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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나우 Jul 22. 2023

생각이 많은 건 말이야

소중한 건 언제나 두려움이니까



생각이 많은 건 말이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이야
나에겐 우리가 지금 일 순위야
안전한 유리병을 핑계로 바람을 가둬 둔 것 같지만
기억나? 그날의 우리가 잡았던 그 손엔 말이야
설렘보다 커다란 믿음이 담겨서
난 함박웃음을 지었지만 울음이 날 것도 같았어
소중한 건 언제나 두려움이니까
-윤하『사건의 지평선』중에서-(2022년 3월 30일/6집 앨범 《END THEORY : Final Edition》



여느 날과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큰 아이 학교 갈 준비를 하면서 토스트를 구웠고 첫 번째 빵 조각을 올려놓으면서 어젯밤 아이 숙제 노트(배움 공책)와 연필이 잘 들어간 지 확인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뭉툭하고 부러진 연필이 있으면 그 전날 쓱쓱 싹싹 뾰족하게 깎아서 다시 필통에 넣어두는데 어젯밤엔 깜빡한 것이다. 후다닥 아침에 할 수밖에. 바쁜 아침 준비 중에 부러지고 뭉툭한 연필이 세 개나 돼서 좀 짜증이 나려던 찰나,

이제 막 토스트를 먹으려고 앉은 선재에게 연필을 깎으면서 말했다.


-내년엔 선재가 4학년이 되지? 4학년이 되면 그땐 이제 스스로 선재가 더 많은 걸 할 수 있을 거야. 연필도 깎거나 오늘 학교에서 읽을 책을 미리 챙기는 것도.(이젠 좀 네가 스스로 하라는 말을 좀 돌려서 부드럽게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일어나서 학교에 가는 아이에게 될 수 있으면 잔소리나 야단을 치기보다는 완곡하게 말해줘야지 다짐했더랬다.)


돌아서 탁탁 가지런한 연필을 필통에 넣어주고 나는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뾰족하게 일렬종대로 세워진 연필을 보는 건 뭔가 개운하고 빨리 글씨를 쓰고 싶게 만드는 뭔가가 있으니까. 물통까지 시원하게 채워주는 찰나 아이의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씰룩씰룩 또 아래로 곡선을 그린 입 모양(  선재는 울기 전 울음을 항상 참느라 턱에까지 한가득 힘을 주고 입술을 세게 물어서 꼭 요런 만화 같은 표정이 된다. 놀려주고 싶은 얼굴, 만화 같은 표정) 한가득 울음을 찾는 표정, 왜 저러나 싶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돌아서는 찰나, 눈물이 후드득 아래로 떨어지는 게 보였다.


-아니, 선재야?!! 지금 우는 거야? 왜? 왜 울어?

-엄마, 너무 슬퍼요.

-아니, 아침을 먹는데? 갑자기? (종 잡을 수 없는 너의 마음 하지만 침착하게 등을 쓰담쓰담하면서 안정을 시켜주고 물어본다.)

-이제 곧 4학년이 되면 이제 3학년 아이들과도 헤어지고, 교실도 바뀌고 선생님도 전부 바뀌죠?

-...

-그리고 엄마, 아빠랑 점점 같이 할 시간도 짧아져요.

-!



시간이 자꾸 가는 게 슬퍼요. 엄마, 전 영원히 지금 이대로가,
3학년인 게 좋아요.
선율이가 계속 어린것처럼요.




-아...! (나의 어떤 말 한마디, 무심코 던진 행동 하나가 아이에겐 또 분리감에 대한 두려움을 준 건가 싶었다.) 선재야, 그래서 마음이 슬펐구나. (일단 울어준 걸 고맙게 여기며 더 울거나 그치길 바라는 마음, 안정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아이 옆에 같이 앉고 손을 잡아줬다.)




엄마, 여름 방학이 싫어요. 방학이 지나면 나이가 먹는 거죠?
모든 게 또 변하고 여기서 한 살 더 먹고, 교실도 선생님도 바뀌고,
저는 왠지 엄마 아빠랑 함께 할 날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요.
스스로 잘하게 되면, 그때는...



말을 잇다 말고 오열하는 아이. 여리고 순진하고 겁이 많구나 생각했다. 귀엽기도 하고 또 왜 그런지 살짝 알 것도 같아서 웃음도 났다가 아이를 꽈악 안아줬다.



나는 선재의 울음반갑다. 어렵지만 감정을 숨기기보단 터뜨리고 오열하면서도 그래도 나에게 꺼내주는 그 마음이 예쁘다. 


아이는 뭔가 두려움이 온 모양이다. 스스로 자기가 하나씩 다 해나가면 그 끝은 결국 부모로부터 '온전한 독립'일 테니 그 끝이 두렵고 무서웠겠지. 변화에도 민감한데 3학년 2학기가 남았음에도 여름 방학이 끝나면 바로 4학년이 올 거라는 불안이 엄습했나 보다. 일단 여름방학은 3학년의 끝이 아니라고 반복된 여름방학 겨울 방학 설명을 짧게 해 주고 내가 해 준 말은 이거였다.




선재야, 그 말이 무섭고 싫었겠다. 그래서 슬픈 마음이 들었구나.




괜찮아, 별 거 아니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기. 괜찮다는 말로 괜찮아지지도 않으니 그냥 현재 상황을 인정하고 도닥도닥 쓰담쓰담. 그게 다다.

현재 여기에 너와 내가 있고 우리가 아무리 함께 지낼 날이 긴다고 말해도 불안 자체를 해소할 수 없음을 안다. 인정해 주는 감정에서 출발하면 아이는 자기가 왜 슬펐는지 좀 더 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을 테니 기다려주기로 했다. 아침을 조금 일찍 시작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사랑한다고, 다녀와서 또 보자고 엄마는 여기 있을 거라고 말해줬다.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그러면서도 나에게 여러 번 손을 흔들고 가는 아이.


문을 탁 닫음과 동시에, 나에게 한 번 더 놀랐다.



와, 짜증도 화도 한 번도 안 났네. 내가 참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아이 울음에도 울컥하지 않고 담담하게 인정해 줄 수 있게 됐구나. 일 년, 이년 전과 달리 선재로 인해 울컥한 감정이 몰아치거나 눈물에 짜증이나 화가 나기보다 인정과 공감을 해주는 사람이 됐구나, 여전히 알 수 없는 복잡한 아이의 감정과 휘몰아치는 머릿속을 다 알 순 없어도 네 옆에 내가, 내 옆에 네가 있다는 게 이렇게 고맙고 좋을 수가 없다.






사건의 지평선 가사가 떠올랐다. 아이들이 학교로, 어린이 집으로 전부 갔을 때 갑자기 이 노래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이 노래가 뜨기 시작할 땐 알지도 못했다가 또 뒤늦게야 뒷북으로 뮤직 비디오로 봤는데 이런, 이런, 도입부부터 마음을 확 잡아끄는 가사라니!



생각이 많은 건 말이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이야



-생각도 많고 복잡한 걱정 두려움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 들어봤나, 그대여, 걱정하지 말라거나 슬퍼하지 말라거나, 이제는 웃는 거야 스마일 어게인이 아니라, 생각이 좀 많은 건 당연한 거야라는 인정에서 출발하는 가사. 아, 물론 위에 열거한 저 노래들도 엄청 좋아했다. ^^! 노래방에서 신나게 탬버린도 흔들면서 스마일 어게인을 부르고 그대여 걱정하지 말아요, 친구들과 어깨동무를 하며 부른 곡들이니. 나는 원래 흥이 좀 많다, ㅋㅋㅋ

나에게 공감과 놀라움을 알려준 건 생각이 좀 많아도 일단 인정!! 에서 출발 했다는 게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거다.

나는 한참 공감과 인정이 칭찬보다 더 좋은 거라는 걸 배워 나가는 엄마였기에. 나 역시 공감받고 싶은 사람이기에.




기억나? 그날의 우리가 잡았던 그 손엔 말이야

설렘보다 커다란 믿음이 담겨서

함박웃음을 지었지만 울음이 날 것도 같았어

소중한 건 언제나 두려움이니까



-너무 좋은 순간 왜 우니? 좋은데 뭘 걱정해?


할 수도 있지만 울음이 나는 사람도 있다. 행복한 이 상태가 영원하지 않고 언젠가는 깨지거나 헤어지거나 갈라지거나 분리에 대한 불안이 있다면 우리 선재가 그랬고, 나도 어린 시절부터 유년기에도 늘 '죽음'과 '헤어짐'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았다. 용감하게 선재처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지만 대신 일기장 가득 불안을 토로하거나 소중하면서도 기쁜 감정과 동시에 그 끝을 늘 상상하곤 무서워했다. 나는 생각이 많은 편이었다. 쓸데없는 공상과 상상도 많았지만 이렇게 생긴 사람인 걸, 내가 이런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재미와 웃음을 따라 기쁨을 따라가고 생각을 덮어둘 때도 있었지만 두려움과 불안이 완전히 사라질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하게 됐다. 그럼, 뭐 같이 가봐야지! 선재의 가장 큰 두려움은 나와의 이별이었고. 동생의 탄생으로 내가 병원에서 따로 지내야 할 때 내 얼굴조차 볼 수 없고 나를 만질 수 없다는 분리가 아이를 힘들게 했고 이별이 힘든 건 슬픔과 불안이라는 감정 때문이라는 걸 누구보다 몸으로 겪었을 테다. 그 감정을 해소하고 싶어서 우는 중이구나 느꼈다. 울어야지. 그럼.

해소하는 중이고 자기감정에 다른 사람보다 좀 더 깊이 빠진 것뿐인데, 나도 별 거 아닌 일에 울거나 울컥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울고 나면 해소된 이후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도, 나의 경험과 인지로 기억하고 나아가는 것이다.







오늘 아침은 누구도 잘못한 게 없다. 그냥 여느 날과 다름없는 날이었지만 아이는 또 한 걸음 더 성장하기 위해 감정에 조금 더 깊이 빠졌던 것이고 나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그 마음을 나도 소중하게 기억해 주고

-빨리 밥이나 먹고, 그만 뚝하고 코 흥! 코 풀고 다시 세수하고 가!!

라고 말하는 엄마가 아니라 감사했다. 나도 상담받지 않았다면 끊임없이 글 쓰고 하루의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면 기도하지 않았다면

나를 가만히 들여다 보고 아이를 자세히 보지 않았다면 놓쳤을 수많은 것들을 내가 인지하는 것만으로 이미 세상이 바뀌고 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


윤하의 노래는 마치 선재의 마음을 쓴 가사 같기도 했다. 그래서 이 노래가 그렇게 좋았구나 싶어서 오늘 몇 번을 더 들었다. 남들보다 민감하다는 건 어떤 세상에서 사는 걸까.

별 일 아닌 거에 툭 울 수도 있고 별 일에는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심경을 느낄 수도 있다. 아이가 해주는 세세한 언어에 큰 의미를 두지 말자고 나는 여러 번 다짐했더랬다. 나와 다른 아이의 감정의 깊이를 그 사람이 돼 보지 않는 이상 나도 온전히 알기는 힘들고 그냥 옆에 있기로 끄덕끄덕 쓰담쓰담, 조심해서 들어주고 안아주기로 한 게 나의 방법이다. 가만히 떠올려 보면 나도 그런 위로와 인정을 받고 싶었는지도.







*우리 선재가 그린 별과 첨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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