의 기반이 되는 것은 자명하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늘 풍부한 자원을 가졌음에도 이용당하고 빼앗겼다는 것도 서러운데 정작 같은 민족끼리도 서로 정치적 견해로 유혈 사태를 부르고 있다니. 근본 대책을 찾아서 병원 앞에서 담요에 싸인채 죽어가는 사람들만은 없었으면 좋겠다. 아프면 큰일 나는 '나라'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언제나 공포스럽다. 에보가 망명하고 무정부 상태였던 며칠이 정말 공포 상태였다고 하니 8월 17일 치러질 대선이 모쪼록 잘 지나가고 잘 치러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영상을 보고 나서 볼리비아의 지도도 처음 찾아봤다. 그전까진 그냥 내가 한 번 여행할까 말까 한 나라, 같이 공부하는 혜은쌤이 거주하는 나라, 그게 전부였던 곳이다. 거기에 거주하는 혜은쌤의 안부를 묻는다는 것이, 가볍게 물을 일이 아니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여행 가방을 싸면서도 사업으로 삶의 터전을 삼았던 나라에서 매번 또 나갔다가 들어오는 일련의 과정들이 얼마나 힘겨웠을지 또 다른 마음이 쓰이기 시작했다. 블로그와 여행 스토리만 보자면 부럽고 멋진 인생이지만, 삶의 속속들이 깊은 곳에선 또 굶주림, 가난과 아픔과 제일 맞닿아있는 사람들을 모든 심경을 가까이서 보고 안타까운 상황과 심경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스쳐가듯 오 분을 본 내 마음도 아픈데.
하늘의 별과 가장 가까운 도시, 아름다운 땅에 사는 사람들 마음이 쩍쩍 갈라지고 고통으로 몸부림치고 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프다.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
-김애란 | 바깥은 여름 중 단편「풍경의 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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