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翼をください 날개를 주세요

조우遭遇 : 신세계 교향곡 & 영화음악 콘서트

by 앤나우

일산에 살면서 '고양 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 처음 가봤다.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예술의 전당은 몇 차례 갔으면서, 정작 차로 이십 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음악당엔 처음이라니, 늘 마음을 먹게 되는 시작이 어렵지, 막상 해보면 이렇게 간단하고 가까운 거리라는 게 놀랍다.


일요일은 아침부터 서울에 있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기에 마음이 괜히 분주하고 바쁘다. 한 번씩 심선생님을 통해 좋은 음악회 티켓이 나와도 대부분 가족모임이 잦은 토요일 저녁이나 교회에 있는 시간일 때가 많아서 한 번도 '저요, 저요'하고 번쩍 손을 들지 못했다. 가고 싶은 공연과 맡고 있는 봉사 사이에서 늘 해야 할 일을 택해야 하는 게 당연하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것도 어쩔 수 없다.


이번에는 시간대가 저녁 6시 30이라고 하여 동네까지 돌아오는 시간도 충분할 것 같아서 손을 들었다. 번쩍!

어떤 콘서트인지도 모르고 찾아봤더니





2025년 한일중 문화교류의 해 기념 -한일중 릴레이 콘서트 1탄

▶ 조우遭遇

▷ 신세계 교향곡 & 영화음악 콘서트




Merry라는 오케스트라와(이름이 즐겁다) 일본 덴엔쵸후학원 중 · 고등부와의 합주, 합창이(2부 공연) 이어진 무대였다.



아무 정보도 없이 처음 듣고 보게 된 오케스트라였지만 내가 오케스트라 공연을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규모의 오케스트라 공연을 가까이서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이유가 물론 첫 번째고 (나는 여기서도 지휘자나 연주자 한 명 한 명을 관찰하는 걸 좋아한다. 역시 음악을 듣는 와중에도 사람에게 관심이 쏠린다 ^^)

저마다 자기 소리를 뽐내는 시간이 아닌 다른 소리에 맞춰 기다리고, 최대한 '맞춰가는' 하나로 움직이는 시간이라는 게 흥미롭고 즐겁다.

온전히 음악만 감상할 수 있다는 점, 이거야 말로 커다란 매력이다. 신세계 교향곡은 이미 유명한 곡이라 낯익은 멜로디들은 기억하지만 전체 4악장까지 집중해서 들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45분 가까이 되는 곡이기에 설거지나 집안일을 할 때 틀어놓은 적은 있어도 그때도 '온전히'음악에만 집중해서 들었다기엔 상황이 늘 중간에 끊어졌던 것 같다. 서정적인 멜로디인 2악장과 빵 하고 터지는 듯한 4악장만 따로 들은 적이 많았다.

그렇기에 연주회에 가면 늘 제일 어색하고 새로운 부분이 1악장인데 귀에 익진 않고 새롭지만 시작을 열어주고 '연결'해주는 중요한 선율들이 나온다. 이젠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곡 하나를 온전히 뒤 귀로, 마음으로 집중해서 들을 수 있다.



살면서 이렇게 온전히 '듣는데만' 집중하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깨달은 뒤로는 음악당, 콘서트홀에 가는 시간이 더 귀하게 느껴졌다. 몰입하는 순간에 내 안에 나도 몰랐던 어떤 감정에 마주하게 될 때면 눈물이 꼭 한 번씩 터졌는데 이번 공연 중에도 2부 노래를 듣다가 눈물이 터지고야 말았다. 나는 이게 음악이 '나에게'주는 선물 같단 생각이 든다. 눈물 자체가 아니라 '나를 다시 만나게 해주는 시간'

아이들 두 명이 모두 방학인 지금, 어쩌면 여기로 탈출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ㅎㅎ



이 공연은 영국에서 여름 방학을 맞이해서 온 큰 조카와 함께 갈 수 있어서 더 뜻깊은 시간이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2시간 전에 마침 티켓 하나가 더 생겼다고 선재와 함께 공연을 보는 건 어떻겠냐는 선생님의 제안이 감사했다. 큰 아이와 함께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싶어 하는 기회를 늘 열어주시는 고마운 선생님, 따뜻한 마음에 뭉클했다. 선재에게 먼저 권했으나 5학년 아이는 두세 번 고민하지도 않고 클래식 공연보다는 '짜장면 집'을 선택했다. 토요일까지만 해도 '엄마가 가는 공연'이 무슨 공연인지 알고 싶어 하고 함께 듣고 싶다고 해서 진심인 줄 알았건만, 주말에도 열심히 놀았기에 피곤하다면 뭐 그럴 수도 있다. 마침 큰 조카가 일산으로 같이 넘어와서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는 중이어서 물어봤더니 한 번에 O.K. 같이 마지막으로 공연을 본 게 영국에서 '라이언 킹'뮤지컬이었는데 이렇게 일산에도 또 함께 하는 시간이 의미 있고 소중했다.


영국에서 플루트로 이미 오케스트라 활동을 한 아이는(이제 스무 살이니 '청년'이라 해야 하나) 기꺼이, 함께 가고 싶다고 했다. (물론 우리 집 미취학 아동에겐 아예 물어보지도 않았다. 극장에서 영화도 20분 정도 보고 '이제 재밌는데 가자'고 벌떡 일어나는 아이라;;;)



2부보다는 1부의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를 기대하고 갔는데 웬걸.(물론 1부 공연도 좋았다) 인터미션에서 2024년부터 메리의 글로벌 프로젝트 여정이 나오는 영상이 나오고 콰이어가 등장한다는 걸 안 순간부터는 두근두근, 심장이 뛰었다. 프로그램 북에도 2부 순서는 귀에 익고 우리가 잘 아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노래들이 가득했다.





헝가리무곡
'스즈메의 문단속'메들리
지브리 메들리(하울의 움직이는 성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 이웃집 토토로가 나왔다)
기생충 & 오징어 게임 메들리
마지막 트로트 메들리까지
*앙코르 시간에 또 특별한 노래가 준비됐다.




1부


체코가 고향인 드보르작이 뉴욕 내셔널 음악원 원장으로 초빙되어 체류하면서 1893년 작곡한 이 곡은 미국의 고유한 음악적 정체성은 물론(정체성 탐구에 대한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작곡가의 고국 체코에 대한 향수도 어우러져있다. 어쩌면 한국과 일본, 한국과 중국이 함께 하고 만나는 '조우' 1탄에 제격인 곡인지도 모르겠다. 잘 어울린다. 미지의 세계, 낯선 곳에 발을 붙이면서도 신세계로 받은 영감과 환대, 그 근원을 이방인이 반대로 찾아가고 탐구하는 곡이라는 점이 흥미롭고 놀랍다. 2악장 Largo를 듣는데 유난히 포근한 느낌을 받았다. 오보에와 첼로의 아름다운 선율은 물론 향수와 그리움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잔잔함이 느껴져서일까. 물론 집에서 들었을 때도 가장 좋아해서 몇 번이나 들었지만 이렇게 직접 연주하는 사람들, 지휘자와 어우러진 모습을 보니 감동이 크게 다가왔다.

제자인 윌리엄 암스 피셔에 의해 '꿈속의 고향(Going Home)'이라는 합창곡으로 편곡되어 널리 알려졌으니 기회가 된다면 이 합창곡도 한 번 들어보시길 바란다. 바로 '아, 이곡'을 외치면서 반갑게 듣지 않을까.









서울의 한 대학교 강의실 "사람은 무엇으로 행복할까?"라는 작은 물음으로 각각 다룰 줄 알고, 배웠던 악기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고 한다. (악기를 배웠던 시절의 행복은 그래서 소중하구나!) 악기를 잘하지 못해도 음악으로 즐거움을 전하고 즐거워질 수 있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Merry"(행복)의 시작이, 프로그램북에 자세히 나와있었다. 원래 6개월의 단기 프로젝트였던 모임이 후원자가 생기고 지금까지 이어져왔다는 사실이 기적 같고 놀랍다. 10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 중에 특히 수도권 지역 대학생들을 모집했음은 물론, 중고등학교 음악실을 방문해 작은 메리(청소년 단원 애칭이라고 한다)와 합주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영화 같지 않은가. 이제는 나라를 넘어, 일본과 중국에서도 학생들과의 공연, 합주, 합창이 이어진다.



서로의 소리에 집중하며, 악기 연주를 하는 Merry오케스트라의 모습은 놀라웠다. 그리고 빼먹을 수 없는 지휘자(박주영)님은 공연 내내 단원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치며 소통하는 솜씨가 절로 몰입하는 힘을 발휘했다. 관객에게도 먼저 박수를 유도하며, 스스로도 박수를 치며 등장하는 지휘자는 처음이라는 심선생님 말씀에 웃었지만, 2부 끝으로 갈수록 트로트 메들리 율동을 우리에게 직접 가르쳐 주시고, 가장 열정적으로 쳐주시기도 했다. 트로트가 이렇게도 들릴 수 있다니! 웅장하고 하나로 모아주는 힘을 다시 한번 느꼈다. 즐거웠다. 손뼉 치고 웃고, 노래하고, 하나가 되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벅차고 행복한 2시간이었다.


이미 1부 공연 마지막 4악장이 시작될 때 지휘봉을 내려놓고 양손으로 열정적인 지휘를 시작할 때부터 마냥 앳되고 젊은 지휘자가 앞으로 또 얼마나 어마어마한 공연을 보여줄지 기대가 됐다.




2부


'스즈메의 문단속'에 나온 OST를 뒤에 선 Choir가 한 목소리로 부를 때부터 소름이 돋았다. 사실 연주회만을 기대하고 있는데 합창이라니, 어마어마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음악을 익숙하게 듣고 좋아하는 조카도 함께 즐기면서 재밌게 감상할 수 있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나오는데, 늘 익숙하고 서정적인 멜로디만 듣다가 가사가 스크린에 띄워졌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일본에선 Merry가 일본어로, 한국에선 일본 학생들이 모두 한국어로 노래를 함께 불렀다. 이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언제나 두근거리는 꿈을 꾸고 싶어요


슬픔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지만

그 너머에서 분명 그대를 만날 수 있어요


반복되는 실수를 할 때마다 사람들은

그저 푸른 하늘의 푸르름을 알게 돼요


끝없는 길은 계속되는 것 같지만

이 두 손은 빛을 안을 수 있어요


...


언제나 몇 번이라도 꿈을 그려봐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OST 《언제나 몇 번이라도》중에서

*내 마음에 들어온 가사를 가져와 봤다.




빛나는 것은 언제나 여기에

내 안에서 찾아낼 수 있으니까요



이 가사를 듣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요즘 반복되는 실수, 남들 다 잘하는 것조차 자꾸 실수해서 다치고 넘어지고 버벅거리는 적이 많아서 그런가 가사 하나하나가 다르게 느껴졌다. 처음엔 집에 있는 우리 아이와 옆에 앉은 조카가 생각나서 눈물이 떨어지는 줄 알았는데(뭔가 내 마음에 한자리 가득, 더 응원하고픈 두 사람이다) 독창을 한 일본 여학생의 음성에서 어리지만 강인한, 힘 있는 목소리가 나오는 순간 뭔가 마음이 요동쳤던 것 같다. 전체 공연 중 가장 인상 깊었고 그 '순간'에 내 마음을 온통 빼앗겨버렸던 것 같다. 키가 작고 당차 보이는 오른쪽 소녀는 왼쪽에 있는 소녀가 긴장이 역력한 손을 진정시키는 동안에도(이런 떨리는 모습을 보면 덩달아 긴장된다. 물론 왼쪽 소녀도 끝까지 노래를 잘 불러줬다) 표정이 덤덤했다. 두 소녀가 2부 시작부터 무대 위로 올라오는데 얼마나 작고 귀엽던지! 속으로 생각했다. 키도 작으니까 미성이 나오겠네, 중학생? 중학교 1학년도 안 돼 보이는 키네, 귀엽네(카와이!!) 이런 생각을 하며 손으로 박자를 맞추는데, 세상에!!


음악이 시작과 동시에 내가 상상도 못 한 목소리를 들으니, 어쩌면 편견 안에 갇혀서 뭔가를 기대하고 바라보는 내 눈과 마음이 부서졌던 것 같다. 저런 목소리를 내기까지 얼마나 노래를 많이 듣고 부르고 연습했을까.


아이들에게, 주변 친구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응원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우리 아이들이 엄마의 꿈은 뭐예요?라고 물었을 때 부끄럽고 망설였던 적이 많다. 이걸 말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빛나는 것이 내 안에 있는데, 어떤 한 사람 안에 가둘 수 없는 빛을 언제나 몇 번이라도 '다시' 꿈꾸는 게 그렇게 나아가는 게 참 중요한 것 같다.


뒤이은 곡이 깜찍하고 발랄한 '이웃집 토토로'였음에도 이미 터진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나와서 웃으면서도 멈추지 않은 울음으로 토토로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이 애니메이션도 엄청 좋아하는 이야기라 유년시절과 우리 언니와의 추억이 떠올랐다.




마지막 앙코르 곡으로 나온 '날개를 주세요'는 많은 순간과 상황들을 생각나게 했다.



에반게리온이란 애니메이션으로 알았지만 사실은 일본에서는 초중고 교과서에도 수록될 정도로 국민 애창곡이라고 한다. 이 노래는 이런 가사였구나 하는 놀라움과 동시에, 날개를 달아주고 싶은 아이들과

언젠가 작은 음악회에서 《에반게리온》과 《도라에몽》노래를 불러준 싱아야, 날개를 달고 날아가자!
날개를 꺾는 사람이 있다고 네 날개가 꺾이지 않아. 그건 속에서부터 '너'만 펼 수 있는 날개니까.


소중한 사람들이

먼 독일에서 와서 바쁜 중에 잠깐 밖에 볼 수 없었지만 여전히 좋은 주영선배님과 곧 대학생이 돼서 더 넓은 세상으로 날아가는 우리 조카 Joshua, 부모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저마다의 행복을 위해 훨훨 날아갔으면 하는 우리 두 아이들과 쳇바퀴 같은 일상 속에서도 우리 가족을 위해 또 그 일상을 묵묵히 견뎌내 주는 신랑까지(날개가 가장 필요한 T_T)


떠올랐다.


마지막으론 내 등에도 날개가 생기길, 간절한 마음이 닿기를 바라고 있었다.






지금 나의 소원이 이뤄진다면 날개를 갖고 싶어요

이 등에 새처럼 하얀 날개를 달아주세요


지금 부와 명예라면 필요 없지만 날개를 갖고 싶어요


아이였을 때 꿈꾸었던 것,

지금도 꿈에 그리고 있어요


이 넓은 하늘에 날개를 펴고 날아가고 싶어요


슬픔 없는 자유로운 하늘로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가고 싶어요


翼をください(츠바사오 쿠다사이) 날개를 주세요 중에서



*절망의 순간에, 어쩌면 가장 소중한 걸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날개가 돋아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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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었던 일요일 밤의 Merry | 날개를 주세요 | 이미 날개가 있는 아이들과 앞으로가 기대되는 시간 | M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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