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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ome Nov 10. 2023

충분히 낭만적인 어른의 오지랖

낡은 신발과 새 신발

어느 20대 청년의 이야기다. 청년은 남들처럼 취업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면접장은 어디나 검은색과 회색의 정장을 맞춰 입은 남녀의 모습으로 경건해 보였다. 길게 늘어선 고급스런 대리석 복도와 적절히 어두운 조명은 청년의 기세를 보기 좋게 꺾어내곤 했다. 둔탁하고 무거운 면접관의 메마른 목소리는 생각 따위를 잊어버릴 만큼 긴장을 불러왔다. 청년은 자주 취업전선에서 패배했다.


청년은 마치 콜로세움에서 싸우는 검투사처럼 느꼈다. 싸우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사자의 밥으로 던져지는 건 더 싫었다. 상대가 강할수록 투쟁심은 강화됐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타고난 심성이 유약한 청년에게는 처절한 절박함이었지만 이런 감정은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물론 청년이 좀 더 나이를 먹고 난 후에 그런 행동이 별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어떻게 해서든 이기고 싶었다. 어쩌면 그것은 영웅심이었을지도 몰랐다. 청년의 20대의 시절이 그랬다. 


당시 청년은 주위의 어른들이 싸움을 유희처럼 여기는 못된 집정관처럼 느끼곤 했다. 어른들은 누구나 청년에게 경쟁을 요구했고, 때론 투쟁하기를 원했다. 못마땅한 일이었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날도 검투사로서 청년은 그 잔혹한 싸움을 기꺼이 제공했다. 집정관의 의도대로 행동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 순간 그 결과는 원치 않는 지루한 일상으로의 회복이 뻔했다. 이는 그 동안의 노력을 의미 없게 만드는 일이었다. 청년은 최선을 다했다. 


면접이 끝난 거리풍경은 검은 바람으로 산들거렸다. 가로수의 잎들은 스스럼없이 제 몸들을 부비며 듣기 좋은 소리를 냈다. 어스름해져가고 있었다. 터벅터벅 앳돼 보이는 청년이 힘없이 걷고 있었다. 차도 옆 인도를 사이에 두고 길게 늘어선 건물들은 불빛을 하나둘 밝히며 뽐을 내고 있다. 청년의 얼굴위엔 스러지듯 검은 그늘의 형체들이 어슴푸레 흩날렸다. 매우 시달린 모습이었다. 


청년은 오늘 만났던 면접관의 얼굴을 떠올렸다. 외형에 대한 실상을 기억해내기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이 문제였는지 그들의 의도를 알아채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 때문에 순간 욱했던 자신의 태도도 못마땅하게 느껴졌다. 집중하는 그때 싸움을 강요하며 히죽거렸던 한 집정관의 의미심장한 표정이 보였다. 그것은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마치 청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저기요. 잠시 만요. 아까 그 면접장에 계셨죠?”


그는 반가운 모습으로 아는 체했다. 패배한 검투사를 위로하려 했던 것일까? 청년은 아직도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집정관의 눈에 안쓰러워보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청년에게 그의 모습은 반발심이 들 정도로 오만하게 느껴졌다. ‘뭐 어쩌자는 거지?’ 그건 냉소였다. 그렇지만 속마음을 겉으로 드러낼 수 없었다. 아니 말하는 것조차 귀찮고 힘들었다. 그런 눈치조차 없는 것인지 집정관은 청년을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애초에 수다스러운 사람일지도 몰랐다.


“고생했어요. 그렇지만 그런 식으로 너무 전투적이면 사람들이 부담을 갖게 되요. 싫어할 수 도 있어요. 좀 유연하게 대처 해봐요”


하나마나한 싱거운 소리였다. 이 이야기를 더 이상은 들어 줄 수는 없었다. 지금 이 순간 집정관의 치기어린 충고는 청년도 익히 알고 있었다. 오히려 패배자라는 분명한 선언을 해주는 것일 뿐이었다. 그 것이 청년의 감정을 더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이런 거만한 태도는 딱 질색인데다가 자신도 다른 집정관중 한명이었다. 그도 이미 청년이 검투사를 원하지 않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을 터이다. 다만 지금 청년은 어떤 말도 받아들이기가 힘에 부쳐 있었고, 마음조차 깨끗이 정리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청년을 다시 자극한 것이었다. 그가 왜 이러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하고 싶으신 말씀이 뭐예요?”


날이 서있는 목소리였다. 이미 한번 휘둘러본 칼이다. 두 번이라고 휘두르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단번에 베어내지 못하면 허튼 충고를 들어야 했다. 수십 번의 면접이었다. 탈락되어야하는 이유를 찾기도 전에 남의 일을 간섭하고 업신여기는 인간을 이해해 줄만큼 한가한 기분도 아니었다. 


“이해합니다. 나도 젊었을 때 비슷한 경험을 했었죠. 잠깐, 제 이야기를 듣지 않겠어요?”


도무지 영문 모를 소리였다. 단단히 잡은 칼자루의 손에 힘이 빠지고 말았다. 집정관은 이틈을 놓치지 않았다. 아마 그 역시 과거 검투사 시절이 있었던 승부사였을지도 모른다. 청년은 그에게 또다시 패배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다만 당신에게 신발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당신이 신은 그 신발. 명품이긴 한데 낡았어요. 면접 볼 때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죠. 실속보다 겉치레가 강한 기세를 풍기거든요. 차라리 명품이 아니더라도 낡지 않은 새것이 좋아요. 특히 당신 같은 새로운 사람에겐 더욱 그래요. 당신은 오늘 불편함을 신고 편한척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어요. 그 말을 해주고 싶었어요.”


청년은 물끄러미 신발을 보았다. 그의 말처럼 낡아있었다. 또다시 체면이 깎이고 말았다. 부끄러움에 정신이 나간 것처럼 반응을 할 수 없었다. 첫 면접 때 큰맘 먹고 산 것이었다. 잠금장치가 없어 신고 벗기가 수월한 신발이었다. 마치 기어이 무엇인가 해내려는 고집 같은 느낌의 투박함. 게다가 명품. 처음에 뒤꿈치가 까질 정도로 굳고 단단했던 신발이었다. 적응된 발이 편안함을 느끼고 있어서 몰랐는데 수십 번의 면접에서 낡았던 것이다. 면접관은 그런 내 사정은 대수롭지 않은 듯 내 품위를 무시했다. 집정관의 말은 이어졌다.


“저도 그런 신발 가지고 있어요. 오래되지 않았지만 낡아버린. 편하지만 산뜻하지 않은. 나도 취업하려고 샀죠. 익숙해져 뒤 굽이 닳아질 때까지 신고 다녔어요. 그런데 면접관들은 그런 점까지 세세히 보더라고요. 하지만 이미 아시겠죠? 면접관은 당신을 알 수 없어요. 당신과 만나는 그 짧은 시간에 당신을 관찰할 뿐이에요. 그것은 진짜 당신의 모습이 아닐 수도 있겠죠. 그럼 당신이 어떻게 행동했어야하는지도 비교적 분명할 거예요.”


당시 청년은 손해 입은 품위나 체면보다 그의 무심한 말이 머릿속에 새겨져 버렸다. 그것은 청년에게 꽤 아픈 기억이 되었다. 청년은 실제 신발에 신경 쓸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삶 자체가 다급했고 절박했었다. 신발이 주는 편안함. 그것이 만들어내는 해로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이나 상태를 통해 사물을 판단하곤 한다. 그것은 청년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명품을 구매한 것이었다. 백화점 명품매장에서 큰돈을 지불할 때만해도 설레어했었다. 새삼 지금에 와서야 그것이 청년이 꿈꾸었던 일을 방해했다니 그것은 정말 충격이었다. 갈피를 잡기 어려울 만큼 복잡한 마음이 얽히고 있었다. 집정관은 눈치 챈 듯 괴로움을 덜어주려는 듯 말을 건넸다.


“그래도 그 신발이 편하죠? 저도 버리지 못하고 있어요. 평소에 신고 다녀요. 그것들이 제게 진짜 안락함을 주니까요. 그래서 난 당신을 이해해요.”


청년의 눈은 집정관의 신발에 멈추었다. 새것이었다. 이런 신발을 신고 있으니 청년의 신발에서 결함을 발견하는 정도는 어렵지 않았을 것 같다. 굽도 반듯했다. 엉뚱하게도 청년은 집정관의 구두 굽에 마음이 쏠려 매달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왜 신발이 중요할까? 그것은 내 능력이나 노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지 않은가’ 청년의 생각대로 신발과 면접의 관계는 앞뒤가 어긋나서 서로 맞지 않았다. 


그 순간 청년에게 문득 나폴레옹이 떠올랐다. 높아지고 싶은 열망. 키 작은 나폴레옹이 집착했던 하이힐은 그의 콤플렉스였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신발은 자신의 처지와 상황을 노출시키는 하나의 수단일수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낡은 신발이건 새로운 신발이건 그건 그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의 예의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걸 따르지 않으면 결국 부적당한 존재가 되어 버림받게 된다는 것인가? 도전은 허락하지만 그건 니들 세계의 헛된 마음이라는 선언 같은 거…. 생각이 이렇게 흐르자 청년은 더 이상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그래요. 알려줘 고맙네요. 그럼 이만…”


그와의 대화는 이것으로 끝맺음 하고 싶었다. 가벼운 목례와 함께 돌아섰다. 그러자 집정관은 큰소리로 외쳤다.


“다음엔 꼭 잘 될 거예요. 화이팅!”


집정관의 꾹 눌러진 분명하게 또박또박한 목소리는 청년에게 전달되었지만 아무런 감흥을 갖지는 못했다. 청년은 집정관을 뒤돌아보지 않았다. 걸음은 여전히 힘들었지만 애써 굽히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와의 짧은 만남은 뜻밖에도 청년에 내면에 숨겨두었던 쓰린 감정을 북받쳐 오르게 만들었다. 


취업전쟁. 전쟁에 참여해 싸워야했던 순간들. 그 속에서 청년이 얻어낸 건 크고 작은 상처뿐이었다. 이 모든 기억들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애써 도리질을 하며 마음을 단속 했다. ‘잘 될 거라고? 뭐가 잘 된다는 거지? 허튼소리.’ 검은 하늘은 인공적인 빛들은 서로를 도와 화려함을 연출했다.


그 후 시간이 흘러 청년도 나이를 먹었다. 청년은 얼마 전 새 신발을 샀다. 신발을 보면서 문득 그때 그 집정관이 떠올랐다. 그것은 그가 얼마나 좋은 어른이었는지에 대한 추억이었다. 그는 무슨 생각에서 자신에게 그런 말을 했을지 궁금했다. 단지 오지랖이었을까? 만약 그것이 오지랖이더라도 오늘은 무척이나 그리웠다. 


새 신발을 신는 것은 어쩌면 새로운 세계로의 여정의 시작을 상징할 것이다. 그러나 때론 뒤꿈치가 까지는 아픔을 견뎌야 한다. 그것은 신발이 우리의 발에 맞춰지는 과정의 일부일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이 고통을 통해 인내와 적응을 배운다. 그런 면에서 고통은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상황들도 처음에는 불편하고 고통스럽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를 성장시킨다. 그렇기에 이는 인간이 변화에 저항하면서도 동시에 그 변화를 받아들이려는 복잡한 성향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다.


모든 낡은 것은 익숙함을 반영한다. 또한 그것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힘이 된다. 정말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집정관의 말이 청년에게 위로로 돌아왔다. 갑작스럽게 청년에게 조언한 그의 진심이 이제야 느껴졌다. 청년은 당시 신발의 낡음이 가져올 이미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청년은 때때로 욱했고, 공격적이었고, 날카로웠다. 그 강한 기세가 자신감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겉모습에 치중한 채 실속을 챙기지 못했던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새로운 것, 즉 새로운 신발, 새로운 태도, 새로운 접근 방식이 현재의 낡은 삶을 바꿀 수 있음은 분명했다. 


여전히 청년의 삶은 검투사로서의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 아마도 그 싸움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싸움에서 청년이 얻고 싶은 것은 싸움에서의 승리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성장일 것이다. 때론 어른의 오지랖은 충분히 낭만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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