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진심으로 건네는 인사
대부분 인사치레를 싫어한다고 하지만 사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주부로만 살다 보니 그냥 인사를 받을 일도 별로 없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 먹었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같은 인사만 꾸준히 받고 있다.
그래도 학교와 동네에서 인사성 밝기로 소문난 큰 아이를 둔 덕분에 아침마다 엄마 좋은 꿈 꾸셨어요? 안녕히 주무셨어요? 같은 인사를 받을 때면 피곤하고 찌뿌둥하다가도 나보다 키카 큰 아이를 한 번 더 안아주게 된다. 까치집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도 하고. 인사는 참 좋은 거구나.
인사치레 : 성의 없이 겉으로만 하는 인사 또는 인사를 치러 내는 일. '인사 닦음'이란 말과 동의어이기도 하다.
*인사 닦음, 이라고 하니 인사치레가 얼마나 겉치레적인 단어인지 더 와닿는다. 물론 일상생활보다는 '문학적'으로 더 많이 쓰이는 표현이라고 하지만
자자, 그럼 치레를 뺀 그냥 인사란 단어는 무슨 뜻을 가지고 있을까.
인사 : 마주 대하거나 헤어질 때에 예를 표함. 또는 그런 말이나 행동.
최근에 평소에 자주 주고받는 '인사'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본 일이 있었다.
교회에서 각각 연령대로 묶인 여전도회 모임이 있는데 어쩌다 2년 연속으로 내가 속한 여전도회에서 회장을 하게 됐다. 식당 봉사나 행사가 있을 때 한 번씩 공지하고 여전도회 봉사하는 자리에 함께 해주면 될 것 같아서 서로 귀찮고 꺼리는 자리기도 했고 그래서 그냥 서로 미루고 안 하고 싶어 하는 자리니까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저런 '자리'자체에 부담을 가지는 사람도 아니고 한 번씩 공지하는 일이 뭐 대수겠냐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자리가 만드는 사람'의 속성을 너무 가볍게 여긴 나의 부주의(?) 기도 했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돌아오는 식당 봉사 일은 너무 자주 오는 것 같았고 교회 식당 배수로 청소며 설거지, 뒷정리 같은 건 끝이 없는 것 같았다.
우리는 여전도회서도 가장 막내 집단이라 위로 권사님 집사님들께서 음식 준비며 반찬으로 나갈 김치까지 전부 썰어주셔서 국을 푸거나, 다 준비해 주신 음식을 담기만 하면 되는 건데도 손이 느려서 다들 버벅댔다. 하긴 집에서 이렇게 많은 양의 음식을 하지도 않고 우리 집 주방과 교회 식당은 사이즈부터 다르니까, 2시간 정도 걸리는 일이 2시간이 넘어갈 때도 있고 여름엔 에어컨을 틀어도 더웠고 봉사를 하다 보면 점점 서로가 말이 없어졌다. 성도들에게 각자 먹은 그릇, 식기는 각자가 설거지하는 구조로 바뀌어서 개인 식기는 남전도회나 아니면 식사를 마친 분들이 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식당일은 팔팔 끓고 소독하는 솥, 미끄러운 바닥, 위험 요소가 곳곳에 도사리는 복잡 분주한 곳이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부끄럽게도 모태신앙임) 다닌 교회라 우리가 일을 어설프게 할 때마다 편하게 생각하시는 어르신들께 구박도 많이 받았다.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아, 교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이라면 식당 봉사로 마음 상해서 떠날 수도 있겠다'는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다. 명절 스트레스도, 부엌이나 집안일 스트레스도 별로 없는 나에게 교회 식당봉사 스트레스가 알게 모르게 스멀스멀 생기고 있었다. 나와 우리 여전도회 회원들은 일을 능숙하게 못하고 손은 느리지만 다들 가장 어린 나이답게 인사도 잘 건네고 싹싹한 성격들이라 시키는 대로, (어쩌면 시키는 것만) 열심히 했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수다 떨고 인사하길 좋아해서 음식을 담아 드리면서
장로님, 맛있게 드세요.
제가 한건 아니지만, 집사님, 마음껏 드세요!
이런 인사를 열심히 건네면서 웃었는데 돌아오는 건 언제나 구박이었다.
요점은 밥을 봉긋하게 예쁘게 담지도 못하고 국도 골고루 못 푸는 등, 해야 할 식당 일은 제대로 못하면서 인사만 열심히 한다는 것이었다.
-_-;;; (이제는 각자가 주걱으로 자기 밥을 직접 담는 구조로 바뀌었다, 휴우)
이러거나 저러거나 내가 회장인데 공지만 할 수도 없고 자리의 '책임감'때문에 먼저 공지하고 사람들을 모아서 식당으로 가자고 마이크도 잡고 으쌰으쌰 하는 게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은 나도 싫었다. 식당 봉사하는 날만 되면 아침에 교회 가기가 싫을 정도로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내가 공지했는데 내가 당당히 안 갈 수도 없고, 몰래 안 갈 수도 없고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 그럼 갈 수밖에 없다. 그것도 최대한 많은 인원을 동참시켜 할 수 있는 만큼 동참해서 끌고 가는 게 최선이란 결론이 나왔다. 그래도 적은 인원이지만 늘 봉사에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이 한 둘 모여지고 거기서 또 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을 부르고 고정적인 식당 봉사 어벤저스 멤버가 대여섯 명 넘게 뭉쳐지자 그때부턴 내 마음도 조금씩 가벼워졌던 것 같다. 일은 완벽히 하고 자신이 있는 건 아니지만 요령이 붙고 손에 익은 일을 '나눠서 하면'되니까 일단 함께 할 수 있는 인원들에게 참여를 유도하고 시간이 안된다면 되는 시간에 미리 와서라도 손길을 나누자고 했다. 또 시간을 정해놓고 봉사를 후딱 마친 뒤 우리끼리 커피 타임을 가지거나 조금 더 빨리 끝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거나 목표치를 세워놓는 방향으로까지 발전했다. 그 때 쯤에는 식당봉사도 점차 손에 익어간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를 자주 구박하셨던 그 권사님께서도 사실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닌데 늘 책임감을 갖고 그 담당으로 우리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 주시려는 그 마음들이 먼저 보였다. 커다란 밥솥, 찜기를 꺼낼 때도 그냥 꺼내지 않고 주변 기계에 흘린 물기나 지저분한 것 하나라도 넘기지 않고 그때그때 다 닦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애정을 가지고 하시니 우리들의 모습이 참 어설퍼 보였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주 사고가 생기기도 쉬운 곳이고 어쩌다가 다친 어르신들이나 사람도 있기에 우리에게 그토록 '안전'을 강조했던 마음도 이해가 됐다. 그래서 올해 마지막 식당 봉사를 마치면서 항상 다 준비해 주시고 끝까지 도와주시고 이끌어주신 부분이 감사드린다고, 이제 다른 여전도회로 진급해서 올해로 회장을 관두게 됐지만(나는 이제 그 위 여전도회로 올라가서 회장을 하지 않아도 된다. 앗싸! 해방이다,라고 생각한 마음이 가장 컸다ㅋㅋㅋ ) 지금 우리 막내 여전도회도 잘 챙겨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그랬더니 그 권사님께서 갑자기 칭찬을 해주시는 게 아닌가!
어르신들은 이미 일은 더 잘할 것 같지만 주방에 여러 명이 계시면 서로 자기 방식을 주장할 때도 있고 다투기도 하고 오히려 힘든 건 미룰 때도 많은데 여기, 자기네들은 서로 하려고 하고 도와가면서 가르치는 그대로 다 하려는 모습이 참 예뻐요. 고생했어요. 저도 고마워요. 여기가 일을 제일 잘해. 분위기도 제일 좋고. 맨날 부족하다 부족하다 하지만 이제 얼마나 잘하는데요.
이렇게 마음 따뜻하게 주방에서 식당봉사로 칭찬을 받을 줄이야. 늘 봉사 때마다 챙겨주시고 다 밑준비를 해주시는 그 마음에 인사를 드린 것뿐인데(사실 내 마음은 두고 가는 우리 여전도회 식구들을 챙겨달라는 그 마음이 더 크기도 했는데) 칭찬과 격려를 받았다. 한 사람 한 사람 함께 모아진 우리 여전도회 식구들을 예뻐하고 계셨구나, 그 마음이 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10년도 전에 새댁이 되자마자 식당봉사를 하면서도 씩씩대면서 젓가락 하나 닦는 것도 불평하던 내가 먼저 이렇게 감사하다고 진심을 담아 인사한 것도 처음이었고 우리들에게(나를 비롯 어린 시절부터 봐오던 몇 명 편한 친구들에게) 어설프다고 화를 내시던 그분께 이제는 칭찬을 받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봉사할 때마다 늘 준비해 주시고 바닥을 쓰는 거나, 식탁을 닦는 것도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표현을 했지만 그런 지나가는 내 말들 중에 인사치레가 있었던 게 아닐까 돌아봤다.
늘 우리가 봉사할 때마다 빗자루로 식당 바닥을 쓸어주시는 권사님께도 차를 대접해 드리고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했다. 막상 내가 해보니 허리도 아프고, 구석구석 지저분한 쓸거리들은 얼마나 많은지, 빗자루 든 것도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나보다 연세도 훨씬 많이 드신, 우리 어머니보다 연세가 있으신 권사님께선
내가 이거 쓰는 박사야, 내가 쓸어줘야지. 이거 누가 해?
나는 우리 애기들이 일하는데 이런 거라도 도와야지. 많이 먹었으니 소화도 시킬 겸, 하는 거야.
남들이 안 하는 걸 이렇게 먼저 하는 게 제일 즐거워.
하시면서 식탁 위치까지 옮겨가며 그 안에 있는 더러운 것들을 다 싹싹 끄집어서 쓸고 계셨다. 올해의 식당 봉사 마지막 시간에 여러 가지 감정들이 오갔던 것 같다. 당연하다고 생각됐던 그 손길엔 감사가 더해졌고, 내가 했던 공지나 사람을 모으는 그 시간들이 헛된 게 아니라 우리를 또 조금이라도 성장하고 모일 수 있게 했다면 그걸로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가장 좋은 건 이젠 봉사의 틈틈이 서로 웃고 떠들고 서로 하겠다고 하는 우리 여전도회 회원들, 식구들.
뭐 대단한 자리는 아니지만 봉사가 끝날 무렵, 다 같이 커피와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이제 다른 데로 가니까 또 없는 대로 새로 뽑힌 회장과 임원들한테 응원도 해주고 작별인사 겸 이야기를 했다. 사실 또 위로 올라가면 막내로 가는 거라, 뭔가 부담감이 덜하다고 할까, 그래서 은근 더 가볍고 신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우리 회원들은 아쉬워하면서 가지 말라는 말과 함께 그동안 수고했다며 인사를 했다. 그중에 다혜가 따로 와서
언니, 정말 수고 많았어요. 그 자리가 얼마나 힘든 자리였을지 너무 잘 알아요. 사람들이 답도 잘 안 해주고 고요 속의 외침처럼 불편하고 어려웠을 텐데 꾸준하게 해 주고 정말 애썼어요.
내 손을 꼭 잡아줬다. 아, 진심이 담긴 인사 한 마디는 마음을 말랑말랑 따뜻하게 풀어주는 힘이 있구나.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나도 누군가 모임을 이끄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진심을 다해 인사 한 마디라도 꼭 건네야겠다고 다짐해 봤다.
인사를 받을 일 없다는 게 어디 주부가 된 나뿐이겠는가. 고된 하루 일을 하고 직장에서 돌아온 우리 신랑도 아이들이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인사치레조차 없이 아빠를 본체만 체 하면 마음이 서운하다고 아이들을 불러 모은다. 이제 점점 커가서 아이들이 서먹해하는 걸 수도 있지만 추운 날 출퇴근 지옥을 겪고 온 아버지께 반겨서 달려와서 인사하는 게 때로는 또 다른 의미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 집에 돌아올 때마다 안아주고 서로 환영해 주기로 약속했다. 우리 모두 인사'치레'를 받기 싫어하는 거지 어쩌면 누구보다 각자의 마음속에 진짜 '인사'를 받고 싶어 하지 않을까.
어린 시절 수학 과외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수학이 너무 싫어서 제대로 숙제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나는 선생님이 오실 때는 늘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표정이 안 좋았지만 선생님이 가실 때만 되면 늘 얼굴이 살아났다. 가장 밝은 얼굴이 돼서 진심으로 90도 폴더 인사를 꾸벅했다. 서울대에 다니셨던 그 선생님께선
진심이 담긴, 나의 가장 환한 미소를 볼 수 있는 시간이 그 인사 시간이라면서 뼈 있는 농담을 하셨다. 그러면서 나에게 인사성이 밝다고 문제집을 사러 가서도, 누군가 문을 잡아줘도 나경이는 참 밝게 인사를 잘한다고 하면서 칭찬하는 말도 잊지 않으셨다. 인사하는 게 뭐라고, 난 그게 힘들지 않은 가장 기본의 예의라고 생각했는데 칭찬받았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나는 아이들이 학교 갈 때, 둘째 아이, 등원 버스를 태울 때 가장 신이 나서 인사를 한다. 기쁨을 감출 수가 없다. 어떤 순간에는 버스를 타고 가는 아이는 울먹이는데 나는 막 끝까지 따라가서 손을 흔든 적도 있다. ㅋㅋㅋ 아마 차 안에서 선생님께서 저 어머니는 이 순간이 가장 기쁜 게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다. 진심이다. 맞다. ㅋㅋ
오랜만에 우리 8 여전도회 식구들과 권사님께 칭찬도 받고 '수고했다'는 인사를 받으니 고마운 한 편 나 역시 누군가에게 진심을 담은 인사를 그때그때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회장 자리도 별건 아니다. 자리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뿐이었지, 늘 같이 하자고 했을 때 나서주고 함께 해줘서 나보다 더 일을 많이 하는 분들의 봉사로 할 수 있었던 것뿐인데 그렇게 한 명 두 명 성실한 사람들의 모습이 나에게도 좋은 자극이 되고 별거 아니어도 더 책임감에 불타게 할 때도 많았다. 어린 시절부터 봐오고 함께 자라오던 교회 동기와 친구들, 귀여운 동생들도 이제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아이들도 키우고 돌보면서 봉사까지 하려니, 어쩌면 교회에서 한 번 얼굴도 제대로 마주치기도 바쁜 중에 주일에 이렇게 한 번씩 같은 공간에 서서 짧게나마 얼굴 한 번 더 볼 수 있는 시간이 소중하고 귀하게 느껴진다. 마음을 담아서 인사하고 표현하면, 그 작은 인사가 결국은 나에게 돌아온다. 서운하고 답답했던 마음도 눈 녹듯 사라지고 더 잘하고 싶어지는, 웃으면서 최선을 다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긴다. 막상 힘들면 마음이야 또 사라질 수 있지만 따뜻하게 나눈 인사 한마디가, 수고했다는 오가는 말 한마디에 우리는 다시 또 힘을 낼 것이다.
언제나 나부터 일하기가 귀찮고 싫어서 늘 청소하는 봉사도 제대로 된 걸레가 아니라 물티슈와 집에서 버리려는 헌 옷으로 주섬주섬 싸갔지만 어찌 이리 마음이 잘 통하는지, 한 번의 거절도 없이 이렇게 다들 웃으며 깔깔거리면서 난 아마도 우리 8 여전도회 분위기가 가장 복작복작 우당탕탕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건 한 사람 한 사람 자기 자릴 지켜주고 함께 해준 사람들 덕분이다. 늦게라도, 어떻게 해서라도, 아이들 밥도 챙기는 둥 마는 둥 하면서도 식당 봉사 일에 꾸준히 참여해 준 우리 회원들에게 많은 걸 배웠다. 언젠가 아빠들이 아이들 밥도 먹이고 교회 체육관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실컷 놀다가 우리 봉사가 끝날 즘 아이들을 전부 데려왔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귀여웠는지 모른다. 몇 시간 만에 또 엄마를 봤는데도 소리 지르고 반가워하고 달려드는 모습에, 엄마 말고도 또 다른 봉사의 자리에 열심히 지켜준 한 명 한 명이 정말 더 감사하게 느껴졌다. 내가 식당에서 봉사할 때 마다도 우리 아이들 식사를 챙겨주고 이동해 주고 아이들을 챙겨준 친정엄마와 신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처럼 누군가를 위한 손길에도 역시 나를 위해주는 손길이 필요하다는 걸 날마다 느낀다.
봉사를 했을 때 녹초가 됐을 때도 나를 향한 그 손길을 한 번씩 더 생각하고 마음에 새기고 싶다.
수고했어, 정말. 진심을 담긴 따뜻한 손길을 건네고 마음을 담은 인사를 주저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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